큰언니고 순 덕 지난 30일은 아들의 해군 부사관 임관식이 있는 날. 어린 조카의 임관을 축하한다며 큰언니와 동생이 동행했다. “언니야 경도 임관식 때 같이 갈래?”“하이고 야야. 우리 막내아들(조카들 중 막내)이 공무원 취직했는데 내가 가야지! 울매나 대견하노? 우리 큰아들(큰언니의 아들)도 공무원이고, 막내도 공무원이깨 그 새에 끼인 아들은 다 잘 되는기라!”“그럼 언니야, 임관식 전 날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되는데, 올 수 있나?”“가야지. 내 갈 수 있다. 내 니말
70년대 아나바다운동고 순 덕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의미의 아나바다 운동은 IMF구제금융 요청 사태가 발생한 이듬해인 1998년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자 시작한 운동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아나바다는 이미 그 30년도 더 전부터 해 오고 있는 운동이 아니라 생활 이었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부터 전해 내려온 민족성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한 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구정물통에 받아 가축을 길렀다. 가축의 뒷물은 농작물을 키우는데 거
빨간 우체통고 순 덕 지난 4월부터 아들에게 매주 손 편지가 왔다. 현역 입대 때 스무 장의 우표를 사서 아들에게도 주고 나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그저 갖고만 있었다. 요즘은 군부대 홈페이지에 인터넷편지를 쓸 수 있는 코너가 있어, 그러잖아도 힘든 손 편지를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녀석이 우여곡절 끝에 부사관 후보생으로 다시 입대를 하면서 내가 사 준 우표를 사용하지 못 했던 것이 미안했다며 손 편지를 써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의 정성에 가만있을 수 없어 나도 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먹음직스런 아카시고 순 덕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그 땅은 여기가 거긴가!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니고향에는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골목에서 고무줄 꾀나 하던 때 부르던 노랫말이다. 노랫말이 제대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오늘 시내를 내려가며 길 가에 나뭇가지 늘어지게 핀 아카시 꽃을 보고 생각난 노래고, 종일 입안에 맴돌아 흥얼거렸다. 꼬마나 수미가 있었다면 분명 큰소리로 함께 불렀을 거다. 고향땅이 부터 여기가 거긴가 까지는 먼저 고무줄 이쪽에서 찍고 한발 한발 나누어 고무줄을 넘었다 되돌아오지만, 아카시아
탈타리고 순 덕 신혼시절 우리 부부의 단잠을 깨우는 것은 언제나 탈탈탈탈 경운기 소리였다. 담장도 없는 시골 빈집을 개조해 결혼 3개월만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인심도 좋고 공기도 좋고, 남편이 원하는 농장을 일굴 적지로 모든 것이 좋았다. 단 하나, 아침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해만 뜨면 탈탈탈탈...... 동네 어르신들은 잠도 없는지? 뒷집 탈타리, 김선상네 탈타리, 반장네 탈타리, 산밑에집 탈타리, 구반장네 탈타리, 산 넘어 온 탈타리, 물건너 온 탈타리, 산모퉁이 돌아온 탈타리, 탈타리 탈타리 탈타리.
변소에서 펼쳐진 역사고 순 덕 요즘 아이들은 변소란 말을 알기는 할까? 예전에 변소가 언제부터 화장실로 바뀌었는지 어쩌면 수세식으로 바뀐 때부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전엔 뒷간이라고도 해서 우리 몸에서 배출된 그것들이 노출되어 있다보니, 악취가 나고 건물의 뒤쪽에 주로 자리했다.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하나 한가지,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은 현대에 들어서는 적합하지 않다. 뒷간은 실내로 들어 욕실과 함께 있으며, 젊은 세대들에게 처가는 가까울수록 아내와 아이 육아에 편하다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변소
외워야 했던 것들고 순 덕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남편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목침위에 올라 국민교육헌장을 외워 집안과 동네의 재간둥이로 눈깔사탕 꾀나 먹으며 자랐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국민학교시절 빵 급식이 있던 날 이 국민교육헌장을 먼저 외우는 순서대로 빵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우리는’으로 시작해 ‘줄기찬 노력으로......’로 줄줄 나가야 하는데 두세줄 넘어가면 손은 머리위로 올라가 긁적긁적 말은 점점 느려
전우고 순 덕 난 내가 남들에게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여자로 보여지 길 원한다. 하지만 최근 내 생에 두 번째로 ‘군생활’을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아! 이 무슨? 너무해. 내 행동이나 말투가 그렇게 거칠었나?’ 전쟁관련 기관에서 일해서인지 읽느니 6⦁25 관련서적에 말하느니 매일 연대가 어쩌고 매복에 포 얘기니 그리 보였으려나?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인가? 그만큼 내 일에 충실히 젖어들고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이번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기관에서 할 만한 행사를 생각해 보라는 과제를 부여 받았다. 여러 가지를
아버지의 밥상고 순 덕 지난 주말 한식이라고 오빠들이 친정 부모님의 산소엘 다녀갔다. 덕분에 오빠들도 볼 겸 오랜만에 엄마, 아버지를 찾아 뵐 수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땅속에 누워 계신 지금도 생전의 습성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한 두 분이다. 엄마는 생전에 씀바귀김치를 맛있게, 많이 담았다. 그 옛날에 이미 엄마는 뒤뜰에 직접 채취한 씀바귀 씨앗을 뿌리고 재배를 해서 김치를 담더니, 누워 있으면서도 봉분 가득 씀바귀를 이고 있었다. 씀바귀에 대한 엄마의 욕심은 저 세상에서도 버릴 수가 없나보다. 아버지는 앙증맞고
선생님고 순 덕 오늘은 잠시 내게 캘리그라피를 지도해 주었던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날. 공연히 마음이 설레고 신이 난다. 몇 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캘리그라피는 처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수업을 받고 보니, 글씨쓰기도 재미있었지만, 선생님이 더 좋았다. 우유부단하고 게으른 나와는 달리 선생님의 모습은 당당해 뵈었고, 밝고 긍정적이어 보였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모습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입적, 짝사랑하고 있다. 그 외에
사랑담은 소포고 순 덕 나의 전화기는 하루에 최소 세 번은 울린다. 매일 세 딸이 퇴근하면서 안부전화를 한다. 요즘 서로 주고받는 얘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은 미세먼지, 마스크 착용이다. 그리고 둘째가 나를 위해 미세먼지전용 마스크를 한박스 사 보냈다. 많이 보냈으니 동생과 나눠 쓰란다. 50개 들이, 25개씩 각각 포장되어 있었다. 하나는 내가 하나는 셋째에게 주겠노라 했더니“앗싸! 마스크 득템. 이번에 집에 가면 가지고 와야지!”신나하는 셋째의 답변과 달리“미룽이가 무거워서 가져가려나 모르겠네?” 하는 둘째. 마스크 몇 장이
우리들은 1학년고 순 덕 어려서부터 야무지고 무던하던 작은언니가 어느 날인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귀가한 일이 있었단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였으려나? 당시 작은오빠는 갓 신입생.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시간에 용의검사를 하는데, 단상에 오른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세수 안하고 학교 온 사람?”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조용한 가운데 단 한사람이 당당하게 손을 들며 큰소리로 대답하더랍니다.“저요!” 갑자기 운동장이 술렁이고, 누구일까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는데,“야 귀남아 자 니 동생 아니라?
80년대 킹카는 이 곳에......고 순 덕 80년대 킹카는 롤라장에 가면 볼 수 있었다. 발아래 여덟 개의 바퀴를 마음대로 굴리며, 옆으로 미끄러지듯 달리다 살짝 뛰는 듯 뒤로 돌아서 하체를 살랑이며 뒤뚱이는 초보들의 틈새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다녔다. “칼러미야 칼러베이베....... 콜미!......”“비지칼 비지칼 냄비위에 파리또옹 요파리똥......”“아나까나 까나리 까니 키퍼웨이.......”“헬로 헬로 미스터 몽키 에스에스파스 몽키.......” 가슴까지 쾅쾅 울리게 하는 디스코 음악
귀신 날고 순 덕 “언니 귀신 날 마을 부녀회 윷놀이 한다는데, 그 날 올 수 있어요?”“귀신날? 그기 운젠데요?”“언니 귀신 날 몰라여?”“글쎄 그기 뭔데요?”“정말 몰라여? 아 왜 우리 어릴 적에 귀신 날이라 해가이고 밤에 신발을 업고 놓고 자고 막 그랬잖아요. 언니넨 안그랬는가?” 일주일 전 친구같은 시누한테서 전화가 왔다. 귀신 날이라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귀신 날! 우리의 세시풍습 중에 정월 대보름을 보낸 다음 날을 귀신 날이라 했다. 이 날은 귀신이 많이 돌아다니는 날이라 하여
참빗고 순 덕 얼레빗 참빗 줄게 잘 빗고 내리거라얼레빗 참빗으로 곱게 빗고 오시는 비어레미 참체 줄게 잘 걸러 내리거라어레미 참체로 곱게 걸러 오시는 눈 얼레빗과 참빗으로 머리를 빗는 모습을 빗대어 부른 “얼레빗 참빗”이라는 전래동요이다. 사실 어렸을 적 이런 동요를 부른 기억은 없다. 텔레비전에서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드는 가족이 나오는 것을 보니, 엄마 생각도 나고, 우리들의 웃지 못 할 옛 이야기도 생각났다. 엉클어진 머리를 먼저 성긴 빗으로 빗어 내린 후 참빗으로 빗어 내릴 때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비듬을 각각 비와 눈에 비유한
우리 집 천연 가습기고 순 덕 전국이 연일 미세먼지로 뿌옇다. 더불어 극심한 겨울 가뭄은 기어코 수차례재난 문자를 발송하게 했다. 미세먼지와 건조에 대한 주의보다. 코 속이 늘 붉게 헐어 따갑고 아프다. 처음엔 내가 피로해서 생긴 증세라 생각했다. 병원을 다니고, 쉬고, 연고를 발라봤지만 잠시 차도를 보일뿐 완치되지 않았다. 그런데 목욕탕을 다녀오는 날은 좀 덜함을 느꼈다. 가습기가 있지만 꺼내기가 귀찮다. 코 속을 촉촉하게 하기위해 어떤 날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하고 있기도 하고,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그
새해 더 큰 복을 받는 방법고 순 덕 친구와 초밥을 먹으러 또 다른 친구의 식당엘 갔다. 친구의 아내가 커다란 봉지에서 작은 봉지로 떡국떡을 나눠담고 있었다.“어서 오세요. 어? 어서 오세요!”“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예 우리야 뭐 잘 지내죠. 오랜만에 오싯네요.”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간 친구가 떡에 대해 물었다.“웬 떡이 이키 마내여? 뭐 할낀데? 떡국 좀 한 그릇 끼리조바!” 인심 좋아 보이는 친구의 아내는 웃으며 식당에 들인 쌀에 물이 들어가 어쩔 수 없이 떡을 많이 하게 되었으며, 설도 다가오는데 주변분들
장날고 순 덕 “어머니 장보러 언제 나갈 계획이세요?”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이 함께 제삿장을 보러 가겠다며 묻는다. 제사면 이것저것 장 볼 꺼리가 많아 짐꾼 역할을 해 주려는 것이다. 고마운 녀석.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녀석의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셋째도 벌써부터 함께 장보기를 돕겠다고 얘기하더니 약속을 지킨다. 요즘 다 큰 자식을 양쪽에 끼고 장보는 호사를 누리는 어미가 몇이나 될까? 우리 아이들 사춘기를 있는 듯, 마는 듯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때는 제 옷 하나 사는데도 나를 꾀나 힘들게 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지도
새 달력, 새 공책을 받다고 순 덕 한해가 가거나 말거나, 새해가 오거나 말거나, 관심도 감흥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 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 했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내 이름을 잊고 살았다. 누구의 아내, 네 아이들의 이름이 내 이름 대신 붙어 다녔다. 그러는 동안 나이도 잊었다. 누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잠시 생각, 계산을 해야 했다. 그러면 재치 있으신 분은 띠가 뭐냐? 또는 몇 년 생이냐로 물어 오시면 그제야 겸연쩍게 대답을 하게 된다.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었구나 하는 내 생각과, 질문자는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고 순 덕 “저 마한 것들이 잠 안자고 뭐하는 짓들이라. 저리 안가나?” 잠자다 말고 아버지의 호통소리에 벌떡 눈을 뜬다. “저들끼리나 좋은 날이지. 마한 예수쟁이들.....” 뒷동산 밑에 작은 교회가 있었다. 크리스마스날 새벽이면 성가대가 집집마다 축복의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마치 정월보름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고 다니듯 말이다. 아버지는 특별히 절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집안과 엄마가 불교를 믿어서인지 교회에 다니는 이들을 예수쟁이라 비방하며 홀대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아버지가 나빠서라기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