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민실록(60) 상엽이의 전원일기

  시인 도연명은 노래했다. ‘자,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상엽이 아빠, 정일훈은 작년 2월, 가족과 함께 상주로 돌아왔다. 연고하나 없는 상주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연회귀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정일훈은 오랜 도시 생활에서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제 영혼은 생기를 되찾고 팍팍한 삶은 윤기 있는 삶으로 바뀌고 있다.

 
 

  안순열 할머니(83세), 아빠 정일훈, 엄마 차은미, 큰 아들 상엽(사벌초등학교 6년), 큰 딸 현아(사벌초등학교 3년), 막내 딸 유나(5살)등 일가족 6명은 20여 년간 살던 안성의 콘크리트 바닥을 멀리하고 흙냄새 풍기는 상주시 사벌면 덕가리에 자리 잡았다.

  충청도 총각 정일훈은 경기도 안성에서 안성 아가씨 차은미와 한 직장에서 근무했었다. 운동 잘하고 성격 좋은 총각이라면 당연히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겠는가. 인기 절정의 정일훈 총각은 차은미 아가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성맞춤 총각과의 불같은 사랑과 행복한 신혼.

  가장 정일훈은 직장 생활을 접고 사업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많은 노력을 했건만 사업은 정상 궤도에 오를 듯 말 듯 했다. 힘든 생활이 이어졌다. 사업을 접고 한동안 방황을 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은 있는데 앞일을 어이할거나.

  착한 아내 차은미가 남편의 기를 살려주며 살 도리를 얘기했다. “여보, 상주로 갑시다” 상주에는 농부인 친정아버지가 사 놓았던 과수원이 있었다. 만 사천평의 과수원에는 배나무 1,400주, 사과나무 100주 외에 살구, 더덕, 두릅, 도라지, 머위, 감자, 닭, 개, 땅 심 살리는 지렁이 등과 참한 살림집 한 채가 있었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남편이 아내의 거듭되는 권유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이삿짐을 싣고 내려오던 날, 장인이 말씀하셨다. “정서방, 열심히 해보게. 땅은 거짓이 없다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다. 사벌 땅에 자리 잡고 이웃 선배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먼저 원예농협 조합원으로 가입하라고 해 그렇게 하고 농기계장비 보조금과 정착금 지원 등 조합원과 귀농자의 혜택을 받았다.

  신참 농부는 어려서 농촌에 살았지만 농사일은 서툴렀다.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전지를 하고 봉지를 샀다. 서툰 전지질에 손이 아팠고 배나무를 쳐다보느라 목이 아프고 팔다리와 온 몸도 아팠지만 희망 넘치는 가슴에는 행복감이 넘쳤다. 배나무,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리는 과일은 우리 가정을 살리는 행복 열매고 도시민의 입맛을 살리는 건강 열매가 되리라.

  땀 흘리는 노동 뒤에는 수확의 기쁨이 있다. 계절이 두 번 돌아 수확의 시기가 왔다. 서툰 농민 부부는 배를 첫 수확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흘린 땀방울을 맛있는 과일로 되돌려 준 땅이 고마웠고 배나무, 사과나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첫해 수확물로 사과 150박스, 배 3100박스를 얻었다.

  당도 12브릭스의 배(일반 배의 당도는 10~11브릭스)는 울퉁불통 모양이 없었지만 높은 가격에 삼천박스를 알음알음으로 팔았다. 그 전에 살던 곳에서 신의를 잃었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나머지는 원예농협공판장을 통해 출하했다. 집안에는 희망이 넘쳐흐르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과수원을 감쌌다. 자연에 둘러싸여 노는 아이들의 좋아하는 양을 보면 흐뭇했다. 상엽이는 동생들을 데리고 감자 캐고 살구 따고, 배 먹고 사과 깨물었다. 개와 닭과 친구하니 자연과 한 몸이 된 듯하다. (2009년)

[출처] 상주시민실록(60) 상엽이의 전원일기|작성자 상주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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