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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양반 장수황씨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종가시리즈 4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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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6  17: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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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장수황씨, 황희, 황뉴, 모동, 백화산, 옥동서원

 영남지방은 평소에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렸는데, 그중에서도 상주(商州)는 더욱 군자들이 많은 곳이다. 모동면에는 백화산이 있고 그 앞에 옥동서원이 있다. 서원에는 황희, 황효헌, 황뉴, 전식 등의 사현(四賢)을 모시고 있다. 황희는 정승으로 드러난 분이고, 축옹(畜翁) 황효헌(黃孝憲)은 절의와 문장으로 세상에 유명한 분이며 전식은 상산삼로(商山三老)로 유명한 분이다.

   
▲ 옥동서원

 반간(槃澗) 황뉴는 축옹의 자손으로서 우복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시례(詩禮)의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고 훌륭한 스승에게 교육을 받아, 훈도(薰陶)하며 갈고닦아 그 덕기(德器)를 이룬 것이 노력하지 않고도 저절로 이루어진 점이 있으니, 이런 점으로 사람들은 현명한 부형과 사우가 있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 반간 황뉴의 생애를 기록한 신도비명을 소개한다.

 공은 이름이 뉴(紐)이고 자는 회보(會甫)이며, 호는 반간(槃澗)이다. 국초의 명재상인 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의 7대손이다. 증조는 황효헌(黃孝獻)으로 이조참판을 지내고 문장과 절행으로 잘 알려졌다. 조부 황징(黃憕)은 공조좌랑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부친 황준원(黃俊元)은 현감을 지내고 호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모친은 여흥민씨(驪興閔氏)로 부사직 민사열(閔師說)의 따님이다. 만력 무인년(1578, 선조11)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 의젓하여 성인과 같았고, 우복(愚伏) 정경세에게 수학하였는데 칭찬을 매우 받았다. 무신년(1608)에 부친상을 당하였고 임자년(1612, 광해군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계축년(1613)에 등제하여 괴원(槐院)에 뽑혀 보임되었다. 을묘년(1615)에 승정원 주서에 제수되었는데 어떤 일로 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하여 고명하게 마음을 완상하고 담박하게 지내며 세상에는 아무 뜻이 없었다. 경신년(1620)에 명나라 장수의 접반사로 명을 받았으나 고향에 있다는 이유로 체차되었다. 신유년(1621)에 제술관에 충원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임술년(1622)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인조반정 다음 해인 갑자년(1624, 인조2)에 예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겨울에 전적에 제수되고, 예조정랑으로 승진되었다. 을축년(1625, 인조3)에 사헌부 지평, 지제교에 제수되었다가 잠시 후 체차되어 사직(司直)이 되었다. 가을에 다시 지평에 제수되었는데 일로 인하여 왕명으로 외직에 보임되었다. 병인년(1626)에 경성 판관(鏡城判官)에 제수되었으나 병이 심해져 부임하지 못하였다. 3월 아무 날에 졸하니, 향년 49세였다. 상주(尙州) 중모현(中牟縣) 반수동(槃樹洞) 묘향(卯向)의 언덕에 모셔 와 장사하였다.

 부인은 풍양 조씨(豐壤趙氏)로 현령 조희철(趙希轍)의 따님이다. 아들 하나를 두었으니 정랑 덕유(德柔)이다. 후실은 군수 이희민(李希閔)의 따님과 사인(士人) 허당(許禟)의 따님이다. 측실의 아들로 덕념(德念)이 있다. 정랑 덕유는 3남 3녀를 두었다. 장남은 생원 빈(霦)이고, 다음은 유( )와 정(霆)이다. 딸은 사간 홍여하(洪汝河), 성석하(成錫夏), 군수 장만기(張萬紀)에게 시집갔다. 빈의 아들은 둘이니 종협(鍾協)과 종수(鍾粹)이다. 측실의 아들로 종익(鍾益), 종정(鍾鼎), 종태(鍾泰)가 있다. 유의 아들은 둘이니 종량(鍾亮), 종만(鍾萬)이다. 정의 아들은 넷이니 종대(鍾大), 종서(鍾瑞), 종탁(鍾度), 종준(鍾準)이다. 현손 중 아들은 담(湛), 람(灠), 혼(混), 렴(濂), 렬(洌), 연(沇), 호(灝), 심(沁), 서(漵), 철(澈), 기(淇), 붕(㵯), 기()이다.

 공은 자질은 탁월한데 어려서부터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 덕기(德器)를 힘들이지 않고도 성취하였으나, 연구하고 함양하는 공부는 자득(自得)한 데서 나온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부모 섬김에는 효성스럽고 자신을 단속함에는 엄하였으며 출처가 분명하여 구차하지 않았다. 하늘이 몇 년의 수명을 더 빌려 주었더라면 그 성취하는 바를 또 쉽게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아, 슬프다.

명은 다음과 같다.

 

습관으로 어려서 이룬 것은

부사(父師)가 가르치고 인도한 공이요

연구하여 깊은 조예 이룬 것은

직접 체득하고 증험한 공부 덕택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해져 가니

하늘 높이 봉황이 멀리 떠났다네

군신의 제회가 청명한 때에

높이 나는 기러기의 모습이로다

뜻은 그렇게도 원대한데

수명은 어찌 그리 짧았던가?

우뚝한 사 척의 봉분만 남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네

   
▲ 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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