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엔....

                                                                                         고 순 덕

 비가 오시길 기다렸다.

 전국이 가뭄으로 사람의 마음바닥까지 쩌억쩍 갈라질 즈음, 번뜩 쩌적 우루룽쾅쾅 빵빠레같은 천둥번개가 울리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하루, 이틀 장마로 이어지고, 이젠 그만 해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또 다른 바람을 가져 본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욕심인건가?

 하지만 올해 장마의 특성상 국지성호우라 하여 아직 해갈이 되지 않은 지역도 많다하니 개인의 욕심일랑 부끄러이 감춰두고 내리는 빗줄기에 눈길을 두고 멍하니 옛 생각에 잠기어 본다.

“야들아 오늘 학교 갈 때 우산 꼭 가이고 가래이. 무릎이 이키 쑤신기 또 비가 올랑갑다!”

 아침을 먹으며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일기예보엔 비 온다는 소리 없었는데, 장마도 끝이라 하고, 엄마 무릎 아픈 것과 비가 무슨 상관이라고...... 어린 난 그렇게 낡고 거추장스런 우산이 들고 가기 싫어 빈손으로 슬그머니 대문을 나서려는데 이번엔 아버지께서 우산을 들고 따라 오시며 소리치신다.

“너 엄마가 우산 가이가라 카자나!” “예~”

 입을 댓발은 내밀고 우산을 받아 들고는 터덜터덜 집을 나선다. 십리길을 걸어야 하는 등굣길. 마을을 지나 개울을 건너고, 산과 들을 몇 번 씩 넘고 지나야 학교인데. 비는 올 것 같지도 않은데 예쁘지도 않은 낡은 우산은 짐만 될 뿐. 또 지난번처럼 비가 오지도 않는데 우산을 가져가면 친구들이 놀릴까?

 
 

 그게 싫어 산속 작은 소나무들 사이에 우산을 숨기고 등교를 했다. 돌아올 때 다시 찾아서 들고 오면 엄마, 아버지도 모르실거야. 어린나이임에도 기발한 생각이라 쾌재를 부르며 학교를 갔지만 비는 수업시간과 함께 시작 되었고, 그냥 우산을 들고 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마침 그 날이 걸스카우트 단복을 나눠주는 날 이었던 것이다.

 학교가 파할 즈음 비는 잠시 멈추고, 해가 쨍쨍. 신나서 새 옷을 입고 뛸 듯, 나를 듯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뚝뚝. 새 옷이 젖을까 걸음을 재촉했지만 열 살짜리 계집아이의 걸음에 십리 길은 멀기만 했다. 다급한 마음에 우산을 되찾는 일도 깜빡 하였고, 그렇게 생쥐꼴을 하고 마을 어귀에 다달았을 즈음 아버지께서 우산을 들고, 나를 마중 나오셨다.

“니 아침에 우산 가이고 갔는데, 우산는 우째고 이키 젖은기라?”

“우산? 학교에 놔뚜고 왔어요......”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아버지께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말을 돌렸다 “아부지 나 새 옷 받았는데, 이뿌지요?”

 집에 도착하니 온통 고소한 향기가 가득하다. 아버지께서 논둑 터놓은 곳에 족대로 미꾸라지랑 붕어, 논 골뱅이를 잡아와 배를 따 놓으시면, 엄만 작은 놈들은 튀기고, 큰 놈들은 감자랑 대파, 청량고추, 방아잎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매운탕을 끓이셨다. 어린 난 맵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매운탕은 싫었지만 작은 미꾸라지 튀김은 너무 고소하고 좋아 했다.

 그렇게 비에 젖은 몸과 줄인 배를 채우고, 내게 배당된 책상도 없어 방바닥에 업드려 숙제를 하다보면 매운탕을 끓이느라 지핀 불의 따뜻함이 방바닥에 올라 배를 타고 눈꺼풀을 짓누른다. 언제 잠이 든 걸까?

“야야 얼릉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밖은 어둑어둑, 오늘 아침엔 일찍 깨우신 건가? 아차차 숙제도 덜 했는데...... 울먹울먹 징징거리며 공책을 끌어당기는데, 작은 언니가 매서운 눈초리로 “저녁 먹어!” 한다. 저녁이라고? 아버지께서 또 장난을 치신거다.

 중학생인 작은언니는 엄마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맏다싶이 했고, 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공부 좀 한다고 집안일은 나몰라라하는 내가 빨래꺼리에 새 옷까지 생겼으니 언니의 눈꼬리가 올라갈 만도 하지.

 
 

 장마철 학교를 일찍 마치는 토요일이면,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작은오빠를 따라 나선다. 또 미꾸라지 튀김을 먹고 싶은 심산으로 마을 앞 도랑을 다리 위에서 아버지의 족대를 한쪽씩 잡고 버티면, 힘센 물살이 족대 안으로 저절로 미꾸라지와 붕어를 몰아다 준다. 금방 찌그러진 주전자는 미꾸라지로 가득하고, 둘의 옷은 또 빨랫감으로 전락을 한다. 작은언니의 눈매가 또 무서워 질거다. 작은오빠가 소꼴을 베러가고 없는 날에는 동생과 짝을 맞추어 나간다. 그런 날은 내가 작은오빠 역할을 하며 큰소리를 치고, 체격이 작은 동생은 낑낑거리며 물찬 주전자를 들고 따라온다. 맵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매운탕을 드시고 흐뭇해 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작은언니의 짜증쯤은 겁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 학교 가는 길은 정말이지 싫었다. 멀어도 너무 멀고, 아무리 조심해도 발이 젖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기에..... 하기야 겨울은 겨울대로 힘들긴 마찬가지. 눈길에 미끌어져 넘어지고, 발이 젖어 시리고, 아프고....

 비가 오는 날의 내 어릴 적 모습은 그렇게 아득하고, 그리움만 남아 있다.

2017. 7월 비오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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