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이야기 

                                                                                                               고 순 덕

 마을에 체험을 온 아이들에게 책을 둘둘말은 책보자기를 내밀며, “이게 뭔지 알아?” 했더니 빙글빙글 쑥스러워하며 모른다 한다.

추억의 책보자기
추억의 책보자기

 당연하지 초등학교 아이들이 책보자기를 언제 보기나 했을까? 사실 나도 초등학교시절 책보자기를 메고 다닌 사람은 마을 언니 하나와 나이가 많았던 남자동기 하나 그렇게 둘만이 기억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검은 보자기쯤으로 생각되고, 마을 언니는 붉은 색이었나? 예전에는 십리 등굣길을 마을 아이들이 함께 모여 줄을 지어 가기도 했었다. 그럴 때 그 언니는 허리춤에 그리고 나이 많은 남자동기는 어깨에서부터 비스듬히 책보자기를 질끈 묶고 냅다 달려가곤 했다.

 두 손이 자유로우니 오며가며 찔레도 꺽어먹고, 뽀삐에 짠데, 오디따먹기, 남의 밭 무서리까지..... 그 때는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그저 군것질꺼리가 없어 놀이삼아 먼 등·하교 길을 그렇게 걸어 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쩌다 그 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십리길이 짧게 느껴지도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도시락
도시락

 학교에 갈 때는 몰랐는데 올 때는 언니가 걸을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책보자기 속에서 소리가 났다. 빈 도시락에 숟가락이 부딪는 소리. 그게 우서워 킥킥 거리는데 언니는 외히려 더 몸을 흔들어대며 소리를 내고 심지어 춤까지 춘다. 한바탕 깔깔거린 다음 그 언니가 냅다 달리면 우리도 함께 따라 달리는데 도시락 합주소리가 달그락, 덜그럭덜그럭. 언니의 연주는 맑고 높은 소리를 가방 속 우리 도시락은 그보다 작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러면 더 폴짝거리며 달리고, 걷다보면 어느새 윗마을이 산어귀에 나타나고 그렇게 십리 길을 쉽게도 걸어 다녔다. 지금은 그 언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들의 멀고 힘든 하교 길을 즐겁게 해 주던 도시락은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방 한쪽에 아무리 잘 갈무리를 해도 반찬 국물이 흘러 가방이 흔근해지고, 책에 국물이 메어 붉게 또는 검게 물들어 주글주글.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냄새는 또 어떻고...... 고학년이 되면서 부러웠던 것이 작은 언니의 도시락 가방 이었다. 처음엔 손수건 같은 것에 싸서 조심조심 들고 다니더니, 고등학생이 된 언니는 실로 예쁜 가방을 떠서 들고 다녔다.

 친구들도 하나 둘씩 도시락가방,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녔지만, 난 언니의 그것을 물려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반찬국물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었다. ‘엄마는 김치 말고, 콩조림 말고, 무짱아찌도 말고, 매일 오리알만 싸 주지. 친구들은 빨간 소시지도 잘 싸오는데.....’ 당시 우리집엔 닭도 있었지만 오리를 몇 마리 키우고 있어 엄마는 오리알에 야채와 밀가루를 섞어 호박잎을 깔고 밥 위에 쪄서 반찬을 해 주셨고, 작은언니가 밥을 할 때는 야채를 넣고 알을 잘 풀어 콩기름을 두르고 전처럼 부쳐 썰어서 도시락에 넣어 주었다.

 둘 다 김치반찬보다는 좋았다. 맛있는 반찬을 싸간 날에는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공부시간 마치는 종은 왜 그리도 더디 울렸는지? 점심시간도 되기 전 도시락을 해 치운 친구들은 빈 도시락과 숟가락을 들고 교실을 누비며, 맛있는 반찬을 싸온 친구의 밥을 한 숟가락 슬쩍하고는 냅다 도망치곤 했으며, 여자아이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책상을 붙이고 모여앉아 반찬들을 나누어 먹었다. 가끔씩은 이미 반찬들이 밥으로 다 넘어가버린 밥에 ‘염소똥’이라 불리던 검은콩조림이나, 고추장, 멸치볶음 등을 넣어 밥을 아니 도시락을 흔들어 비빔밥을 해 먹기도 했는데, 그 땐는 정말이지 염소똥도, 골금짠지도, 무지도 다 꿀맛 이었다.

 학교에서는 숙제검사와 복장검사, 채변봉투만 검사한게 아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검사도 했었다. 통일벼가 나오고 쌀 생산량은 늘고 있었지만 혼분식을 강조하던 시절. 하얀 쌀밥을 싸온 사람은 선생님께 훈계를 들어야 했기에 다른 친구의 보리쌀이나 콩을 가져와 밥 위에 장식을 하기도 했고, 점심시간 전에 몇 숟가락 뜬 친구는 뚜껑을 반만 열고 반대쪽을 보여 검사를 맞는 가슴 콩닥이는 시간도 있었다.

추억의 책보자기
추억의 책보자기

 겨울이면 보온도시락이 흔하지 않던 때라 셋째시간을 마치면 난로위에 도시락 얹기 경쟁이 또 치열하다. 넷째 공부시간엔 아예 선생님께서 도시락의 아래 위를 바꿔 주시거나, 당번을 시켜 타는 도시락이 없게 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그 추운 날에도 따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우리 집의 첫 보온도시락은 큰오빠의 것 이었다. 큰오빠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군생활을 했는데, 엄마는 어렸을 적 몸이 약했던 오빠를 위해 보온도시락을 장만하셨고, 그 안에는 신기하게도 작은 아버지 밥공기 같은 그릇과 뚜껑, 옆에는 하얀 플라스틱 물병에 스티로폼 뚜껑위에는 칸칸이 나누어진 반찬통도 있었다. ‘오빠는 좋겠다. 씨이~ 큰오빠만.... ’

 따신밥과 물병엔 뜨끈뜨끈한 국물을, 큰오빠의 반찬은 또 좀 더 특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샘나고 부럽던 큰오빠의 보온도시락은 작은오빠를 거쳐 내게로 내려 올 즈음엔 나도 다 커버려 겉멋이란 걸 부리기 시작했고, 오빠의 낡은 도시락 따위는 눈에도 코에도 차지 않아 새 도시락을 사 달라 엄마를 졸랐던 것 같다.

 어쨌건 그 때의 보온도시락은 도시락을 스티로폼 가방에 맞춰 넣는 형태였다면 요즘은 도시락 용기 자체가 진공벽으로 되어있어 뜨거운 것은 뜨겁게, 차가운 것은 차갑게 보관하고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있음에도 도시락을 싸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국물이 새지 않는 반찬통 대용으로 커피병이 최고였는데, 요즘은 새지 않고, 물들지 않는 반찬통이 참으로 흔하다. 엄마의 말투를 빌자면 “ 차암 좋은 세상이다!”

 체험 온 아이들에게 책보자기를 메어 주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해 본다. 나도 내일은 군 입대를 앞 둔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만나러 가야겠다. 오랜만에 싸는 도시락 잘 될랑가 몰라........

추억의 책보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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