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숙제

고 순 덕

 요양병원에서 의무기록사로 일하고 있는 큰 딸이 어제는 문득 “나도 방학하고 싶다. 힘들어.” 한다. 방학? 그럼 공부 열심히 해서 교대나 사대를 가지 그랬냐니까 아무 대답이 없다. 초`중`고 아이들의 방학이 대부분 끝이 났다.

방학숙제들은 다 해 갔으려나?

 방학식을 하는 날에는 통지표를 받았다. 수,우,미,양,가에 평균, 석차 등과 간단한 학교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방학을 하려면 사전에 일일계획표를 만들어 검사를 받아야 했고, 방학생활이나 탐구생활이라는 방학책을 받았다. 과목별로 빽빽이 쓰여 진 숙제표를 받았고, 한 학기를 마감하는 우등상장도 받았다. 책상머리에 부쳐진 일일계획표엔 방학인데 왜 그리 일찍 일어난다고 했는지 오전 6~7시 기상에 세수하기, 밥먹기, 독서하기, 놀기, 점심먹기, 낮잠자기, 숙제하기, TV시청, 운동하기, 저녁먹기, 일기쓰기 꿈나라. 뭐 그런 것들로 채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계획 중 가장 잘 지킨 항목은 놀기와 밥먹기, 꿈나라였다. 방학을 하고 처음 며칠은 계획표에 맞춰 생활하려 애썼지만, 엄마가 밥도 제때 안주시고, 늦잠도 자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하루, 이틀 계획과 어긋나게 되면 언제부턴가 계획표 따로 생활 따로가 된다. 친구들은 내키는데로 산으로 들로 때로는 강으로 뛰어다니며 노느라 바쁜 일과를 지내고, 난 골목을 지키며,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깡통차기를 했다. 방학하고 한 사나흘은 일기장에 꼬박꼬박 ‘오늘은 꼬마하고 놀았다. 공기놀이를 했는데 꼬마가 이겼다. 내일은 꼭 이겨야겠다. 참 재미있었다.’ 뭐 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 된다.

 
 

 하지만 그 또 한 며칠 뿐. 친구들은 오후가 되면 강으로 물놀이를 가거나 소를 몰고 들이나 산으로 소풀을 뜯기로 갔다. 그러면 난 외톨이가 되었다. 우리 집에도 소가 한 마리 있었지만 작은 오빠가 몰고 나갔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그 때부터 혼자놀기로 방학생활이나 탐구생활을 한두 장씩 하곤 했다.

 곤충을 잡아 관찰하고 답해야 하는 문제는 삽화로 그려진 그림을 자세히 살펴 답을 쓰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잔꾀 부리기엔 일각연이 있었나보다.

 
 

 그렇게 후다닥 지나간 여름방학은 막바지에 다달았고, 꼬마와 난 숙제를 함께 하자는 명분으로 책과 공책을 들고 모였다. 하지만 모여서는 다시 공기놀이, 땅따먹기. 결국 개학이 사흘이나 남았을까? 엄마에게 비가 언제 왔었는지 물어물어 그림일기를 채우고, 꼬마는 나의 탐구생활을 그대로 베끼다 지네 큰오빠한테 혼이 나기도 했다. 나의 유일한 고향 여자친구인 꼬마의 방학숙제에 대한 일화 중 최고는 국민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다. 어느 날인가 꼬마네 큰오빠가 “꼬마야 순더기는 방학숙제 하던데 넌 안하나?” 했더니 당당하게 다 했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가지고 와 보라 했더니, 4절지 가득 채운 숙제표를 그대로 베껴두고는 숙제를 다 했다고 한 것이다.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 꼬마로서는 그런 엉뚱한 일을 한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초등학교 때는 글자를 배워 학교에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숙제가 선생님이 첫줄을 써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그대로 한두장씩 써 가는 숙제이거나, 국어책 몇 쪽에서 몇 쪽까지 열 번 써오기 등의 숙제이다보니 꼬마는 아마도 방학숙제 또한 숙제표를 그대로 따라 쓰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들기 숙제는 냇가에 가서 쪼대흙(찰흙)을 파서 만들었고, 방학이라고 서울 친척집이라도 며칠 다녀올라치면 자랑꺼리가 줄줄 새 옷에 말꼬리가 올라가는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하기까지 했었다. 아차차 숙제.

 이처럼 숙제를 하기 위해 모이기는 했으나 다른 짓거리로 시간을 보내고 결국 숙제를 다 마치지 못 한 채 개학을 하면 선생님께선 어김없이 숙제 해 온 것을 내라 하시고, 우린 잔뜩 주눅이 들어 시선을 떨구었다. 그럼 선생님은 며칠의 여유를 더 주셨고, 그 후 숙제를 제대로 잘 해 온 친구들에겐 상장도 주워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 초등학생의 경우 방학책이나 숙제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일기도 한주에 두 번만 쓰면 되고, 방학책은 아예 없단다. 그도 그럴것이 방과후 가야하는 학원이 몇 개며, 귀가시간이 몇 시인데 숙제를 내 준다한들 할 시간이나 있을까? 성인이 되고 이젠 누가 숙제라고 언제까지 무얼 어떻게 하라는 것 대신 업무지시를 받으며 살고 있어 힘든 나날들을 이지만, 스스로의 삶을 위해 나에게 내는 숙제 하나쯤은 두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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