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두 번째 위문편지

고 순 덕

 학창시절 누구나 몇 차례씩 위문편지를 써 본 기억이 있을거다. 우리들이 이렇게 편안하게 명절과 휴일을 지낼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휴일에도 묵묵히 일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중에 한 자리가 국군장병 여러분!

해군 신병훈련소
해군 신병훈련소

 긴 연휴의 시작은 국군의 날 이었다. 그리고 개천절, 한글날. 예전엔 중간중간 빨간 날이 끼어 있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많아 그저 좋았던 시월. 특히나 시월엔 가을운동회도 있고, 갖가지 백일장과 행사도 많았다.

육군 훌련소 체력단련
육군 훌련소 체력단련

교외 사생대회나 악대부 경연, 백일장뿐만 아니라, 교내에서도 한글날을 전후해 무궁화그리기, 태극기그리기, 애국가 쓰기, 사생대회, 시화전 등과 함께 빠지지 않았던 것이 ‘국군장병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쓰기가 있었다.

 그러면 누군지도 모르는 국군들의 노고덕분에 저희가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어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받는 사람을 제일 먼저 쓰고, 첫인사는 날씨이야기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 하고 싶은 말에는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을 하며, 끝인사로 건강하시라고 하고, 보내는 날짜와 보내는 사람올림으로 마무리되는, 자율적이지만 그 내용이나 형식이 정해진....... 예나 지금이나 편지쓰기는 왜 그리 쉽지가 않은지? 특히나 위문편지는 불특정한 이에게 말을 거는 작업이다 보니 더욱 막막하다.

“국군장병 아저씨께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국군장병아저씨께 감사의 편지를 쓰라는 시간이......“ 이러고 나면 한참을 할 이야기가 없다. 그래도 과제이다 보니 어찌됐던 최소 양면괘지 한 쪽은 채워 10원짜리 우표를 붙여 선생님께 제출을 해야 했고, 얼마 후 몇몇 아이들에게 답장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생의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중학생 때도 이 작업이 크리스마스나 방학을 앞두고 행해졌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쌀을 편지봉투에 하나씩 담아내기도 했고, 크리스마스씰 이라고 우표같이 생긴 것을 사 위문편지 봉투에 함께 붙여 보내기도 했다. 어른이 된 요즘은 손편지 쓰기도, 우표도, 씰도 생소한 것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빛바랜 기억 속 그 때엔 손편지가 흔했고, 빨간 자전거에 큰 가방을 멘 우체부 아저씨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한 행사였는지 아님 나의 엉뚱함이 시작한 행동이었는지, 당시 유행하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노랫말 중에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라는 주소로 장난스레 위문편지를 써 보낸 일이 있었다. 그리고 독도수비대 의경이라며 거의 1년 가깝게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 다 큰 가시나가 연애편지 쓰고 다닌다고 혼이 나고는 그만 두었다.

 하지만 난 결국 대학 선배에게 위문편지를 써 주다 정이 들어, 결혼을 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삼년을 거의 매일같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적어 편지를 보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삼사일 치를 모아 한꺼번에 보내면 선임이 장난삼아 빼앗아 읽다가 너무 길어 지루하다며 돌려주기도 했단다. 남편은 군에서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았고, 전역 후에도 우리의 편지쓰기는 계속 되었다. 우리 부부의 연애사에 가장 큰 보물인 이 편지들은 지금도 가끔씩 남편이 못마땅하거나 미울 때 꺼내어 본다. 그러면 ‘내가 미쳤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인데 하며 또 한 번 서운함을 접고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변화는 그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이 두렵지가 않아졌고,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 준 위문편지쓰기는 요즘 남편보다 멋진 다른 남자에게로 발송되고 있다. 근 30년 만에 받아보는 군사우편! 그 때와는 다른 감동과 반가움, 눈물이 베어난다. 막내가 지난 8월 군 입대를 하고 다시 날아든 군사우편과 편지쓰기는 군사우편이란 직인만 그대로일 뿐 내용도 모습도 달라져 있다. 그리고 내가 보내는 편지 또한 봉투도 우표도 없는 인터넷편지.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은 다름을 넘어 더 큰 것을..... 매일매일 교육훈련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훈련하는 아들의 모습을 눈이 빠지라 찾았고, 편지를 쓰지 못하는 날에는 댓글을 달았다.

 똑같아 보이는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아들의 얼굴 찾기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역시 내 아들은 빛나 보여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반쪽만 보여도... 수료식 날 한 묶음의 우표와 편지봉투를 선물(?) 했다. 추석명절 아들이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아들이 보내준 따뜻한 군사우편과 나라사랑전화가 있어 항상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는다. 군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 가을 더 높은 하늘의 푸르름과 흐드러진 들국화, 물들어가는 산천을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이라는 것에 문득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고맙다 내 아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아들과 딸들. 긴 명절연휴 우리들을 위해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애쓰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영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