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추억

고 순 덕

에티오피아 새마을시범마을 및 칠곡평화마을 방문 지원팀 출국
에티오피아 새마을시범마을 및 칠곡평화마을 방문 지원팀 출국

 울긋불긋 산과 들이, 한들한들 갈대의 손짓이 일어나라일어나라! 나서라나서라! 한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가슴이 울렁울렁 무작정 어디건 떠나고 싶고, 걷고 싶어지는 계절 가을이 깊었다. 어제 오늘 느닷없이 들이닥친 추위에 이 설렘도 잠시의 머무름인 것을 알기에 더 떠나고 싶지만, 막바지에 이른 가을일이 발목을 잡는다. ‘가긴 어딜 가. 일을 해야지!’ 그래야지..... 이내 큰 숨 한 번 고르고는 다시 감깍기 기계 앞에 앉는다.

 벌써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감깍기 작업. 어깨가 천근만근 무겁고 아프다. 계속 일만 하자니 밥은 먹었는데도 무언가 허전하고, 입도 심심하다. 이럴 때 어른들은 농주를 드셨나보다. 막걸리 한 사발 벌컥벌컥. 그것으로 허기도 달래고 잠시의 쉼도 가지며, 육체의 고통에 진통효과도 주셨으려나? 사실 난 술을 마시지 않아 그 기분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한 번씩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다.’ 하는 날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여태 단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릴적 모내기를 하는 날이었을까? 아니면 들에서 타작을 하는 날이었을까? 아무튼 들밥을 내어가던 날 엄마의 심부름으로 나는 빈주전자를 들고 구판장으로 향했다. “순더게이 닌 주전자 가이고 구판자 가서 막걸리 두 대만 받아 가이고 따라와래이. 내 먼지 가고 있으깨. 빨리 따라와야 댄데이.” “돈은?” “나중에 준다꼬 적어노라케라.” “이상하기 시른데....” “빨리 안가나! 바빠 그러깨 낼 준다카고, 느즈만 아부지한테 또 혼 난데이.” 동생은 물주전자를 들고 먼저 엄마를 따라 들로 나섰다.

 우리 마을에는 두 개의 가게가 있었는데, 하나는 윗마을 입구에 있는 말 그대로 조그만 점빵 이었고, 하나는 마을 회관에 멋지게 진열대까지 차려진 구판장이 있었다. 구판장 한 쪽에는 진열된 상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항아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막걸리단지였다. 요즘은 막걸리 병이 있어 소형 포장되어 있지만, 그 때는 말통으로 막걸리를 배달하는 아저씨가 계셨다.

 
 

 우체부아저씨의 빨갛고 날렵해 뵈는 자전거와 달리 막걸리배달 아저씨의 자전거는 핸들쪽도 복잡하게 뭐가 많았고, 힘도 세어 보이는 것이 뒤에는 널빤지를 깐 넓은 화물칸도 있었다. 화물칸에 말통을 쌓고, 양쪽으로 또 걸고 배달해 온 아저씨가 항아리에 막걸리를 쏟아 부우면 구판장 아주머니는 기다란 자루바가지로 한 바가지 물을 부어 휘이휘 저었다. 내가 술을 살 때도 아주머니는 항아리 속 막걸리를 먼저 한번 휘젓고 한 바가지를 떠서는 높이서 부어내리기를 몇 차례 그제야 한바가지 가득 떠서는 내가 가져간 주전자에 벽에 흘리며 넘치게 담아 주셨다. 처음엔 조심조심 무겁게 느껴지지 않던 막걸리 주전자는 구판장에서 멀어질수록 더 무거워지고 찰랑찰랑 넘쳐흘렀다. 팔은 점점 아파오고 다리를 타고 흐르는 막걸리 냄새와 축축함은 정말이지 싫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막걸리가 흘러넘치지 않게 한모금 마시기. 출렁이는 막걸리 주전자는 어린 한모금으로 잠자지 않았고, 한모금이 두모금, 세모금.... 그 다음은 이상하게도 힘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이 취함 이었을까? 동생은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어른들 틈에서 술찌게미에 사카린을 타서 먹는 것을 얻어먹고는 취해 온 종일 놀지도 않고 잠만 잔 일도 있었다. 엄마는 집안에 큰 일이 있거나 명절이 다가오면 술을 직접 빚기도 했는데 고슬밥을 찌고, 누룩을 섞고 항아리에 넣어 창고에 두면 뽀글뽀글. 아버지도 술을 드시지 않지만 엄마가 술을 빚는 건 이웃이나 친지를 위한 것 이었다.

 
 

 막걸리를 빚는 일은 엄마에게 나눔이고, 손님맞이 또는 큰 일을 치르기를 위한 준비과정 이기도 했다. 살림꾼인 작은언니는 막걸리를 넣어 술빵을 쪄 주었는데 커다란 오봉에 뭉글뭉글 기포가 오른 반죽을 부어 가마솥에 쪄낸 빵은 최고의 간식이었다. 추석엔 맨드라미를 올린 술떡을 찔 때도 막걸리를 넣었다. 때로는 막걸리를 부엌 구석에 매달아 두고 식초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이렇게 쓰임이 다양했던 막걸리는 늘 서민들 가까이에서 기쁨도 슬픔도 힘듦도 함께 녹여 냈던 것 같다.

 특히나 땀 흘려 일한 다음 마시는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에 뽀얀 막걸리. 그것은 술이라기보다 피로회복제이고 진통제였던 것 같다. 나도 얼른 이 작업을 끝내고 들국화 띄운 막걸리 한 잔 추억을 안주삼아 마셔보고 싶다.~~~  딱 한 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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