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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겨울비 내리던 날고순덕의 생활수기 시리즈 29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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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3  08: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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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내리던 날

고 순 덕

   
▲ 고순덕

 새해가 되면서 한파와 잦은 눈, 지난주엔 봄날인가 싶게 기온이 올라가더니 겨울비가 내린다. 일하는 곳에 예약을 위해 온 손님을 객실과 시설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안전점검 나온 공무원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다보니 신 안이 질퍽질퍽 양말까지 다 젖어 버렸다. 그러잖아도 흐린 하늘에 습한 바람, 기분이 더욱 꿀꿀해 진다. 그러고 보니 학교를 다닐 때도 뽀송뽀송 상쾌한 발걸음으로 다닌 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십리길. 초등학교, 중학교 9년을 들길과 산길, 내를 건너고 철길을 넘어 매일 아침 40여분씩 뛰며 걸어 다녔다. 봄이면 봄이라 서리와 이슬에 젖어 질퍽거리는 발걸음 이었고, 여름은 여름대로 장마 비에 젖은 발걸음으로 등교를 해야 했다. 가을이면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에 운동화뿐만 아니라 낡은 우산속 머리까지 축축해 졌으며, 겨울이면 쌓인 눈이 신 안으로 들어 발을 아리도록 시리게 했다. 방수가 되지 않는 신 탓도 있겠지만 멀고 험한 등하교길에 갈아 신을 신도 하나 없이 사계절 같은 신을 신고 다니니 빨리 낡아 떨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계절에 맞게 또는 기능에 따라 색깔에 따라 코디하느라 인당 몇 켤레씩의 신을 가지고 있지만, 학창시절 그 때는 두 켤레의 신을 두고 번갈아 신는 이도 드물었다. 토요일이면 오빠운동화부터 내 운동화 동생운동화까지 솔질을 해 빠는 것도 주말 일과 중 중요한 것 이었건만 지금은 운동화빨래방이 따로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나뿐인 운동화가 다 마르지 않는 날이나 눈길에 젖기라도 한 날이면 부뚜막 연탄가에 세워 밤새 말리려다 누렇게 태워먹기도 했고, 서리가 뽀얀 날이면 윗목이나 소죽솥 뚜껑위에 올려 따뜻하게 해서 신고 집을 나서기도 했다.

 국민학교 때야 간간이 장화를 신거나 겨울 털신을 신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대부분이 남학생은 검은색 운동화를, 여학생은 곤색벙어리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신 바닥이 얇고 잘 닳아 뒤꿈치쪽 바닥에 구멍도 빨리 났고, 걸을 때 운동화가 꺽어지는 발가락라인 쪽에는 얇은 천과 속 재료가 쉽게도 떨어졌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살림에 금방 새 신을 사 신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엄마를 조르고 엄마를 통해 아버지에게 새 운동화 주문이 들어가면, 아버지는 지푸라기나 면실로 신고 다니던 신의 사이즈를 재어 언제나 그보다 한 치수 큰 신을 사 오셨다.

   
 
   
 

 

 

 

 

 

 

 

  크는 아이들 발에 맞게 사 오면 오래 신을 수 없으니 크게 사야 오래 신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하셨다는데, 면실이 아버지 주머니에서 꼬임이 풀어져 더 길어지면 영락없이 두 치수 큰 운동화를 사 오셨고, 제 사이즈로 바꾸려면 다음 장날까지 닷세를 더 기다리며 떨어진 운동화를 끌 듯 신고 다녀야 했다. 중학시절 어떤 친구는 등굣길 진땅에 새 운동화를 아끼느라 맨발로 걸어오다 학교 뒤 내에서 발을 씻고, 거기서부터 운동화를 신었다고 했다. 믿기지 않지만 어쩌다 생긴 새 운동화를 안고 잔 일을 생각하면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초여름 긴긴 장마에 운동화가 마를 새도 없어 젖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신어야 할 때는 차라리 국민학교 시절 신던 말표나 기차표 고무신이 더 훌륭하다는 생각도 했다. 물이 넘쳐들지만 않으면 스며드는 일은 없었고, 혹시나 젖어도 물기 툴툴털어 거꾸로 엎어두면 금새 말랐다.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새 운동화를 신고 싶어 하굣길에 바위나 거친 흙바닥에 일부러 고무신을 문질러 바닥을 닳게 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 친구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검정고무신은 쉬이 닳지 않았다. 어느 날 드디어 고무신을 구멍 낸 친구가 쾌재를 부르며 새신을 기다린 다음 날 친구는 운동화는커녕 새 검정고무신을 신고 뒤꿈치가 까지는 벌을 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질난 헌 고무신을 그냥 신을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날 빨간색 털부츠를 소원하던 소녀는 이젠 반백이되어 여포신(여자이길 포기한 신발. 굽이 낮고, 모양보다 편함을 추구하는 신을 뜻함)을 즐겨 신는 중년이 되었다. 엄마나 아버지를 졸라 새 신을 얻는 일은 꿈결에나 가능하게 되었고, 딸들이 사 주는 여포신이 신발장 안에 가득하다. 어쩌다 뒷굽이 조금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하는 날에는 발바닥이 아파 걷기조차 힘겨워졌다. 그럴 때는 “난 전생에 인어공주였나봐! 아직까지 걸을 때마다 가시밭을 걷는 것처럼 발이 아픈걸 보면......” 입은 웃고 있지만, 마음엔 겨울비보다 차가운 서글픔이 내린다. 둘째가 사 준 털신을 몇 년째 신다보니 어디서 물이 스몄는지 질척거리는 신을 씻어 두고, 잠시 옛 생각에 젖어 언 발을 녹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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