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간첩 이었을까?

고 순 덕

 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양지바른 화단에 뾰족뾰족, 진한 향기를 몰고 올 히아신스 새싹을 발견했다. 벌써? 한결 포근해진 햇살을 받으며 산책길에 나섰다. 버들강아지가 뽀송뽀송 뽀얀 털로 남은 추위에 붉어진 속살을 가리고 있다. 봄이 조심스레 다가오는 걸 훔쳐 본 느낌이다.

 
 

 국민학교 1학년 때였을까? 아님 2학년? 혼자서 산길을 걸어 집으로 털레털레 오고 있는데 버들강아지를 만났다. 뽀얗고 보드라운 털옷을 입은 버들강아지가 얼마나 예쁘던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가지를 꺽어 들었다.

 며칠 전 어린이 드라마에서 본 내용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너무 예뻐서.....

 드라마 주인공이 나뭇가지를 꺽었는데 밤에 하얀 잠옷을 입고 팔이 없는 소녀가 나타나 슬피 울며 내 팔을 네가 꺽어 가 아프다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내 꿈에도 그 소녀가 나오지나 않을까 무서웠지만 이미 저지른 일. 무서움을 잊기 위해 집을 향해 내달렸다. 집까지 이제 작은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 상황. 가쁜 숨을 쉬느라 발걸음을 늦추고 있는데, 저쪽 산모퉁이에서 키가 큰 낮선 아저씨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순간 ‘내가 꺽은 나무는 소녀가 아니고, 아저씨 나무였나?’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웃고 있으니 내가 꺽은 나무귀신은 아닐 거야!’ 짧은 순간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쭈삣쭈삣 낮선아저씨 앞까지 갔을 때, 아저씨가 말을 걸어 왔다. “꼬마야, 넌 어디 사니?” ‘서울사람인가?’ “저개 신전 살아요.” “그래? 몇 살이야? 넌 이름이 뭐니? 아버지 성함은?” 뭐 그런 것들을 물어보며 함께 마을 쪽으로 걷다가 내 손에 든 버들강아지를 가리키며 “이 꽃은 이름이 뭐야? 개나리니?” 하는 거다. ‘개나리냐고? 개나리도 모르고, 버들강아지도 모른다고? 이 아저씨 뭐지?’하는 속마음을 숨기고 “버들강아지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아저씨 정말 뭐지? 산에서 내려 왔나? 버들강아지도 모르고, 개나리도 모르는 어른이 어딨어. 혹시 간첩 아니야?!’ 당시엔 멸공방첩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간첩신고에 대한 포스터나 표어도 많았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는 간첩포스터에는 항상 썬그라스를 쓰거나 중절모를 써 머리에 뿔을 가렸었다. 어린 마음에 담겨진 간첩의 모습은 그랬기에 이 사람이 과연 간첩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또 간첩은 산에서 내려오거나 늦은 밤 라디오를 듣고, 이불을 집어쓰고 똑똑똑 무전하는 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모두 간첩일거다. 늦은 밤 제 방에서 카톡카톡 전화기 버튼을 빠른 속도로 토도독토독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 사람이 진짜 간첩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어디로 갔는지?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구호도 있었는데.....

 그 후로 한동안 그 일을 신고하지 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친구들은 가끔씩 삐라라고 하여 북한에서 풍선에 실어 보냈다는 붉은 종이를 주워 왔다. 그러면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상품으로 연필이나 공책도 받았다. 하지만 난 무슨 보물찾기라도 하듯 애써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서 놀다 갈 생각으로 파출소 앞을 지나고 있는데, 아니 이게 뭘까? 낮은 향나무 아래 붉은 종이가 바람에 하늘하늘. 얼른 주워들었더니, 지금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보기에도 섬짓한 필체에 읽으면 안되는 글들이 빼고히 쓰여 있었다. 반사적으로 붉은 종이를 들고 파출소로 뛰어 들었다. 그 날 난 간첩을 잡아 몇 백 만원의 상금을 받은 것만큼 기뻤고, 어쩌면 간첩이었을지 모를 그 아저씨를 신고하지 못한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버들강아지와 간첩에 얽힌 추억은 매년 버들강아지를 처음 볼 때면 스멀스멀 아지랑이 오르듯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시절 ‘간첩신고는 113’하는 표어와 수사본부라는 수사반장에 버금가는 간첩 잡던 드라마도 함께.

 최근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 “강철비” “그물” “동창생” 등등. 그들도 가족간의 사랑을 위해 공작원이 되어야 했고, 금새 우리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한민족인 때문이라 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휴전상태의 불안함 속에서 서로가 긴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우리의 소원인 통일의 그 날이 어서 와 주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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