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캐러 가세~~

고 순 덕

 

 “순더가 나세이(냉이) 캐러 가자~” “알았어. 잠깐만, ”

 양지바른 밭머리엔 벌써 냉이가 붉은빛이 감도는 진초록의 반가움이 손짓을 한다. 나뭇가지를 꺽어 냉이 주변 흙을 파헤치면 봄 향이 바람을 타고 올라온다. 대여섯뿌리 캐어다 된장에 넣으면 향긋한 냉이향이 온몸에 가득 하겠지. 그럼 나도 봄기운에 젖어 나폴나폴 나비처럼 날아오를 거야 기분만이라도...... 조금 성급한 듯 하지만 봄이 오고 있음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설을 지나 땅이 녹기 시작하면 쑥보다 먼저 올라오는 것이 냉이다. 지난 해 마른잎 사이에 그대로 새 잎이 가운데부터 밀고 나오면 또래의 계집아이들은 올망졸망 냉이 캐기 놀이를 떠난다. 내겐 냉이 캐기도 놀이였다. 그랬기에 부엌 벽에 걸린 작은 대소쿠리나 호미를 가지고 신이나 콧노래까지 흥얼 거리며 길을 나선다. “야 넌 고걸 가이고 가나? 고만큼 캐다 뭐할라고?” ‘그런가?’ 동갑내기 꼬마의 소쿠리는 나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인다. 그 날은 마을 회관을 지나, 영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 밭으로 꼬마가 길을 잡았다. 요즘은 드물지만 예전엔 거름을 하기 위해 큰 밭머리엔 거름더미가 하나씩 있었다. 꼬마는 밭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말수가 적어졌다. 그리곤 정신없이 밭 이곳저곳을 분주히 쫓아 다녔다. 머리에 꽃 꽂은 처녀마냥......

 
 
 
 

 

 

 

 

 

 

 반면 난 밭고랑에 흙을 다 세세히 관찰이라도 하듯 쪼그리고 앉아 걸으며 냉이를 찾았다. 그러다 조금 많이 난 곳을 만나면 “야들아 여 만테이!” 내가 호미질을 시작하기도 전 어디서 나타났는지 꼬마와 수미, 숙희가 달려와 호미질이 비좁다. 그럼 조금 많다 싶었던 곳이 텅 비어 버리고, 다져져 있던 밭이 울퉁불퉁 거칠어졌다. “에이 씨~ 내가 맏았는데 지들이 다 캐가고......”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 또 헤매다, 문득 꼬마의 소쿠리를 보면 어느새 바구니가 가득하다. 내 소쿠리는 겨우 바닥을 다 채웠을 뿐, 그제야 “꼬마야 너만 캐지 말고, 어데가 많은데 난도 좀 갈키조.” “몰라 니가 차자바. 여는 없어.” 그러면서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호미질을 한다. ‘가시나 지 혼자 캘라고 치!’ 그제야 늦은 발동이 걸린 난 마음이 바빠진다. 그 순간 만난 거름더미 위의 냉이 집단! 무슨 보물이라도 만난 양, 잎이 넙적넙적 커다란 냉이가 한가득.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호미질을 했다.

 
 
 
 

 

 

 

 

 

 

 이번에는 이 좋은 냉이를 나 혼자 캘 심산으로 소리를 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야 거 꺼는 못 머여. 니 똥 나세이 먹고 싶나? 거 꺼는 더라여.” ‘그래?! 아닌가? 뭐 어때?’ 하면서도 더러운 걸 먹는다는 오명은 싫어 다른 곳을 찾아 나서지만 자꾸만 아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곁눈질을 했다. 그런 생각은 냉이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해 가지만 곧 “야들아 인제 가자! 난 다 캤어.” 늘 대장같은 꼬마가 소리친다. “야 난 요고 밖에 못 캤는데 쪼매만 더 하다 가자.” 내 소쿠리를 보며 “닌 뭐했노 이때까지? 야 이거는 못 먹는거라. 이거도, 이거도..... 닌 왜이키 풀을 캐 넣노?” 겨우 반소쿠리도 채우지 못한 바구니를 살피며 꼬마는 냉이가 아닌 것들을 골라 내 버렸다. 울먹울먹 울 수도 없고, 서운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가시나. 언제나 뭐든지 나보다 잘하는 꼬마가 미웠다.

그렇게 미웠지만 언제나 함께 노는 건 꼬마였고, 지금껏 단짝인 평생친구.

“꼬마야! 이번주엔 뭘 쓰까? 나세이 캐로 간 얘기 쓰까?” “그래. 설에 시댁에 갔는데 나세이가 벌써 올라왔데! 그거 써 바 그래. 니 근데 나세이가 어데 마이 나는가 아나?” “거름더미!” “야 가시나야. 거꺼는 못 먹고.”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사람인 꼬마는 나와 통화할 때는 어색할 정도의 사투리를 쓴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나세이는 꼬치밭에 마네여. 꼬치바테는 거름을 마이 하자나. 그래서 꼬치밭골(고랑)에 가만 젤 마네여.” “아! 그래서 그 때 글로 갔구나! 너 학교가는 길에 있는 그 큰 밭!” “그래. 닌 나세이 다음에 또 뭐가 마이 나는동 아나?” “나세이 담에는 쑥?” “아이라. 나세이는 금방 세서 꽃이 피고, 그 다메는 칼속세(씀바퀴. 잎이 유난히 뽀족하고 길게 생겨 붙혀진 방언)가 마이 나지. 봄에 딘장 풀어 끓어 오를 때 나세이 콩가루 무치 너은 국하고, 칼속세 조물조물 무치가이고 비비 머그만 얼마나 마싯는데, 끝내주지!”

 
 

 가까이 산다면 우린 아마 또 같이 냉이를 캐러 나갔을 거다. 나이가 들어서 “가시나야!” 부르며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고, 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오는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해 더욱 반갑다. 그리고 오늘에야 안 사실인데 꼬마는 당시 냉이를 캘 때 많은 곳을 발견하면 하나하나 캐지 않고 일단 호미로 땅을 훌 긁어 놓고, 흙을 훌훌 털며 주웠단다. 그런데 나는 하나하나 캐는 것도 모자라 영잎까지 떼어 다듬어가며 캤으니 그 모냥이지. 꼬마야 우리 언제고 다시 고향에 가서 나세이 같이 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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