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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짤숙이고순덕의 생활수기 시리즈 36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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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3  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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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숙이

고 순 덕

 지난 주말 집으로 세탁기가 배달되어져 왔다. 딸들이 나의 생일선물로 준비했단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어미로 남들만큼 해 주지도 못했건만, 아이들은 부족한 어미를 위해 늘 고심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려 한다. 옷, 가방, 신, 화장품, 영양제, 안마기, 여행, 심지어 간식에 나의 직장 일까지 쉬는 날이면 두 팔 걷어 도와준다. 이번 세탁기도 어느 날인가 빨래를 했는데 세탁기에서 탄 냄새가 반복해서 났고, 이를 본 큰 딸이 걱정을 시작하더니 둘째와 의논해 벌인 일인 듯하다.

   
 

 ‘우리 엄만? 우리 엄마의 세탁기는 누가 사 줬을까? 나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동생의 말이 큰오빠나 아버지가 아닐까 한다. 어쨌건 내가 사드린 게 아니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그렇게 모자란 딸이었건만, 난 이렇게 딸들이 고생하며 번 돈으로 호사를 누리는 철없는 엄마여도 되는 건지. 엄마의 세탁기는 엄마가 환갑을 훌쩍 넘겼을 때 처음 생긴 것 같다. 2조식의 세탁기로 세탁조와 탈수조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좁은 욕실 입구를 떡하니 자리한 세탁기는 엄마에게 결코 예쁘지만은 않은 애물단지였다. 물을 엄청 많이 먹고, 전기세도 걱정하게 했으며, 정작 본분인 빨래의 때는 잘 지지도 않고 느려터지기까지......

   
 

 그런 이유로 엄마는 세탁기를 잘 사용하지 않으셨다. 아니 어쩜 아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이들이 사 준 것들이 좋음에도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건너 마을 종손부가 샘물을 길어 손빨래하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집 세탁기 사용을 권했고, 질부는 몇 차례 빨래 다라이를 들고 집을 드나든 일이 있었나보다. 엄마는 그 때마다 쓰린 속을 감추어야 했었다. 본인도 아끼느라 쓰지 못하는 것을 어려운 줄 모르고...... ‘사람이 어려서 저러는 거지!’ 하면서.

 엄마의 세탁기는 물받기가 늦어 바가지로 물을 퍼 붇기도 했다. 한차례 드르륵드륵 회전식 빨래가 끝나면 물이 빠지고, 그대로 다시 물이 받아져 세탁을 했기에 헹굼도 깨끗하지 않아 다시 물이 받아지기 전, 세탁조에서 탈수조로 빨래를 옮겨 탈수를 해서 다시 세탁조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탈수조에 젖은 빨래를 넣고 속뚜껑을 눌러 탈수버튼을 누르면, 수평을 맞추느라 털털털탈탈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구 요동을 쳤고, 그래도 안되면 결국 탈수조가 멈춰서기 일수다. 결국 빨래를 다 꺼내 다시 차곡차곡 정리를 하고 나서야 제대로 탈수를 했다. 세탁조에 비해 작았던 탈수조는 소식을 하는 편이라 빨래가 조금만 많아도 파업을 했으며, 많은 빨래를 할 때는 두, 세 번에 나누어 탈수를 해야만 했다.

   
 

 지금에 비하면 그렇게 불편한 세탁기였지만, 그래도 그 때는 획기적인 기기였다. 엄마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획기적인 기기를 모셔만 두다가 첫여름 장마를 맞아 탈수기를 사용한 후로 세탁기보다 짤순이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해 겨울에도 짤순이를 통과한 빨래는 빠른 건조로 엄마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두 손자를 키우는 큰며느리에게도 짤순이를 권하셨다. “세탁기는 몰라도 짤수기 그건 쓸만하더라. 너도 아들 기저귀하고 빨래가 매일 많은데 짤수기 하나 사 주까?” 그래서 오빠네는 당시 탈수만 되는 짤순이가 있었다. 우리엄마에겐 세탁기보다 사랑받던 짤순이. 순덕이, 순이와도 어울리는 이름 짤순이. 그 짤순이를 엄마는 ‘짤숙이’라고 하면서 좋아하셨는데, 그 짤수기도 세탁기도 엄마는 얼마 가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풍으로 쓰러져 근 20년을 불편한 몸으로 집안에만 계셨고, 세탁기는 엄마가 화장실을 드나들 때 몸을 지탱하는 손잡이 역할을 했다.

 내 딸들이 못난 엄마를 위해 사 준 세탁기가 부족한 딸이었던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모든 것을 아끼던 엄마가 생각나게 한다. 밥솥이 시각과 취향에 맞춰 밥을 해 주고, 빨래도 세탁기에서 건조까지 해서 나오고, 서울에 있는 손주들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도 할 수 있는 세상. 이 좋은 시절을 엄마는 보기만 하셨을 뿐 즐기지 못하고 가셨다. “엄마! 엄마!! 나는 못난 딸이었고, 부족한 엄마이면서 우리 딸들에게 이렇게 대접받아도 되는 걸까?” 이 세탁기 엄마에게 싸다 드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 고순덕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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