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필~~통!!!

고 순 덕

 

 달그락달그락 책보자기 안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빈도시락에 숟가락 부딪는 도시락 소리뿐만이 아니다. 나의 등에 매달려 학교 다니던 책가방 안에는 매일의 시간표에 맞는 김치국물 머금은 교과서와 과목별 공책, 도시락, 그리고 필통. 오늘은 필통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기억에 남는 나의 필통은 연두색에 뚜껑 가운데 다보탑이 새겨져 있었고, 아버지가 장에서 사다 주었기에 당시에 다른 친구들 것보다는 좀 괜찮은 디자인 이었다. 필통 안에 연필을 고정하는 칸이 없어 연필과 지우개, 칼이 뒤죽박죽 달그락거리는 저렴한 가격의 그것과는 달리 내 것에는 연필을 하나하나 고정시켜 꽂아두는 칸이 나뉘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저학년인 내가 손을 다칠까봐 연필을 직접 낫으로 깍아 주었다. 그러면 연필을 키에 맞추어 한칸한칸 끼웠고, 키가 작은 연필 위에 지우개를 넣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더 좋은 자석필통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이 뚜껑에 자석이 있는 정도였지만 점점 진화하여 이층자석필통에 연필칸막이는 말할 것도 없이, 지우개방도 따로 준비되어 있고, 시간표나 이름표를 넣는 자리도 있었다. 아래층에는 자를 넣는 얇은 공간이 있거나 심지어 작은 연필깍기가 장착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자석필통은 어쩌다 교실바닥에 떨어져도 소리도 크지 않았고, 내용물이 쏟아지는 경우도 적었다. 방학이나 명절을 지내고 나면 아이들은 더 좋은 필통으로 바뀌곤 했다. 캔디나 마징가제트 등의 당시 유명 만화캐릭터가 그려지고 말랑말랑 쿠션이 부드러웠던 고급진 이층자석필통은 한동안 아이들의 로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중학생이 되면서 천도 아닌 것이 비닐도 아닌 것이 방수가 되고, 부피도 적은 자크가 달린 필통이 나오기 시작했다.

 
 
 
 

 

 

 

 

 

 

 

 

 

 필통안에는 얇은 스폰지가 들어 있었고, 중학생의 상징인 빨강, 파랑, 검정 볼펜이 자리를 잡았다. 몽당연필대신 샤프펜과 샤프심통을 써도 되었다. 선생님들께서 국민학생 때는 샤프 사용을 권장하지는 않았다. 기존의 연필심과 같이 두꺼운 심의 샤프는 허용했지만, 1mm나 0.7mm 샤프는 국민학생이 쓰기엔 민감하여 잘 부러지고, 글씨체도 흐트러진다고 쓰는 것을 반대하였다. 본디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하고 싶은 법, 당시 국민학생에게 제도샤프는 로망이었다. 몰래 샤프펜슬을 가지고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다보면 연신 심이 부러지거나, 기어들어갔다. 그러면 다시 연필심을 바꿔 끼거나 길이를 조절하느라 똑딱똑딱.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때는 요즘처럼 품질이 좋지 않다보니 그런 일들이 허다했다. 어디 샤프뿐이랴. 연필도 마찬가지. 심이 잘 부러지거나, 물러서 잘 닳아 버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너무 연하게 써지는 것도 있었고, 심심잖게 나무가 반으로 갈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연필깍기가 흔하지 않던 때 검은 손잡이의 도루코 연필깍기 칼. 이 칼로 연필을 깍다보면 나무재질이 이상해 제대로 깍이지 않거나 자기 마음데로 쭉쭉 밀려 나가 연필이 마음먹은 대로 예쁘게 깍이지 않아 속상한 일도 많았다. 연필은 보통 육각모양이나 한 때는 둥글거나 삼각형의 연필이 유행하기도 했다. 향이 나는 향나무 연필과 품자가 쓰여진 연필이 좋았고, 지우개가 달린 아이디어 제품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고무가 잘 갈라지거나, 지우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책을 검게 하거나 찢어 버렸다.

 
 

 가끔씩 지우개가 없고 급한 친구는 침으로 지워보겠다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글자를 문지르기도 했다. 그래도 흉이 아니던 시절 이었다. 도루코 칼은 휴대용 작은 연필깍기가 유행하면서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 남자 아이들에게는 여학생의 고무줄을 끈어먹는 도구였고, 하교길 버들피리를 만들어 부는 도구이기도 했다. 나는 가끔 칼로 연필을 깍고, 심을 굴리며 칼로 갈아 뾰족하게 하는 것을 의식처럼 치루고 싶은 충동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필보다는 샤프펜슬을, 샤프보다는 볼펜들을, 이제는 그 볼펜마저도 잘 드는 일 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컴맹이던 내가 성장해 간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모를 서글픔이 있다. “꿈으로 가득 차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너무 어렵잖아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그 시절 유행하고 좋아했던 노래다.

 다섯째나 되는 딸아이 손 다칠세라 연필 깍아 주시던 아버지와, 교실 가득하던 연필심 냄새, 친구들의 아우성, 햇살에 보이던 자욱한 교실 먼지까지도 그립다. 새로운 4월엔 연필로 꼭꼭 눌러 쓴 손편지를 한 통 받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써야겠지.

 
 
저작권자 © 영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