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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사랑의 콩깍지 벗어지던 날고순덕의 생활수기 시리즈 44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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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8  08: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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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콩깍지 벗어지던 날

고 순 덕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 구름 한 번 쳐다보고.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봄 하면 떠오르는 두 편의 동시 속에 나오는 작고 앙증맞은 닭과 병아리는 나로 하여금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21일 동안 끼니 걸러 가며 꼼짝도 않고 알을 품어 부화시킨 병아리들을 몰고 다니는 어미닭. 한동안은 잠을 잘 때도 다시 품안에 병아리들을 다 끌어안는다. 동시에 쓰여 진 그대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모가지를 길게 하늘로 치켜드는 병아리는 또 얼마나 귀여운지..... 하지만 그렇게 사랑스런 닭이 있는가 하면 나를 사기꾼으로 만든 닭도 있다. 옛날엔 어른들의 놀이로 닭싸움이란 것이 있었나보다. 내가 직접 닭싸움을 본 기억은 없지만 유난히 크고 화려하며 사납게 생긴 장닭을 본 기억은 있다.

   
 

 그 놈이 그놈인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때 뒷집 쌈닭인 장닭에게 나의 입술을 빼앗겼다. 언니들의 말에 의하면 내가 뒤안 비탈에서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는데, 어린 나를 꼬롬하게 본 장닭이 나의 입술을 물어뜯었다는 거다. 닭부리 모양에 맞춰 삼각형으로 입술이 떼어나가 난 피투성이가 되어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댔고, 몇날 며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난 째보가 되었다. 내의 커 갈수록 상처도 함께 커져갔고, 아버진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하셨다. “저걸 그 때 바로 꼬매줬으만 저키 흉터가 커지진 안했을 낀데...... 시집가기 전에 우째 해 조야 되낀데......”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자라면서 그 누구도 나를 째보라 놀리는 이도 없었고, 나 또한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그랬기에 결혼하고픈 사람이 생겼을 때도 나의 얘기들을 하면서 분명 손과 입술에 난 상처얘기를 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게 사기결혼을 당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말처럼 설사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쉽게 눈에 띄는 것을 눈에 콩깍지가 씌여 보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지, 나의 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술 한 잔에 장난기가 발동하면 남편은 늘 사기결혼 얘기를 안주 삼았고, 나도 그에 맞춰 함께 얼굴 붉혀가며 변명을 늘어놓으며 장단을 맞췄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닭을 제법 여러 마리 키웠는데 낮에는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니다가 저녁이면 마당가에 지어둔 닭장에 알아서 찾아 들었다. 횃대라고 하는 장대를 닭장의 중간에 길게 두 줄로 걸쳐 두면 장닭과 큰 닭들은 거기이 올라 잠을 잤다. 왜 그렇게 불편한 잠을 청하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깊은 밤 갑자지 닭들이 요란하게 퍼득이며 울어댔다. 아버지는 런닝바람에 맨발로 쫓아 나갔고 엄마는 마당에 전등불을 켰다.

 시커먼 쪽제비가 기습을 한 모양이다. 닭장안엔 피를 흘리며 퍼득이는 닭이 털을 날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무섭고 죽어가는 닭이 가엾었다. 쪽제비의 기습을 피하기 위해 닭이 그렇게 불편한 잠을 잔 것이었다. 다음 날 우리 집 밥상엔 기름진 닭계장이 올랐다. 평소에 좋아하는 닭계장 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먹기가 껄끄러웠다. 또 닭장이 요란한 날은 큰형부가 집에 오는 날이다. 씨암탉을 잡는..... 그로인해 어린 맘에 공연히 형부를 미워한 때도 있었다. 긴긴 겨울밤 밤참까지 먹고 무서운 옛날 얘기를 듣고 잠을 청하면 왜 그리도 대소변이 마려운건지. 마당을 가로질러 텃밭 모퉁이 감나무 밑에 있는 변소까지 가는 것이 무서워 닭장앞 마당에서 볼일을 볼라치면 잠이 깬 닭들이 나를 노려보며 ‘구구구구 코로로로’ 놀려대고, 난 엄마가 알려 준 나의 주문을 외기 시작한다. “닥아 닥아 닥이 밤똥누지 사람이 밤똥누나?” 그러면 신기하게 무서움이 덜 하는 것 같았다.

   
 

 오월 가정의 달, 그리고 어버이날. 나도 아직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립기에 카네이션 한 송이 들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았다. 따뜻했다. 언제나 따뜻한 엄마의 품처럼. 그러나 이젠 내가 병아리 가득 품은 어미닭인 것을, 가슴을 더 넓혀 더 포근히 보듬어야 하지만 가끔씩은 여전히 병아리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 고순덕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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