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음력 3월 25일, 정조 임금은 규장각의 관원이었던 각신(閣臣) 이만수(李晩秀)를 도산서원에 파견해 몸소 지은 제문(祭文)으로 제사를 올리게 한 다음, 제사에 참여하는 유생들을 대상으로 별과(別科) 이른바 특별과거시험을 행하도록 했다. 애초 서원 강당인 전교당의 앞뜰에서 시험을 치를 계획이었지만, 만여 명에 이르는 유생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서원 앞에 자리한 소나무 숲으로 시험장소를 변경했다.

 이날 시험을 치렀던 유생은 7,228명이었으며 최종 제출된 답안지는 3,632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도산서원에 모인 사람은 만 명을 넘었다. 경상 좌도와 우도를 가리지 않고, 또 나이가 많아 과거를 포기한 사람들까지도 도산서원으로 몰려든 것이다. 이만수는 시험이 끝난 후 제출된 답안지를 밀봉해 규장각으로 보냈으며, 이를 전해 받은 정조 임금은 답안지를 몸소 채점해 1등과 2등에게 초시(初試)와 회시(會試)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특별자격을 부여했다.

도산별과, 역사와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고 재현되다.

 오는 5월 10일(목) 오전 9시30분부터 제25회 도산별과(陶山別科) 재현 행사를 안동시 도산면 소재 도산서원 앞마당에서 개최한다. 226년 전 정조 임금의 특명에 의해 실시됐던 음력 3월 25일로, 도산별과가 행해졌던 그 날이다. 당시 만여 명의 유생들이 모여들었던 소나무 숲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되었지만,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시사단(試士壇)을 배경으로 행사가 열린다.

   
   
▲ 제25회 도산별과(陶山別科) 재현 기념행사

 이날 행사는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상덕사에서 정조 임금이 선생을 흠모하며 올린 제사를 본 딴 고유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임금이 직접 출제한 시험문제를 밀봉한 어제통(御題筒)을 시험관에게 전달하는 의식인 파발 행렬이 취타대를 앞세워 재현되고, 어제통(御題筒)을 건네받은 후 시험문제를 기둥에 내걸면, 도산별과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진행된다.

 이번 과거시험 재현행사에는 지난 4일까지 신청을 받아 전국의 한시인 200여 명과 시조인 50여 명이 참가신청을 했다. 도포와 유건차림의 참가자들이 도산서원 앞마당에 마련된 자리에 줄을 지어 앉아 약 2시간에 걸쳐 시험을 치른다. 수거된 답안지는 전교당으로 전달되며 시관(試官)들이 채점을 하고, 성적이 적힌 과방(科榜)을 붙인 다음 시상을 할 예정이다.

 행사 관계자는 “역사적 사실을 그려내는 것인 만큼 오류가 없도록 최대한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재현했으며, 이와 더불어 관람객들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시대에 걸맞은 스토리텔링을 적절히 가미했다”라고 밝혔다.

 안동시는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지방에서 본 대과(大科)시험인 도산별과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서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문적 성찰과 교육적 전통을 드러내고, 나아가 한시(漢詩)와 시조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스토리가 있는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도산별과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서원이 지닌 인간존엄의 정신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잘 보여줌으로써 한국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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