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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우리집 모내기 날은 언제나 일요일고순덕의 생활수기 시리즈 45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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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5  09: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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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모내기 날은 언제나 일요일

고 순 덕

 

 주말에 내린 비와 쓰레질로 들판의 빈 논바닥엔 흐려진 흙탕물이 그득하다. 이맘때면 아카시 하얀 꽃잎이 실바람에 춤을 추고, 잘 자란 어린모들은 무논에 발을 담군다. 이젠 허리 굽혀 손모를 심지는 않지만, 못 줄 넘기는 아버지의 외침과 어머니의 들밥 함지박속 넉넉함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보기 드문 아련한 추억이 된 때문일 게다. 착착착 이앙기 어린모의 엉덩이를 치켜들었다가 내리 꽂아 군기를 잡으면, 어린모들은 갓 훈련소를 퇴소한 이병들처럼 꼿꼿이 제 자리에 차렷! 아무리 넓은 들도 트렉터 한 대와 이앙기 한 대면 대대병력의 모들도 연대병력의 모들도 모두 해지기전 꼼짝마라 줄을 세운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모내기 시기가 많이 앞당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 보기엔 온난화도 온난화지만, 모 자체도 예전보다 많이 어린 상태에서 모내기가 되고 있다. 예전에 모는 초록이 시커멓게 보일정도록 건강하고 무릎까지 크게 자라야 모를 찌고 모내기를 했다. 모의 뿌리가 못자리 깊이 내려 모를 찌는데 미리 발로 자근자근 밟아 잔뿌리를 끈어 주고 손으로 한웅큼씩 모를 쪘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길이만한 모를 손도 아닌 금속집게 같은 것으로 일정한 속도와 깊이로 착착착착 소리가 나고 기계손이 한번씩 입수를 할 때마다 어린모들은 이앙기의 똥이나 발자국처럼 뒤이어 줄을 선다.

   
 

 반듯한 논둑을 따라 이앙기가 지나니 못줄을 세울 필요도 넘길 일도 없다. 우리집의 모내기는 5월 말이었는지 6월 초였는지는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요일은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언제나 일요일. 모심기도 벼베기도 타작도 언제나 일요일에 날을 잡았다. 그러면 작은 언니는 꼭두새벽부터 들에 나간 엄마를 대신해 커다란 가마솥 가득히 밥을 했다. 새참 때가 되기 전 여기저기 진흙을 묻힌 엄마가 돌아오면 어제부터 준비해 둔 닭계장은 찜통에 고추부각과, 상추겉절이, 돼지고기볶음에 머굿대(머위줄기볶음), 두부조림, 김자반 등 평소 먹지 못하던 반찬들이 찬합 가득가득 담긴다. 엄마는 커다란 양은다라이에 밥과 국을 작은언니는 빨간 방티에 갖가지 반찬들을 이고 집을 나선다.

 난 그에 앞서 동생과 물주전자와 막걸리 주전자를 각각 하나씩 들고 먼저 구판장을 향해 달린다. “엄마가 막걸리 서대 이상으로 달아놓고 가이고 오래요.” “오냐. 오늘 너 집에 모심는다카디 엄마가 머 마싯는게 했노?” “몰라요. 있다가 집앞논에 심을 때 새 드시로 오시래요.” “오냐오냐.” 구판장 아지매는 구판장 주방 앞에 놓여진 항아리에 자루바가지를 넣어 휘이휘 저어 뽀얀 막걸리를 주전자에 넘치게 담아 주신다. 우리 논은 봇들과 사옥, 못밑 그리고 집앞에도 있는데 먼 곳부터 심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집앞논에서 마무리를 했다. 그러니 지금은 먼 봇들까지 이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가야하는데 찰랑찰랑 다리에 주전자가 부딪칠때마다 주둥이와 뚜껑으로 막걸리가 넘쳐흘렀다. 징징거리며 식식거리며 닭계장을 먹을 심산에 터덜터덜 신장로를 걸어 굼마(아랫마을)를 지나고 봇들에 이르면, 주전자는 제법 가벼워져 있고 막걸리 흘러넘친 자국에 노란주전자가 뿌연주전자로 변해져 있다. 우리 논 가득 낮선 아주머니들이 머릿수건을 쓰고, 둥둥 말아 올린 몸배바지 위로 스타킹을 신은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다 흡혈귀인 거머리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목이 긴 노란장화가 나오기 전이라 스타킹으로 거머리의 공격을 대비하곤 했다. 엄마가 논 가장자리에 이고 온 밥고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는 동안에도 모심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된다. 그러면 저쪽 끝에서 아버지가 물주전자를 가져오라 소리를 치고, 난 좁다랗게 다듬어진 논둑을 맨발로 달려 물을 배달한다. 좁고 말랑말랑 굳지 않은 논둑을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맨발로 걸으면 넘어질까 되똥되똥 한쪽 팔이 절로 벌어지고, 내 발길에 앞서 낮잠 자던 개구리들은 깜짝 놀라 폴짝폴짝 논으로 뛰어 든다. 어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동생과 나는 못자리에 있던 모들을 한단씩 양손에 들고 논 이곳저곳으로 옮겨 놓는 지령을 받았다. 논둑에 나와 있는 못단은 들고 던질만 하지만 물먹은 못단은 무겁기도 하고 온 다리에 흙탕물이 흘렀다.

   
 

 논에 들어간 작은오빠는 비료포대 위에 여러 단을 한꺼번에 얹어 끌고 다니며 못단 배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거머리가 무서워 논가에 앉아 못줄을 넘기거나 못단 나르기만 했다. 그러다 일이 싫증나면 머릿속에 숙제 생각이 나고, 바쁜 엄마에게 숙제하러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다 야단맞고 삐져 돌아오는 길에 아카시아 따먹던 때가 바로 요맘때. 그 때나 지금이나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뻐꾸기는 구슬피 울어댄다.

 지금은 모내기도 기계로 하니 혼자, 모판도 트럭에 아파트처럼 실어 나르니 혼자, 들밥도 배달, 논둑엔 정갈한 아이스박스에 얼음물이 터억. 많이 부족하고 힘들었지만 온가족과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하던, 정이 넘쳐나던 그 옛날의 모내기가 생각난다.

   

▲ 고순덕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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