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고집

고 순 덕

 “언니 고집도 참 만만찮아여!” 손아래 시누의 나에 대한 못마땅한 평이다. ‘내가 뭐가 고집이 세다고.’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사실 간간이 주위사람들에게 고집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한다. 난 그 때마다 그 말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친구들과 우연히 관상을 보는 분을 만났는데 그 분 역시 “고집만 없으면 차암 좋은데.....” 한다. 그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저 고집 없어요. 진짠데.....” 옆에 있던 친구들이 다 한마디씩 한다. “아이라 너 고집 씨여.” “자 고집도 알아조야 되여 마자.” 고집이란 말이 좋지만은 않게 들리는 난 “그럼 내가 고집 씨단 증거를 대봐! 대봐대봐!” “지금 니가 이카는기 고집이 씨다는 증거라!” 할 말을 잃었다. 그냥 난 고집이 쎈 걸로....

 중2 때였다. 정말 예쁘고 날씬한 초임인 듯 한 가정,가사를 담당한 여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기선제압을 하기 위함인지 본디 그렇게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셨는지 수업시간에 조금만 잡담을 해도 지시봉으로 탁자를 치며, 신경질 가득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보다 크게 더 떠든 것 같지 않은 날이었지만 선생님의 생각엔 통제가 되지 않는다 싶었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수업을 멈추고 투표를 시작하셨다.

 
 

 “지금부터 평소에 제일 떠든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한명씩 이름을 적어 낸다. 시작!” 잠시 후 뒤에서부터 쪽지를 거두었고, 3반 회장이 개표를 해 선생님께 결과를 전달했다. 이름이 다섯 번 이상 적힌 사람만 불러 벌을 세운다고 한 선생님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 했다. “황희숙, 조미경, 김정자, 이미숙, 채현순, 고순덕!!!” ‘한표는 내가 내 이름을 썼으니 그렇다치고, 누가 내 이름을 썼지? 난 떠들지도 않았는데......’ 차마 친구의 이름을 써 밀고자가 될 수 없었던 난 스스로 내 이름을 써 내었었다. 그런데 나머지 네명은 누가? 분하고, 억울했다. 나를 비롯해 이름이 불려진 예닐곱의 친구들은 선생님의 지시로 교실 창문 난간위로 올라 꾸러 앉았다. 다리가 저려 왔지만 머리속은 온통 누가 내 이름을 썼을까 뿐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다리가 너무 저려 우는 친구도 있었고, 잘못했다 비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는 떠들지 않고 수업 잘 받을 사람은 자리로 돌아가 앉아도 좋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아직도 내 이름을 쓴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그대로 꾸러 앉아 있었다. 이젠 다리에 감각마저 없어졌고, 머릿속도 하예졌다. 수업시간 초반에 시작한 벌은 마침종이 칠 때까지 이어졌고, 난 그렇게 혼자 창문 난간에 꾸러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마침종이 울리자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리셨고, 내 마음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지만, 밖에서 남학생들이 체육을 마치고 몰려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남학생들에겐 이 몰골이 창피하단 생각에 난간에서 떨어지듯 내려와 발에 감각이 없는 탓에 주저앉고 말았다. 우루루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몰려 들었다.

 우리 학교는 한 학년이 세 반으로 남녀 공학 이었다. 1반은 남학생, 2반은 남녀합반, 3반은 여학생반 이었다. 그래서 여학생의 가정,가사, 남학생의 농업,기술, 그리고 체육시간이면 2반 학생들은 의자와 교과서를 들고 각각 1반과 3반으로 갈라져 수업을 했다. 그리고 체육시간도. 변명일지 모르지만 의자를 들고 3반에 간 우리는 친한 친구의 자리 옆자리에 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수업을 받았으니, 잡담이 자연스레 나오고 통제가 안되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난 제일 먼저 반장을 찾았다. 대체 내가 몇 표가 나왔냐고 따져 물었더니 한표였다고 한다.

 기가 막혀서. 선생님께 찾아가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음 수업 시작종이 울렸고 그렇게 난 선생님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보통 수업시간에 질문을 할 때는 그 날짜와 부합되는 출석번호를 부르고, 그 다음은 앞이나 뒷사람을 줄줄이 세워 질문을 하는데 그 사건 후 선생님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 번호는 일부러 피했고, 내 앞이나 뒤, 옆자리의 아이들이 불리면 항상 내가 앉은 반대쪽으로 질문을 진행해 나갔다. 그렇게 난 나의 똥고집 덕에 가정.가사 시간을 펀하게 지내다 졸업을 했고, 나의 후배들의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너들 선배 중에 참 정직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를 두고 하신 말씀 이었단다. 그 때의 난 정직보다는 고집이 쎈 중2였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고집이 세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이제는 그 얘기를 꼭 나쁘다고만 생각지는 않으려 한다. 나만의 생각과 고집이 아니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니,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고집이 아니라면 계속계속 난 똥고집장이로 살려 한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소신과 같은 나만의 고집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우실 박○○선생님. 지금은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렸던 추억일 뿐. 늘 건강하십시오.

 (아참 위에 나열한 친구들의 이름은 당시 벌을 함께 받았던 친구가 아니라, 현재 나와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신 열거하였으니 오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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