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뒤엎은 하늘집게

고 순 덕

 며칠 전 일하는 곳 처마 밑으로 묘하게 생긴 생물체 하나가 잠입했다. 가까이 가자니 인기척을 느꼈는지 몸을 세우고 앞발을 들어 위엄을 보인다. 갑옷색깔도 묘하고, 눈인 듯한 곳에는 묘한 위장화장까지 했다. 녀석은 퇴근시각까지 멀리 가지 못하고 부근을 배회하고 있더니, 휴일을 지나고 와도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날과는 달리 가까이 가도, 만져도 귀찮다는 듯 몸을 돌릴 뿐 나를 위협하려 들진 않았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무얼 어떻게 해 줘야할지? 지인들에게 묻고 인터넷을 찾아 사슴풍뎅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설탕물을 먹이로 주었더니 더듬이와 먹이빨판 같은 것이 오르락내리락. 한참 뒤 살피러 갔더니 다시 앞발을 들어 위엄을 보인다. 다행이다.

 
 

 여름 밤 마루나 앞마당에서 밥을 먹다보면 처마 끝 백열등 불빛을 찾아 가끔 풍뎅이와 사슴벌레가 날아들었다. 그 날도 그랬다. 밀창을 열어젖히고 마루에 앉아 온가족이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하필이면 작은오빠 옆자리에 하늘집게(사슴벌레) 암컷이 툭 떨어졌다. 그러잖아도 하늘집게를 갖고 싶었던 오빠는 밥숟가락을 팽개치고 밥상아래 반가운 손님과 인사를 했다. “어허 밥먹따 머하는 짓이라!” 아부지의 호통은 짧고 묵직했다. 하지만 들뜬 맘과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 오빠는 한손으로는 건성건성 밥숟가락을, 다른 한손으로는 맨다리 위에 하늘집게를 올려두고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낮선 환경에 놀랐는지 아니면 작은오빠의 손길이 성가시고 귀찮았는지 하늘집게 암컷은 오빠의 손가락을 피가 나도록 꽉 물었다. 화들짝 놀란 오빠는 튕기듯 물린 손을 흔들며 벌떡 일어나다가 밥상을 둘러업고 말았다. 늘 당신이 밥상을 둘러엎기만 했지 정작 밥상을 뒤집어 쓴 것은 처음인 아부지의 호통이 어떠했을까? 상상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정작 오빠는 아부지의 호통은 귀에도 들지 않고, 하늘집게를 떼어내려고 폴짝폴짝 뛰면서 손을 흔들어 댔다.

 수컷이라면 집게를 벌려 떼어내면 되지만 암컷은 집게가 작아 잡아 벌릴 수도 없고, 그냥 당기자니 오빠의 비명은 커져만 갔다. 그 날 저녁밥은 그렇게 반 토막이 나고 아부지한테 디지기 혼이 났지만 오빠는 웃고 있었다. 본인의 피를 나눈 하늘집게를 애지중지 필통에다 넣고 학교에도 데리고 다녔다.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은 비단 작은오빠뿐만이 아니었다. 또래의 머시마들도 크고 작은 암⦁수 하늘소나 하늘집게들을 학교에 가지고 와 아침자습보다 먼저 이들의 싸움부터 붙였다. 제 것이 이기면 마치 자신이 싸움에서 이긴 양 뻐기며 좋아했다. 그마저도 없는 머시마들은 여러 마리를 가지고 있는 친구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아첨을 하거나, 칡뿌리 같은 먹꺼리, 학용품을 주고 바꾸기도 했다.

 방과 후 소를 띠끼로(소풀을 뜯어 먹이러 밖으로 나가는 일로 주로 남자아이들의 몫) 산으로 들로 나가면 소는 풀어두고 꿀밤나무 아래에 몰려 하늘집게나 하늘소를 찾기 바빴다. 커다란 꿀밤나무에 상처가 나 진물(액)이 흐른 것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작은오빠는 운이 좋아 제 발로 날아든 하늘집게를 갖게 되었지만, 더 크고 힘이 센 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 소는 남의 밭 콩을 먹거나 말거나, 소가 혼자 산을 넘어 집으로 가거나 말거나, 또래 머시마들의 하늘집게 사냥은 해가는 줄 몰랐다.

 
 
 
 

 

 

 

 

 

 

 새까만 갑옷에 커다란 집게를 가진, 내게 하늘집게라 불린 사슴벌레는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 아들도 한동안 좋아하던 곤충이다. 이웃도 또래의 친구도 가까이 없어 누나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가고 나면 혼자 놀아야 했던 막내아들은 곤충관찰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남편이 체험관 가로등 아래에서 주어다 준 사슴벌레를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리고는 종일 사슴벌레 잡아 달라며 운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밤마다 산책도 할겸 마을 가로등 밑을 샅샅이 살피며 다녔다. 그러나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마을 술자리에서 아들과 사슴벌레 얘기를 했고, 마을 끝 산 밑에 사는 분이 사슴벌레를 세 마리나 잡아다 주셨다. 우리 아이는 넷, 서로 자기것이라 싸우고 막내는 젤 큰 녀석을 이름까지 붙여가며 보살폈다. 그렇게 그 해 겨울을 함께 지냈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사슴벌레를 잡아다 주신 그 분을 “사슴벌레 아저씨!”라고 칭한다.

 요즘 아이들 농산물수확체험하러 와서 파리나 개미, 나방만 얼쩡거려도 비명을 지르고 뒷걸음질을 한다. 사슴벌레는 곤충체험장에서나 볼 수 있고, 돈을 주고 사며, 젤리를 먹여 곤충상자 안에서 온습도 맞춰 키워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틀린 것도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소독되지 않은 개천에서 멱감고, 이름도 모호한 풀과 열매들을 뽑고 따먹으며 자랐어도 큰 병치레 한번 없이 잘 자랐던 우리들의 유년기가 마치 먼 무인도의 보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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