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기적

고 순 덕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로 시작해서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로 끝나던 웅변. 가끔씩은 목청을 죽여 감정을 살리고, 성대모사를 하며 울먹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학창시절 호국보훈의 달 6월이면 언제나 반공 글짓기 대회나 포스터 그리기, 그리고 반공 웅변대회가 열렸다. 여름의 초입에 있는 6월의 해는 뜨겁기만 했다. 초. 중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들고 나온 의자를 줄지어 놓고, 빛 가리개 하나 없이 그대로 뙤약볕에 노출된 채로 앉아 있었다. 옆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땅바닥에 낙서를 하며 긴 웅변대회의 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초등학교 때는 보통 4학년부터 한반에 한, 둘씩 참가를 하고, 열대여섯 명이 5분 내외의 발표를 하니 족히 한시간 반은 그렇게 뙤약볕 아래서 벌 아닌 벌을 서야 했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 고등학교 때는 실내체육관이 있어 얼마나 좋았는지...... 그래도 수업을 하는 것보다는 좋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이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난 언제나 그 뙤약볕의 저주에 앞서 웅변대회 나갈 원고를 쓰고 외우는 일로 더욱 긴장을 해야만 했다.

 어쩌다보니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때의 웅변처럼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형태로 6.25의 아픔과 당시의 절박함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이 땅에 평화통일의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가다린다.’와 ‘전 세계 어디에도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화령전승기념관 전면
화령전승기념관 전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은 애초 전쟁을 길게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적 15사단은 7월 중순 이미 충북 괴산을 지나 상주에까지 입성하게 되었다. 이 때 국군 17연대는 2사단으로 예편되어 함창을 거쳐 안동을 지키기 위해 보은으로부터 상주로 이동중 이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 화령공립초등학교에 거점으로 하고 이동하는 17연대의 진로를 막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이 분이 바로 화령전투의 시발점인 엄봉림(암해) 어르신이다. “차 쫌 시아바요. 일로 가만 다 죽는다카깨는.....”

기억의 정원
기억의 정원

 노인의 제보를 화서파출소에 가 확인 후, 상곡리 시거리에서 국군 정찰병이 매복을 하게 된다. 이후 열 한두시쯤 자전거를 타고 오는 북한군 전령을 생포해 몸을 수색. 작전명령서를 찾아 적 15연대가 충북 괴산으로부터 화북을 지나 977도로를 통해 상주, 김천, 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진출할거라는 작전내용을 접하게 된다. 당시 국군은 무기는 물론 작전지도를 초등학교 괘도로 사용할 정도로 열악한 상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군은 본인들의 지도에는 977번 도로가 없었기에 처음엔 주민 엄봉림의 제보를 의심하기도 했다는데 적의 전령을 생포하게 되자 17연대는 마을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화령공립학교 송계분교정(현 화령전승기념관) 앞산인 봉황산 자락에 매복을 했다. 매복한지 두어 시간 후 예상대로 적15사단의 48연대의 선두가 나타났고, 더위와 허기에 지친 적군은 기념관 앞개울(이안천)에 뛰어들어 멱을 감기도 하고, 분교정 나무밑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승리의 상징 조형물
승리의 상징 조형물

 하지만 적군이 흩어져 있는 상황에 수적으로나 보나 화기로 보나 열세인 국군이 그대로 사격을 개시하면 반드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17연대장은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리자 적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사총 후 운동장에 모여 앉았을 때 운명적인 “일제사격!” 명령을 내렸다. 본 전투는 채 한시간이 넘지 않았다고 하며, 다음날 아침까지 잔당소탕을 하여 아군의 피해는 전혀 없이 적 15사단 48연대를 크게 섬멸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1차 화령전투인 상곡리전투이다. 이 때 노획한 무기를 바탕으로 18일 아침 다시 후속부대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 17연대장은 다시 동관리 일대에 매복을 결정. 뒷얘기까지 다 하면 기념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줄어들까 염려되어 여기까지만......

호국 상주관
호국 상주관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에 자리한 ‘화령전승기념관’에서 나는 매일 화령전투의 의의와 본 기념관에서 전쟁의 참담함을 보고 느껴, 다시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6.25가 발발한지 어언 68년, 우리나라는 지금도 종전이 아닌 휴전국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회담이 좋은 결실을 맺기 바라는 맘 간절하다.

 

호국 상주관
호국 상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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