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를 먹으며

- 차승진 -

 

운암역 부근에서 아내와

잔치국수를

먹는다

 

수북이 담긴 국수를 앞에 놓고

아내와 나는 가느다란 국수 가락에

취한다

 

국수 한 그릇 값이 너무 착해서

아내의 얼굴이 순해 보인 것인지

살아온 나의 이력이 허접한 탓인지

채워지지 않는 허기 때문인지,

 

국물 넘어가는 소리가 도망치듯

급하다

 

테이블 바구니에 담긴 오백원짜리

삶은 계란 하나도 선뜻 베풀지

못하는

쓸쓸함에 청양고추를 베어 물며

무엇을 다짐해보는 시간,

 

나는 후루룩 후루룩 눈물 같은

육수를

목안으로 넘기며 국수그릇에

잠길 듯

파묻힌 아내의 얼굴을 도둑질 하듯

바라본다

 

단돈 이천팔백원 무한리필 국수를

바닥까지 드러내며 흡족해 하는

아내의 미소는,

 

휴가철 연분홍 빛으로 피어나는

나의, 배롱나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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