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더기의 일기

2018년 8월 19일 일요일 날씨 맑음

고 순 덕

 

 나는 어제 꼬마와 충주에서 만나 놀았다. 밤에 불이 환하게 켜진 무슨 월든가 하는데도 갔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수건으로 제기를 만들어 차고 놀았다.

 아카시 이파리떨기 내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했다. 그리고 꼬마는 서울에서 미용실 원장님인데 내 머리를 뽀그리머리로 바꾸어 놓았다. 참 재미있었다. 매일매일 꼬마하고 놀고 싶지만 이젠 어른이라 그럴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꼬마는 서울로, 나는 상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에 또 놀자고 약속했다. 참 재미있었다. 끝.

 
 

 지난 주 문득 친구 꼬마와 통화하다 주말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친구의 버킷리스트 1번이 ‘스스로 운전을 해 순덕이네 놀러가기’란다. 그런데 자신이 없다며 친구가 사는 서울과 내가 사는 상주의 중간 지점인 충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갑작스레 약속을 하고는 설레었다.

 
 

  어릴 적 매일같이 붙어 놀면서 매일같이 다투던 친구. 그 친구와 단둘이하는 첫 여행이다. 늘 집과 직장, 사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내게 그저 나만을 위한 시간, 친구와의 여행은 참으로 놀라운 계획이었다. 토요일 오후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에 도착하는데 채 두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꼬마와 해지는 줄도 모르고 놀던 때에는 새재를 넘을라치면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면서 속이 부글부글 울렁울렁 차를 타기 전 먹었던 내용물을 다 토하고도 속이 가라앉지 않아, 노랗고 푸른빛 도는 쓰디쓴 뱃속물까지 토해내고서도 하예 진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지 않았다. 차멀미! 녀석은 그렇게 가고 싶은 서울행을 망설이게 하는 복병이었다. 6시가 넘어 만난 우린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과자와 알코올발효 된 음료를 샀다. 10원 20원짜리 뽀빠이 라면땅을 좋아하던 우리는 발효음료와 함께 먹을 것으로 미꾸라지튀김과 쫀디기를 택했다. 

 
 

 오랜만에 먹는 쫀디기는 쫀득쫀득 추억의 달달함이 목구멍을 지나 가슴까지 가득하게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떠들고자 한 우리는 어릴 적 그대로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떠들다 알콜 기운에 눌려 잠이 들었다. 잠결에 본 친구의 자는 모습이 자그맣게 보였다. 언제나 선머슴아이처럼 씩씩하고 당찼던 친구가 몇 달 전 다리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가슴속 한쪽에 근심이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린 일찍 잠에서 깨어 또다시 낄낄거리며 수건을 둘둘 말아 제기차기를 시작했다. 동글납작한 돌이나 그 당시 집집마다 한두개쯤 있었던 엽전을 귀한 줄 모르고, 돌돌 말아 자른 비닐봉지에 감싸 제기를 만들어 놀았다. 한발차기, 양발차기, 발들고 차기, 여럿이 둘러서 동네제기차기. 처음엔 수건이 발에 감기고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 하나, 둘에 떨어졌지만 이내 옛 실력을 되찾는 친구의 발놀림이 아직은 살아있네 하는 웃음이 터진다.

 
 

 숙소에서 나와 산책삼아 가까이 있는 숲길을 걸었다. 옛날 산길을 걸어 각자의 학교 가던 이야기를 나누고, 아카시잎줄기를 따 가위바위보, 줄기에 달린 이파리를 손가락으로 튕겨 먼저 따내기 시합을 했다.

 
 

 잘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이파리는 줄기를 쳐 떨구고, 내기에 이긴 친구는 신이나 뛰고 난 “한판 더!”를 외친다. 그리고 이파리가 다 훑어진 잎자루로는 내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파마를 해 주었다. 사람 많고 경쟁력 심한 서울에서 꼬마는 벌써 삼십년 가까이 ‘작품하나’라는 간판을 걸고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다. 예전에 그저 서로의 앞머리에 하나 둘 돌돌 말아 파마라며 놀았는데, 지금은 어엿한 헤어디자이너가 된 친구가 나의 머리에 아카시 초록잎자루로 둘 사이에 펼쳐진 지난 시간들을 돌돌 말아 올렸다. 난 꽃 꽂은 여인네마냥 한동안 그 이상한 헤어스타일로 숲과 호수를 거닐었다. 친구와 함께여서 일까? 하나도 부끄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고 헤어디자이너의 작품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저 웃음보를 터지게 했다.

 
 
 
 

 

 

 

 

 

 

 

 

 

 

 

 

 

 다시는 똑같은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친구와 나만의 ‘빠마 작품하나!’ 길가의 파쇄석을 주워 하는 공기놀이도 엉덩이를 버릴까 쪼그리고 앉아 하는 것보다 동심그대로 엉덩이를 땅에 주저앉아서 해야 제 실력이 나왔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내겐 약간의 두통이, 친구에겐 옆 휴양객의 수육 삶는 냄새가 허기로 찾아들었다. “구수하니 맛있겠다. 야~ 먹고 싶다.” 어젯밤 잠결에 본 친구의 웅크린 작은 몸이 생각났다. 난 처음 보는 휴양객 무리를 향해 우리가 가진 두 개의 음료와 커다란 과자를 봉지 들고 갔다. 그리고 몸에 좋은 탕 한그릇과 바꾸어 먹길 청했고, 친구는 평생 먹어본 탕 중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난 친구를 “꼬마는 거지래요. 거지래요 꼬마는....” 하면서 놀려댔다. 거지가 많았던 그 시절 꼬마는 손에 갈퀴를 달거나 다리를 절룩이며 오는 거지가 무서워 피했다고 했고, 난 가엾은 생각에 쌀을 한주발씩 퍼주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꼬마와 함께 있는 동안 친구는 수차례 통화를 했고, 통화 내도록 깔깔거리며

“난 여서 살꺼라. 서울 안갈꺼라. 여서 순더기하고 풀 뽑으면서 살꺼라.”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린 그럴 수 없었다. 해질녘 밥 먹으라 부르는 엄마의 외침에“낼 또 놀자!”며 각자의 집으로 달음질했듯 다음에 또 만나 놀기를 기약하면서 우린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장님 빠마가 샴푸 한번에 다 풀렸는데 A/S는 언제 해 주시렵니까?”

어릴 적 친구란 어떤 이상한 행동도 함께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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