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의 웃픈 기억

고 순 덕

 “엄마 나 오늘 또 병원 다녀왔어.” “왜?” “명절 증후군이지 뭐.”

 일단 코웃음부터 흘린 후 “야 니가 무슨 명절 증후군?” “명절 준비하느라 일이 많아지니까 그러지. 토요일까지 예약이......”

 애견카페에서 애견미용사 일을 하는 둘째가 앓는 소리를 한다. 애완동물들도 명절맞이를 위해 용모를 단정히 하기위한 미용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며느님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는데 ‘시’자 너무 편견을 가지고 보지 마시라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의 ‘시’자 군단의 일원일 것이고, 앞으로 ‘시’자의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는 처지이니..... 집성촌에 산 나의 명절 아침은 무거운 눈꺼풀을 비벼가며 이른 아침 큰큰집(큰집 사촌오빠네) 차례부터 시작이 되었다. 집 앞 논과논 사이의 작은 개울을 건너 건넌마 큰큰집은 그 때까지도 바깥 대문이 있고,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소슬대문이 있는 말 그대고 큰 기와집 이었다.

 
 

 큰큰집엔 소슬대문간에 큰 가마솥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 곳에서 송편을 쪘다. 안채에서 두리반과 오봉 가득 뽀얀 보름달 송편을 빚어 건네 오면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길어다 넣고 싸리채반 위에 솔잎과 송편을 층층이 쌓는다. 잔가지부터 꺾어 넣은 아궁이의 불은 듬직한 가마솥이 눈물을 줄줄 흘릴 때까지 화력을 조절해 가며 벌건 입속을 드러내고 있다. 한참이 지난 뒤 엄마보다 나이 많은 큰큰집 큰큰형님(사촌큰올케)은 부뚜막에 한쪽 발을 걸치고, 육중한 가마솥의 뚜껑을 밀어 젖힌다. 뿌연 연기가 솔향을 담고 천정을 올라 다시 바닥으로 내릴 즈음 찬물에 손을 적신 큰큰형님은 재빠르게 솔잎이 붙은 송편을 함지박으로 덜어 낸다.

 
 

 그 옆에서 엄마는 다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꿨다가 송편에 붙은 솔잎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소금간을 한 참기름으로 쓰윽쓱 투명하게 잘 익은 송편에 옷을 입힌다. 이즈음이면 마당 안팎과 열칸이 넘는 대청마루와 이방저방에 흩어져 제 각각의 일을 하던 가족들이 모여든다. 향긋한 솔내음과 갓 짜낸 기름소금의 고소함이 이집저집 온동네에 가득한 민족의 대명절 분위기는 그랬었다. 갖가지 전과 과, 소쿠리 그득그득한 고기와 과일들, 떡과 감주(식혜)들이 부엌 가득하고 대청마루 앞 실겅(시렁)위에 올라앉아 시원한 가을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큰큰집 안채 뒤안에는 단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그걸 추석 장만하는 날부터 엄마를 따라 공식적으로 큰 대문을 들어가고 소슬대문을 지나 큰큰형님 몰래 따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추석날 아침 어둠이 가시기도 전, 엄마는 이미 큰큰집으로 출근을 했고, 동생과 나는 작은언니의 채근으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다. ‘아 맞다. 지사(차례)지내로 가야지! 난 색동사탕부터 먹어야지.’ 철없는 난 이런 생각에 불이나게 고양이 세수를 한다. 어제 시렁위와 부엌에 가득하던 음식들은 모두 대청마루 위에 높은 차례상 위에 높게높게 쌓여져 있다. 뽀얗거나 잿빛 두루막을 입은 큰큰오빠와 큰아부지를 비롯 사촌, 오촌, 육촌, 칠팔촌들까지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공수를 한 채로 섰다. 절을 몇 번씩이나 하는지, 길고 긴 제사는 끝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난 많지 않는 색동사탕과 마당에 가득한 몇 촌인지 모를 도래들의 머리를 센다. 그렇게 시작한 명절제사는 다음은 큰집, 작은집, 뒷골 육촌오빠네를 거쳐 팔촌네까지 다니면 이미 점심때가 지난다. 이집 저집을 다니며 평소 접하지 못하던 음식들을 욕심껏 먹다보니 속이 미식미식 탈이 났다.

 어지럽고, 춥고, 간간이 토하기도 하고 얼굴이 노래진다. 보통은 종일 학교도 가지 않고 뛰어놀다보면 괜찮아지지만 호되게 채했을 때는 엄마의 약손이 진가를 발휘한다. 바늘에 실을 꿰고, 우선 머리를 귓뒤로 넘기고 귓바퀴를 쓱쓱 위에서 아래로 쓸어 내린다 그리고 귓복을 엄지와 검지로 접어 꼬옥 잡고는 바늘로 콕! 엄마의 입에서 끄윽하는 트림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시커면 피라며 종이를 찢어 닦고, 등을 쓸어 내린다. 척추 마디마디를 문지르기도 하고, 쿵쿵 두드리기도 하다가 이번엔 반대쪽 귀. 좀전보다 더 겁에 질리고 아프다. 엄살을 부리다가 “그러게 작작좀 먹지!”라며 엄마의 걱정스런 말과 함께 다시 엄마의 손은 등을 훑고 어깨를 지나 팔을 쓸어 엄지손가락 끝에 머문다. 불길하다. 엄마는 무섭게 나를 흘겨보고는 엄지손락 끝에 실을 탱탱 감는다.

 
 

 내 손가락이 검붉게 변해갔다. 귀는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눈깜짝할 사이 지나갔지만, 손가락은 눈에 보이니 더 무서웠다. 목구멍에서 나올랑말랑하는 트림을 억지고 거짓트림을 하며 “엄마 나 인제 개안아여.” 해 보지만 바늘은 이미 엄마의 쪽진 머리에서 뽑아져 슬슬 머리를 쓸고 있다. 머릿기름과 콧바람으로 소독(?)을 마친 바늘은 이내 나의 손톱위 검붉은 손가락 피부를 뚫고 든다. 내가 봐도 시커면 피가 폭 솟아 오르면 엄마는 그제서야 동여맨 실을 풀고 다시 등을 쓸고 두드린다.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끄윽!” 트림이 몇 번이나 나오고, 미지근한 물을 처방 받는다. 순식간에 속이 편안해 지고 다시 배가 고파오지만 엄마는 한끼는 굶으라는 처방인지 벌인지를 내린다.

 그렇게 먹을 것이 많은 나의 어릴 적 추석명절은 배고픔으로 저물어 갔던 아프고도 웃음나는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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