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차를 마시며
~재춘 친구에게
- 차승진 -
산아래 고즈넉한 찻집에서
친구와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가을향 가득한 풍경에 취해
지나간 추억 더듬는다
까까머리 시절
삼십촉 전등불 교련복 걸린
자취방
석유곤로 파란불꽃 양은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며 밥 타는 내음이 진동할
때까지,
우린 끝없는 이야기속을 걸어가고...
방학이면
기차길옆 과수원 수박서리 하던
그날 밤 달은 유난히도 밝았었지
찻잔은 식어가고
산 그림자 지는 용흥사에
저무는 종소리
강물은 바람에 일렁이는 데
이 가을 단풍 지기 전에
나이로 물들어 가는 우리의
시간표를 만들어 보자
연탄불 이글거리던 밤에
데미안을 읽으며 그 소녀를
생각했던 능금빛 소년이여
국화차를 마시기도 전에,
슬며시 찻값을 선불하는,
가을 들판 같은 내 친구여!
변해철 편집국장
ynt@yn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