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고 순 덕

 끝나지 않을 듯 불타던 여름이 어느 날 길게 내린 비를 경계로 훅 가을이 되어 버렸다. 들판의 벼들은 황금물결을 일으키고, 겨울을 준비하는 아낙들은 풋고추들을 따 고추부각과 짱아찌 준비를 한다. 배추도 이에 질세라 포기를 키우고 속을 채우고, 감 떨어지고 밤 떨어지는 가을이다.

 
 

 국민학교 6학년, 중2, 고3 때 가을이면 1박2일 또는 2박3일 버스를 대절해 타고 떠나던 수학여행. 대구달성공원과 경주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포항제철, 남해, 그리고 돌아오면서 안동댐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에는 설악산으로...... 여행을 가기 한참 전부터 부모님께 안내문과 아랫부분을 절단해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동의서를 제출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담임이 일일이 사유를 묻고 설득을 하기도 했다. 날짜가 다가오면 우리는 시내에 나가 준비물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면도구. 그 때는 여행용 세면도구셋트가 없던 때라 커다란 치약과 칫솔을 그대로 가지고 다녔으며, 수건과 비누, 샴푸 갈아입을 옷, 도시락 등을 넣을 여행가방도 변변치 않았다.

 
 

 새 옷도 한 벌 사 입고 싶었고, 사진관에서 사진기도 빌려가야 했다. 중학교 때부터 반에서 한두명 카세트라디오도 필수품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수학여행 한참 전부터 설레며 준비를 하고 결국 전날에는 잠을 설쳐 늦잠을 자다 지각을 한 친구도 있고, 기껏 준비한 물건들을 빠트리고 와 울상인 친구도 꼭 있었다. 첫 수학여행은 친구들와 하루 종일 함께 놀 수 있고, 함께 잘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떴다. 역사적인 유적지나 우리나라의 산업화 그런 것에는 솔직히 큰 관심도 없었다. 우리는 낮시간보다 저녁시간이 더 기대되고 즐거웠다. 교실같이 큰방에 남녀 학생만 나누어 방을 배치했다. 키가 큰 아이들은 대여섯명씩 따로 방을 배정해 주기도 했지만 어쨌건 그 밤 제대로 잠을 잔 친구는 드물었을 것이다. 밤이 늦도록 낄낄깔깔. 수다에 가지고 온 카세트라디오에 디스코 음악을 켜고 하늘을 찌르며 춤을 추었다. 어쩌다 낮에 차멀미에 지쳐 잠든 친구의 얼굴에 낙서를 했고, 밖에 나가도 별거 없는데 꼭 선생님 몰래 숙소를 나가다 걸려 잡혀온 친구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행지의 곳곳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었는데 주로 효자손이나 안마용 망치, 책상에 놓을 수 있는 작은 모형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집을 떠나봐야 다들 효자, 효녀가 되고 집이 편하고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더니 몇 푼 안되는 용돈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의 선물부터 챙긴다. 그리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오는 숙제 “기행문!” 마냥 들뜨고 좋았던 수학여행의 기억은 수학여행을 다녀온 며칠 후 카메라를 빌려갔던 친구가 사진을 찾아와 150원, 200원씩 사진 값을 받고 나누면서 또 한 번 시끌벅적 해 진다. 단체사진을 많이 찍은 친구는 제법 수익금을 남기기도 했으며, 가끔 필름을 제대로 갈아 끼우지 못해 사진이 찍히지 않거나 햇빛에 노출되어 사진을 다 태워버린 경우도 있었다.

 
 

“언니야 이번주 이야기는 뭘 쓸건데?” 주말이면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음~ 수학여행! 넌 어데로 갔었는데?” “경주!” “또?” “난 국민학교 때 경주 밖에 안갔어. 중학교 때는 우리집을 짓는데 조합에서 대출내고 뭐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우리집에 돈이 없는갑다는 생각에 말도 안했고, 고등학교 때도 그 때 아부지가 교통사고 나싯자나. 그래서 갈 생각도 안했어. 차멀미를 마이해서 차타고 어데 멀리 가는거도 무수왔고....” 한다. 이런이런. 내 동생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 상담을 받고, 수학여행 기간 동안 학교에 나가 빈교실에서 자습을 하던 아이였다니...... 그 어린나이에도 동생은 집안걱정을 먼저 했구나! 늘 심성 깊은 동생이 그 날도 날 부끄럽게 했다. 큰언니는 우리 네자매만의 여행을 꿈꾼다. 어떻게든 동생의 어릴 적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을 보상해 주고 싶고, 큰언니의 꿈도 이루어 주고 싶다. 각자 직장을 다니거나 돌봐야 할 가족이 있어 쉽지가 않지만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겠다.

 
 

 언제부터인가 동창모임에서 중년의 나이에 다시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 가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교복을 입고 그 때의 그 행선지를 다시 가 본들 그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함께 간 친구들과 함께하던 그 시절로 돌아갔을 것이다. 노란리본이 흩날리는 지금도 학교에 수학여행 문화가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딱 요맘때가 수학여행 시즌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들기 시작한 단풍과 가을바람이 밖으로 나오라! 떠나라!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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