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띠기. 띴다.

고 순 덕

 “미띠기!” 하면서 친구의 옷자락을 잡으면, 친구는 “띴다.” 한다. “누구한테?” “너한테!” 하면서 친구를 와락 잡으면 내가 이기고, 도망가면 친구가 이기는 놀이를 해 본 일 있나요? 미띠기가 뛰어간 곳은 꼭 너가 아니고 주위에 있는 친구 누구를 해도 무방하되 미띠기가 뛴 그 친구는 잡히지 않게 도망을 가야 하는 놀이로, 메뚜기가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모양을 흉내 낸 것이다.

 
 

 미띠기는 메뚜기의 고향말이며, 주위 많은 미숙이들의 별명이기도 하다. 수 많은 김미숙이들과 이미숙, 여미숙, 최미숙, 고미숙, 박미숙, 도미숙.....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데 지금이 딱 제철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같은 듯 다른 수많은 종류의 메뚜기들은 온 논을 제 집인 양 튀어 다닌다. 나는 듯, 뛰는 듯 느린 나의 손으로는 한번에 잡기도 힘든 메뚜기를 잡으러 논뚝을 뛰어다니던 시절. 꼬마는 반찬을 하려는 엄마의 명으로, 나는 그저 놀이로 꼬마를 따라 메뚜기를 잡으러 따라 나섰다. 강아지풀 긴 대공을 조심스레 뽑아들고 메뚜기 사냥을 한다. 좁게 깍은 논뚝을 요리빼딱 조리 빼딱이며 걷다보면 메뚜기도 함께 튄다.

 
 

 위치 확인 조심스레 허리를 숙이고, 손을 오무려 순간 포착. 에이, 놓혔다. 동작이 재빠른 꼬마는 잡았다는 외침도 없이 한손으로 메뚜기를 잡아들고는 다른 한손에 있는 강아지풀의 긴 대공을 메뚜기의 갑옷같은 목덜미에 끼워 넣는다. 메뚜기를 잡는 것도 어렵지만 꿰는 이 과정은 정말이지 끔찍하고, 징그럽기까지 하다. 메뚜기는 목덜미를 관통하는 풀 꼬쟁이가 아픈지 잠시 다리를 버둥이지만 알바 아니고, 다시 다음 목표물을 찾는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따사로운 가을햇살아래 메뚜기 잡기는 느릿한 내 손놀림으로는 좀체 쉬운 일은 아니다. 조용히 메뚜기잡기에 열중하던 꼬마가 소리를 지른다. “야! 야! 한방에 두 마리! 앗 싸!.” 역시 꼬마는 대단한 친구다. 다른 메뚜기를 등에 업은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았다.

 벌써 버들강아지 긴 대공을 다 채워간다. 반면 난 몇 마리 잡지도 못하고 누군가 장난스럽게 묶어놓은 풀고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나 하고, 가득 잡아 꿰어 내게 맡긴 꼬마의 메뚜기 꾸러미를 손에서 놓혀 메뚜기들이 스물스물 꼬쟁이를 벗어나 도망을 갔다. “야 니는 뭐 잡지도 못하고, 그걸 노치만 우째노. 하이튼 야는....” “누가 여 풀을 묶어 나가지고.....” 변명이 구구하다. 하지만 꼬마는 나의 변명따위는 아랑곳 않고. 탈출한 메뚜기들을 잡는데 정신이 없다. “인내(이리줘)!” 서로 마음상한 말이 오가고, 슬슬 집에 갈 시간이 되었나보다. 다음 날 아침 꼬마는 아침 이슬이 마르지도 않은 이른 시각에 나를 부른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미띠기는 날개가 이슬에 젖어 있을 때 잡아야 날지도 못하고 잘 잡힌대여. 미띠기 잡우로 가자!” 어제의 서운함은 지난밤 어둠속에 묻혀버리고 “숙제하고 놀아래이~~.” 하는 엄마의 외침을 뒤로하고 냅다 들로 달린다.

 
 

  오늘은 꼬마의 손에 금복주 대병이 들려져 있다. 미띠기를 잡아서 대병 주둥이로 밀어 넣으면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요즘처럼 플라스틱 병이나 양파자루가 없던 시절이라 유리로 된 소주 대병은 꾀나 무거웠다. 벌써 벼를 베어서 세워놓은 논도 있다. 볏단에서 아직 잡이 덜 깬 메뚜기를 잡는 건, 어제에 비하면 정말이지 식은 죽 먹기였다. “꼬마야! 야, 진짜 잘 잡힌다.” 우리 집은 메뚜기반찬을 하지 않지만 꼬마네는 요즘 잡아서 말린 논메뚜기들을 잘 말려서 겨우내 튀겨 먹었다. 잡아온 메뚜기를 그대로 뚜껑이 있는 냄비에 넣어 찔라치면, 처음엔 팜콘튀는 소리가 난다.

 살아있는 메뚜기들의 마지막 아우성이다. 화력이 가해지면 이내 조용해지고, 초록의 메뚜기들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냄비에서 나온다. 다음엔 날개를 떼고, 갈퀴가 달린 뒷다리의 가느다란 부분과 앞다리도 떼어 낸다. 따끈따끈한 햇살과 서운한 가을바람에 잘 말려진 메뚜기는 고소한 콩기름에 볶아져 소금 솔솔 뿌려 먹으면 바삭바삭 고소한 특별한 맛이 난다. 이렇게 볶아 먹지는 않지만, 어릴적 잘 가지고 놀던 메뚜기도 있다. 메뚜기보다 휠씬 등치가 큰 방아깨비. 뒷다리를 잡아 세우면 까딱까딱 방아찢는 시늉을 한다. 난 그 모양을 인사한다고 생각하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며 놀기도 했고, 누가 더 큰 방아깨비를 잡았는지 대 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나갔더니, 작은 지퍼팩 안에 붉게 쪄 손질된 메뚜기가 “메뚜기 한봉지 삼만원.”이라 적혀 있다. 잠시 논바닥과 들을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던 시절로 돌아가 보고, 메뚜기반찬을 해 주지 않았던 엄마를 원망하던 내가 생각났다. 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어야지. 게다가 엄마는 멸치도 먹지 않던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여하튼 그랬었는데, 엄마 나도 엄마 닮아 그런가 메뚜기 반찬은 못하겠더라. 끔찍해서......

 고개 숙이고 서 있는 벼들보다 이제는 낱알을 털어버리고 논바닥에 누운 볏짚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깊어지는 듯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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