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롱이

고 순 덕

 

 “와롱와롱와롱...... 쏴아 타다다다닥 와롱와롱와롱”

 
 

 콩 단을 들이대면 콩깍지를 떨구어 내고, 콩알들을 꺼내는 그것을 우리는 와롱이라고 불렀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일찍부터 분주하다. 마당 가운데에 장대를 서넛 서로 기대어 묶고, 대발을 둘러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와롱이를 모셔다 둔다. 흡사 겨울철 김장독을 묻은 움집과도 같다. 대신 땅을 파지는 않고, 바닥에 멍석을 깔았다. 그 옆에는 가을 햇살과 바람에 며칠씩 말려둔 콩 단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이내 엄마는 월남치마에서 몸배(일)바지로 갈아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완전무장을 하고 나타 난다. “와롱와롱와롱....” 아버지와 엄마는 콩단을 한줌씩 들고, 각각 한 발씩 와롱의 발판을 밟는다. 처음 와롱이를 돌릴 때는 발판을 밟기도 힘겹고, 와롱이가 돌아가는 방향도 중요하다. 서있는 이를 중심으로 바깥으로 돌며 탈곡을 해야 하는데, 안으로 돌게 되면 그대로 콩단이나 볏단을 안으로 휘감아 버린다. 평소에는 뒤안 작은 봉당에 비가 맞지 않게 가만히 서 있기만 했기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숨바꼭질 할 때 와롱이의 통과 발판 사이 작은 틈새로 동생이 숨어드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 날은 동생과 나의 모든 관심이 온통 와롱이에게 가 있다.

 
 

 “와롱와롱와롱...... 쏴아 타다다다닥 와롱와롱와롱” 아버지가 가득 쌓인 탈곡된 콩단을 묶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작은 오빠가 엄마의 옆에 서서 와룡이에 콩단을 넣고 아버지의 일을 대신했다. 부러웠다. 마냥 재미있어 보였고, 아무 비중도 없는 콩잎을 떼거나, 콩단 집어주거기, 마당 여기저기에 마구 튄 콩들을 줍는 일보다 멋져 보였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도 않구만, 동생과 난 와롱이 옆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한참을 그렇게 와롱이를 돌리며 콩을 떨어내다가 잠시 기계를 멈춘다. 아버진 둘러친 대발을 한쪽으로 둘둘 말아 걷고는 와롱이 앞 가득 떨궈진 콩깍지와 콩들을 갈퀴로 끌어낸다. 그때까지도 와롱이가 멈추지 않고 돌면, 작은오빠는 두 손으로 와롱이의 앞판을 잡고 발판위에 두발을 다 올린다.

 엉덩이를 뒤로 쭉 내밀로 와롱이의 발판에 올라 온 체중을 다해 와롱이의 회전속도를 줄이는데, 동생과 나는 엄마가 오빠에게만 허락한 재미있는 놀이로만 보였다. 그래서 샘이 났고, 해보고 싶었다. 엄마는 잠시 부엌으로 들어갔고, 아버지는 다시 대발을 치며 분주하다. 작은오빠는 오줌을 싸러 갔나? 동생과 나는 이때다! 기회포착. 콩 한포기를 들고 와롱이의 발판을 밟았다. 좀 전에 보던 것처럼 쉽지가 않았다. 동생은 작은 몸집으로 두 발을 다 올리고 안간힘을 썼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돈다. 돌아!’ 소리도 못 내고 동생과 나는 기쁨의 눈 맞춤을 하고는 각각 한발로 발판을 밟는다. 제법 엄마와 작은오빠 폼이 나온다. 이젠 발판도 거의 자동으로 오르내리는 것 같다. ‘어렵지도 않구만 우리는 못하게 하고......’ 한껏 붙은 자신감에 이번엔 들고 있는 콩 한포기를 마구 돌아가는 와롱이에게도 들이 밀었다. “악!” 콩 포기를 와롱이에게 올리면 “와롱와롱와롱...... 쏴아 타다다다다다닥 와롱와롱와롱” 소리가 나야 하는데, 소리는 무슨 손에서 콩포기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와롱이가 나의 손을 휙 잡아채고,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와롱이의 만행이 무서워, 동생은 나의 비명소리에 놀라서 우리는 둘 다 뒤로 자빠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은오빠는 다시 와롱이의 발판을 타고 속도를 늦추었고, 엄마 아버지는 “이누무 지지바들이!” 호통을 치는지 걱정을 하시는지 우리를 살피고, 다친 곳이 없어 안심이 되었는지 마무리로 등짝을 한 대 후려친다. 얼마나 놀랐는지 커다란 아버지의 손바닥으로 맞는 등짝이 아프지도 않았다. 그 후로는 작은오빠의 일이 그저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줄지가 않았다. ‘아까는 우리가 와롱이 돌아가는 방향을 몰라서 그랬던거고, 엄마가 돌려놓은 와롱이에 하면.....?’ 다시 와롱이와의 한판 승부를 꿈꾸며,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어쩌다 발판자리가 조금 빈다싶으면 얼른 발을 슬쩍 올려보기도 하고, 엄마가 작은오빠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드디어 다시 온 기회. ‘이번에는 꼭 놓치지 않을테다!’ 젖먹던 힘까지 보태어 콩 포기를 부여잡고 돌아가는 와롱이의 위로 살짝 “타닥타닥.” ‘어? 된다 되! 이 녀석 힘이 씬데.’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콩 포기 전체를 눌러 댄다. 다시 와롱이에게 콩 포기를 빼앗겨 버렸다.

 “저리 안가나 이누무 지지바야. 니 그카다 글 난데이. 손 다 짤리고 싶나?” 그럴 리가 나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내게 맞는 일은 마당 여기저기 튀어 달아난 콩을 잡아들이는 일이 딱이다. 하지만 주워도 주워도 어디엔가 숨어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콩알과의 숨바꼭질은 정말이지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렇게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어둠이 내릴때까지 콩을 주었건만 며칠 뒤 비가 내리면 콩들이 “나 여깃다!” 퉁퉁 불어서 얼굴을 내민다. ‘아~ 엄마한테 매(알뜰히) 안줏다고 또 혼나기 생깃네.’

 
 

 콩타작도 했으니, 이제 슬슬 메주도 쒀야겠지! 아부지한테 등짝 맞고, 엄마한테 혼나던 그 가을날의 따사롭고 새초롬하던 바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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