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알 좀 먹어 줄 사람?

고 순 덕

 무속인도 아닌데 엄마는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했다. 평소에는 쌀 한 톨도 아끼느라 우리가 흘린 밥알 하나까지 주워 입에 넣고, 밥그릇 벽에 하나 둘 밥알이라도 붙여 남기면 복 달아난다며 떼어 먹으라던 엄마가 솔가지나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집 여기저기 떠서 버리고 다닌다. 그리고 무언가 알아듣지 못 할 주문같은 말을 중얼중얼. 집안 여기저기에 팥죽을 떠두고, 촛불까지 켜 굽신굽신 빌고 인사를 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럴땐 엄마가 멈칫 무섭기까지 하다. “엄마엄마 머해여? 머하는데? 먹는거를 왜 내삐리는여?” 분주한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며 조심스레 물어 보지만 엄마는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대답이 없고 그 이상한 행동을 계속한다. “엄마 저거 장깡(장독대)하고 샘에 있는거는 하매 다 식어서 껍디가 생깄는데.” “고만 시끄라바. 저리 안가나!” 드디어 엄마가 무서운 눈빛으로 낮고 간결하게 답했다. 아~~ 역시 평소의 엄마가 아니다. 이 날은 엄마의 이상한 행동이 끝이 나서야 늦은 저녁을 죽으로 먹는 날, 동지다.

 
 

 아침부터 팥을 불리고, 삶고, 거르고, 새알을 비벼서 가마솥 가득 쑨 팥죽을 엄마는 크고 작은 그릇들에 가득가득 담았다. 그리고 부엌, 안방, 마루, 다락, 샘, 외양간 앞 등 여기저기에 두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의식을 치루었는데, 지금 알고보면 일년중 밤이 가장 길어 악귀가 성할 구 있으니 그것을 액막음하고자 한 토속신앙, 풍습 뭐 그런 것이었다. 동지를 잘 지내야 나이를 먹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날은 설날에 떡국을 먹어나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것처럼, 팥죽에 빚어 넣은 새알을 나이 수만큼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부모님이 해 주었다. 그때엔 팥죽보다 쫀득쫀득 적당히 식은 새알이 더 맛있었기에 열 개도 새알을 금새 먹어버리고, 더 먹고 싶어 새알이 가득한 엄마의 죽그릇을 넘보았다. “엄마! 엄마 나이 내가 머거 주까?” 새알을 더 먹고 싶은 속셈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엄마를 할매로 착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못내 서운해 진짜 내가 엄마의 새알을 대신 먹으면 엄마의 머리가 덜 하예질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니 나이만큼만 머거야 된다 캤자나! 그만 니는 설에 떡국도 더 마이 머거야 되는데......” 조금 더 컸다고 뭘 아는 것처럼 작은오빠가 거든다. 하지만 엄마의 숟가락은 이미 동생과 나, 엄마의 그릇을 오간다. “그래 내 나이 너들이 대신 먹어주만 울매나 좋겠노!” 엄마의 한숨섞인 푸념을 뚫고 작은오빠가 눈을 흘기지만 난 혀를 살짝 내밀어 오히려 오빠의 약을 올린다. “이기 씨!” 오빠의 밥숟가락이 머리위로 오르지만 아버지의 “어허!” 하는 소리에 이내 힘없이 내려온다.

 늦은 저녁을 다 먹고 엄마는 그제서야 집 여기저기에 갖다 둔 팥죽그릇을 거둬 들이고, 우리는 이삼일 그 팥죽을 더 먹어야 했다. 시원한 동치미와 함께 먹던 엄마표 귀신 쫓는 팥죽. 동생과 나는 남은 팥죽을 먹을 때도 죽을 이리저리 헤집어가며 새알을 찾아 먹었다.

 
 

 그러면 엄마는 죽이 폭폭 떠서 먹어야지 침 묻은 숟가락을 여기저기 쑤시면 죽이 삭아 일찍 상해 버린다고 야단을 쳤다. 그래도 잠시 우리는 이번엔 젓가락을 들고 콕콕 새알을 찾아 찍는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이제는 시골에서도 어르신들이 계신 댁에서나 동지팥죽을 쑬까 죽 전문점이나 마트에서 사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제와 보면 팥죽은 여러 가지 몸에 좋은 효과가 있는 겨울 건강식 이었다. 팥죽으로 액운을 막는 효과가 진정 있었는지는 증명되지 않지만 팥의 여러 가지 효능으로 인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과는 분명 있었다. 또 한 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이 수와 새알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유래 된 걸까? 동생과 내가 그렇게 많은 엄마의 나이를 대신 먹어 주었건만, 엄마의 흰머리는 늘어만 갔고 결국...... 엄마의 새알을 대신 먹는 마음에 엄마를 위한 마음은 핑계였고, 우리의 입맛을 채우기 위한 불손함이 있어서였을까? 이렇게 사무치게 엄마가 그리울 줄 알았으면, 진심을 다해 엄마의 새알을 먹었을텐데. 친정에 가면 아직도 아흔이 넘으신 엄마의 밥상을 받고 온다는 친구의 글을 읽고 부럽다는 생각과 그리움이 더 했다. 난 엄마의 밥상이 아니가 “왔나?” 하는 엄마의 음성만이라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새알을 다 먹어치울 수도 있으련만..... 이번 동지에는 하늘에 계신 엄마와 가족을 위해 엄마가 그랬듯 정성들여 팥죽 한 번 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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