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 새 공책을 받다

고 순 덕

 

 한해가 가거나 말거나, 새해가 오거나 말거나, 관심도 감흥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 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 했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내 이름을 잊고 살았다. 누구의 아내, 네 아이들의 이름이 내 이름 대신 붙어 다녔다. 그러는 동안 나이도 잊었다. 누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잠시 생각, 계산을 해야 했다. 그러면 재치 있으신 분은 띠가 뭐냐? 또는 몇 년 생이냐로 물어 오시면 그제야 겸연쩍게 대답을 하게 된다. 해 놓은 일 없이 나이만 먹었구나 하는 내 생각과, 질문자는 ‘보기보다 어리네!’라는 표정이다. 갑자기 자존감이 뚝 떨어진다. 학창시절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건만, 이제는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별 감흥이 없던 내게 SNS와 TV에서 연말이라고 난리다. 우표도 없이 날아드는 연하장과 새해 복을 빈다는 건조하고, 판에 박힌 덕담들. 황금돼지해라고 누우런 돼지들과 현실적이지 못 한 돈다발들이 난무 한다. 어렸을 적에 새해가 된다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을 입을 수 있으며, 멀리 흩어져 있던 집안 가족들이 모여 세뱃돈을 받을 수 있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까치까치 설날에는 묵은 때를 벗어버리려 목욕을 하는 들뜨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 해 한 해, 한 살 또 한 살 먹으면서 늘어나느니 뱃살과 주름 그리고 병원진료 영수증 뿐이다. 서글퍼 외면하려던 한 해의 오고 감. 그런데 정말 마지막 날. TV에서 연기대상, 가요대제전을 방연 한다. 아~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즈음엔 제야의 종이 울리겠지. 그 옛날에도 그랬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각 방송사마다 연기대상이나 10대 가수 뽑기 경연이 있었다. 이 날은 지난 1년 동안의 모든 드라마와 멋지고, 예쁜 배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누가 상을 받게 될지 점쳐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10대 가수와 가수왕을 뽑을 때는 거의 내가 직접 경연에 참가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각 방송사마다 한두명의 10대 가수가 다르기도 하고, 또 모든 방송사에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내용의 생방송을 하기에 왔다갔다하는 연예인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해를 마무리하는 축제와 시상식으로 흥겹게 한해를 떠나보내고 맞이했다. 지금은 숙연해 진다. 저이들은 한해를 열심히 살아서 저렇게 상을 받고, 축하를 받고, 다른 이들에게 감사하며 복을 나누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는 나의 한해는 무거운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아니지 아니야 나의 결과물은 아이들! 네 아이들이 모두 건강히 한해를 보냈고, 특히나 셋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이름을 대면 알만한 곳에 취업을 했고, 넷째도 무탈하게 군복무 중이다.

 
 

 첫째는 전공에 맞는 새 직장을 얻어 안정단계에 들었고, 둘째는 제 적성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다시 하나 더 채득했다. 그 뒤에 있는 나. 이것으로 나의 한해를 뿌듯했다 생각해야 겠다. 어리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들으려 했던 제야의 종소리. 그 때나 올해이나 결국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우리는 지금 2019라는 새 달력, 새 공책을 부여 받았다. 학창시절 새학기 새 공책을 대하던 그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 한다. 반듯한 글씨로, 선생님의 한 마디도 놓이지 않아야지 하던 그 때의 그 다짐. 혼자서 한해를 보내고 맞아야 하기에 암울했던 마음에 글을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 생기를 불어 넣어 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새해맞이 행사에라도 참석을 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도 해 본다.

 예전엔 신정, 구정이라 하여 1월 1일에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까치설은 왜 어제고, 우리 설날은 왜 오늘인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에야 답을 찾았다. 까치는 좋은 소식, 손님이 오는 것을 먼저 알려준다는 길조다. 설 전날 멀리 돈벌이 나갔던 일가친척들이 속속 고향을 찾아드는 날이 설 전날. 까치는 동구 밖 느티나무나 감나무 위에서 목청을 올렸을까? 그래서 까치소리 요란한 날을 까치설이라 한 것이 아닐까? 억척스런 추측을 해 본다.

 
 

 그리고 마을 부녀회원들과 한여름 밤 잠시 배웠던 캘리그라피로 새해 연하장을 직접 만들어 보았다. 서툰 붓질이지만 보시는 모든 분들과 새해 복을 나눔하고 싶다. 모두 건강하시고, 늘 부족한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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