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고 순 덕

 

 “어머니 장보러 언제 나갈 계획이세요?”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이 함께 제삿장을 보러 가겠다며 묻는다. 제사면 이것저것 장 볼 꺼리가 많아 짐꾼 역할을 해 주려는 것이다. 고마운 녀석.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녀석의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셋째도 벌써부터 함께 장보기를 돕겠다고 얘기하더니 약속을 지킨다. 요즘 다 큰 자식을 양쪽에 끼고 장보는 호사를 누리는 어미가 몇이나 될까? 우리 아이들 사춘기를 있는 듯, 마는 듯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때는 제 옷 하나 사는데도 나를 꾀나 힘들게 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지도 않고 “아무꺼나요.” 해 놓고는 막상 사 오면 트집이고, 함께 사러 가자도 싫다, 돈을 줄테니 네가 사라도 싫다, 쇼핑 한번 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는 엄마가 가장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양쪽에 아이들을 끼고 장보기라니,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아주 어릴 적 엄마가 장에 가는 날은 그 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엄마가 무얼 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엄마를 따라 가려고 떼를 썼던 기억이 있다. “엄마 난도, 난도 가꺼라 엄마아아~ 히이잉히잉......” “언니하고 놀고 이쓰만 엄마가 마싯는거 사오깨!” 처음엔 어르고 달레지만 나의 막무가내 투정에 엄마는 이내 화난 얼굴이 되고 언성을 높였다. 머리에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울며불며 따라가겠다는 나를 떼어 내느라 그렇잖아 힘들고 먼 길을 가야하는데 미리 진을 다 빼고 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얼릉 집에 안가나!” 몇 걸음 뒤에서 징징거리며 따르는 나를 향해 엄마가 소리쳤다. 엄마의 화난 얼굴에 겁먹고 제 자리에 멈춰 돌아서는 척하다가, 엄마가 다시 걸음을 재촉하면 또 엄마의 뒤를 따라 종종이며 “허엄마~ 난도 따라 가꺼라 허엄마아~~.” 이번엔 엄마가 집을 향해 소리 친다. “귀남아! 귀남에이 야 안잡고 머하노!” 동생을 업고 마당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작은언니가 쫓아 나와 내 팔을 낚아챈다.

 
 

 더욱 거세게 엄마를 불러 보지만 엄마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회관 모퉁이 돌아 사라진다. 결국 땅바닥이 주저앉아 짧은 통곡을 해 보지만, 이젠 더 이상 나의 응석을 받아 줄 엄마는 없었다. 작은언니의 야무진 손바닥이 나의 등짝에 빠른 속도로 내려쳐 지고서야 울음을 뚝. 예닐곱살 때의 모습 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나도 한해, 한 살 커 가면서 엄마가 먼저 장엘 가자고 하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아주 가끔 일요일과 장날이 겹친 아침 “순더가 오늘 엄마 용궁자 가는데 넌도 같이 가자!” 밥상을 물린 엄마가 급히 장 보따리를 챙긴다. 낡거나 입지 않는 한복치마를 뜯어 만든 자루와 보자기엔 엄마가 정성들여 수확한 참깨며 들깨, 질굼콩, 팥 등이 오목조목 싸여 있다.

 엄마는 다음해 씨앗을 남기고는 이렇게 돈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나눠서 장에 내다 팔아 가용으로 썼다. ‘아~ 씨이~ 캔디 봐야 되는데......’ 하지만 장엔 신기한 물건들도 많고, 혹시라도 엄마가 저걸 판 돈으로 맛있는거나 하나 사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텔레비전에서 떨어지지 않는 눈을 돌린다. 엄마는 작은 보따리를 내 머리위에 얹어 준다. “됐나? 개안지? 가자!” 괜찮다 안괜찮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엄마는 엄청 큰 보따리를 스스로 마루앞에 무릎을 꿇고 힘겹게 들어 올려 머리에 인다. 내 눈에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장사였다. 동네를 벗어나니 벌써 머리가 아프고 목이 어깨 속으로 쏘옥 접혀드는 기분이 든다. “엄마, 엄마. 우리 좀 싯다 가자.” “얼릉 안오나? 장꾼들 마나지기 전에 얼릉 가야지 안그러만 지값도 못 바다여. 쌔기 가자!” 엄마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괜히 따라왔어. 괜히. 캔디나 보고 있을걸.’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다. ‘엄마한테 머리 방울 한 개 사달라 해야지!’ 4학년 때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터라 빨간 딸기모양 머리끈을 갖고 싶은 욕심에 힘들지만 계속해서 엄마의 뒤를 따른다. 한시간 넘게 시오리가 넘는 용궁장에 도착. 사람도 많고, 천막을 친 장꾼들이 땅바닥에 옷, 신, 예쁜 삔 등이 즐비하다. 내 눈엔 그런 것들 밖에 보이질 않았다. 엄마는 늘 친정 먼 친척 오빠를 찾아 이고 온 곡식을 내렸다. “아이고 고실이 왔나? 이 야는 누구로? 미째로? ” “다섯째 순디기라요.” “얼러 위삼촌한테 인사 안하나?” 머리에서 큰 바윗덩이 같은 보따리를 내리니 머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엄마는 제법 좋은 가격을 받았는지 여러장의 돈을 세고 돌아서서 속바지 주머니에 넣고 핀을 꽂았다. “엄마 나 삔 한 개만 사조라 으? 엄마 으으?” “돈 없다. 얼러 집에 가자.” “위삼촌이 준 돈 거 개주마이에 있자나 허엄마아. 으으.” “야가 돈 없다카깨 왜이키 보채여!” 엄마는 즐비하게 늘어진 신기한 장꺼리들에 눈길도 한 번 주지 않고, 머리방울 한 개 얻겠다는 나의 일념을 묵살하고 죽어라 걸어온 그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엄마 미와여! 히이히이잉......”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짐도 없는데 더 멀고 힘들었다.

 난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며 제 어미 힘들까봐 스스로 짐꾼을 자처하며 따라나선 내 새끼들에게 고맙고, 부끄럽다. 자식은 나의 업보가 아니라 스승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너들 뭐 먹고 싶은거 없나? 오늘은 엄마가 너들 먹고 싶은거 다 사 주깨.” 오랜만에 아이들과 마음 따뜻해지는 장보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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