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빗

고 순 덕

 

얼레빗 참빗 줄게 잘 빗고 내리거라

얼레빗 참빗으로 곱게 빗고 오시는 비

어레미 참체 줄게 잘 걸러 내리거라

어레미 참체로 곱게 걸러 오시는 눈

 
 

 얼레빗과 참빗으로 머리를 빗는 모습을 빗대어 부른 “얼레빗 참빗”이라는 전래동요이다. 사실 어렸을 적 이런 동요를 부른 기억은 없다. 텔레비전에서 대를 이어 참빗을 만드는 가족이 나오는 것을 보니, 엄마 생각도 나고, 우리들의 웃지 못 할 옛 이야기도 생각났다. 엉클어진 머리를 먼저 성긴 빗으로 빗어 내린 후 참빗으로 빗어 내릴 때 떨어지는 머리카락과 비듬을 각각 비와 눈에 비유한...... 재미있게 느껴졌다.

 엄마는 가끔씩 참빗으로 동생과 나의 머리를 빗어 주었다. 방바닥에 깨끗한 달력을 찢어서 뒤집어 깔고, 우리는 그 위에 산발인 머리를 숙이고 앉았다.

“아 따구아. 따구와여 엄마!”

“가마이 안있나! 지지바들이 밥 먹고 이만 일갔나......?”

 엄마의 참빗이 두피까지 파고들어 머리카락과 함께 두두둑 빗어 내린다. 뽀얀 달력에 시커먼 이가 후두둑 떨어진다. 그리고 참빗 사이에 끼어 미쳐 떨어지지 않은 이는 엄지손톱을 세워 빗살을 다라락다라락 긁어 탈출 시킨다. 한 마리, 두 마리, 솔솔 기어 도망가는 이를 손톱으로 눌러 톡톡 터트려 죽이는 것이 난 눈치도 없이 재미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빗고 나면 깨끗하던 달력에 핏자국과 머리카락들이 난무했다. 다음은 작은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씨가리(서캐)잡기. 두피 가까이에 붙은 씨가리를 손톱으로 훑어내면 머리카락이 뽑힐 것 같은 따가움에 눈물이 고이고, 참다못해 징징거리면 언니의 야무진 주먹에 머리를 쥐어 박히곤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훑어내기가 어려울 때면 언니는 엄마의 참빗에 가느다란 실을 얼기설기 꿰어 다시 머리를 빗어 내렸다. 그러고도 퇴치되지 않으면 마지막 특단의 조치. 허연 DDT를 머리에 뿌렸는데 다행이 난 거기까지 가진 않았다. 엄마 말이 난 유난히 머리숱도 많고, 열이 많아 이를 더 많이 일군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많은 머리숱 탓에 참빗의 이가 빠져 다시 사야 한다고 짜증스러워 했다. 난 그게 내 책임인가? 엄마가 그렇게 낳아 놓고 그런다며 투덜거렸고, 엄마의 참빗은 나로 인해 한동안 그렇게 이가 빠진 채로 있었다. 그 때는 집집마다 참빗이 있었고, 참 요긴하게 쓰였다. 그래서 참빗이었을까? 좀 깨끗이 씻고 다녔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 때는 왜 그리도 씻기가 싫고 게을렀는지? 그럼 요즘 아이들은 왜 이가 생기는 걸까? 모를 일이다.

 엄마는 유난히도 머릿결이 좋았다. 매일아침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렸고, 방바닥에 떨어진 엄마의 긴 머리카락을 엄지손가락에 돌돌 말아 다발을 만들 고, 그 다발을 벽에 걸린 작은 사진들이 가득한 액자 뒤에 모았다. 1년 동안 모아놓은 머리카락을 엄마는 정월 귀신날에 태웠는데, 머리카락 타는 악취를 집안에 풍겨 악귀가 드는 것을 막는다고 했다.

참빗과 엄마, 그리고 철부지한 나.

 
 

 엄마는 평생 긴 머리에 비녀를 찌르고 사셨다. 엄마가 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지고, 아버지가 엄마의 수발을 들어야 했을 때 였다. 엄마의 머리 감기기가 힘들었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긴 머리 자르기를 권했고,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친정에 다니러 간 나에게 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르란 명령같은 부탁을 했다. 엄마를 씻겨드리고 등 뒤에 앉아 머리를 말리며 말했다.

“엄마, 머리카락이 많이 엉키서 빗기도 힘들고, 말루기도 힘들깨 끝만 쪼끔만 자르만 안되까?”

“야가 머라카노. 너 아부지가 시키더나?”

“아니 그기 아이고, 비녀는 꽂을 수 있기 냉기 노깨. 끝에 긴 꼬리 요고만.... 머리칼은 또 길잖아 엄마.”

“그런 소리 할라카만 인제 집에 오지도 마래이.”

 단호한 엄마를 이래저래 달래고, 속여 약속보다 짧게 엄마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엄마는 한동안 서운해 내게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싶지만, 그 날의 죄스러움이 찬바람되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엄마 난도 엄마매로 머리가 실랑가 자꾸 개룹네. 참빗 사서 삐서 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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