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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 80년대 킹카는 이 곳에......고순덕의 생활수기시리즈 84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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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6  10: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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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킹카는 이 곳에......

고 순 덕

 

 80년대 킹카는 롤라장에 가면 볼 수 있었다. 발아래 여덟 개의 바퀴를 마음대로 굴리며, 옆으로 미끄러지듯 달리다 살짝 뛰는 듯 뒤로 돌아서 하체를 살랑이며 뒤뚱이는 초보들의 틈새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다녔다.

   
 

“칼러미야 칼러베이베....... 콜미!......”

“비지칼 비지칼 냄비위에 파리또옹 요파리똥......”

“아나까나 까나리 까니 키퍼웨이.......”

“헬로 헬로 미스터 몽키 에스에스파스 몽키.......”

   
 

 가슴까지 쾅쾅 울리게 하는 디스코 음악에 먼저 반쯤 넋이 나가고, 철망안 잘 생긴 오빠가 나머지 반의 넋을 앗아가 버렸다. 이름도 모르는 그 오빠는 롤러스케이트 대여료를 받고 발 사이즈를 물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작은 구멍으로 나의 발냄새 찌든 월드컵 운동화와 낡고 끈이 긴 바퀴달린 구두를 맞교환 했다. 처음 들어 본 롤러스케이트는 팔을 뚝 떨어뜨릴 만큼이나 무거웠다. 한쪽 구석에 앉아 긴 끈을 이용해 스케이트와 발을 꽁꽁 묶고 일어서려는데 벌써 몸이 앞뒤로 좌우로 흔들린다. 철망을 잡고 조심조심 초록의 폴리우레탄이 깔린 롤라장 안으로 드디어 입성. 가장 자리에서 벽을 잡고 걸어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결국 몇 발작 걷지도 못하고 꽈당! 무릎으로 기듯 일어나 서려다 다시 꽈당! 쌩쌩 달리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였다. 마을 연당(연못)에서 큰오빠의 스케이트를 좀 타 봤다고 쉽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다. 겨우 일어나 엉덩이를 십리만큼 내밀고 한발 한발 걷다보면 옆으로 쌩 지나가는 말대가리에 놀라 다시 꽈당!

   
 

 옆으로 지나간 말대가리란 죠다쉬 청바지에 청자켓을 입은 킹카로 당시에 죠다쉬 청바지에 무지개 우산의 아놀드파마 양말,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면 최고의 멋쟁이다. 그런데 그 최고의 멋쟁이는 롤러스케이트를 뒤로도 타고, 또 예쁜 여학생이 있으면 그 옆에서 한쪽 다리를 살랑이며 옆으로 타기 신공을 보이며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핑클파마까지 한 것을 보면 분명 학생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인근 공고에 다니는 날라리였다.

“저리 비켜!”

 말대가리가 옆을 다시 스친다. 이번엔 넘어지지 않았다. 이제 조금씩 걷기에서 바퀴 굴리기를 시작해 보려는데 여전히 쉽지가 않다.

“못타면 안에 들어가서 연습하던가 여서 이러다 다친다.”

 한바퀴를 돌아 순식간에 다시 온 말대가리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들은 채도 않고 식식거리며 다시 엉거주춤 걷듯 미끌어지듯 뒤뚱이고 있는데

“오빠가 가르쳐 줄까?”

 하며 앞길을 가로 막는다. 꽈당! 아이구 저 웬수. 있는대로 성질이 난 나는 가자미눈을 하고 말대가리를 쏘아 보았다. 쏜살같이 한바퀴를 돌고 다시 돌아온 말대가리는 겨우 일어서 양팔을 휘젓고 있는 나의 두 손을 잡고 뒷걸음질을 한다. “어! 어!” 처음엔 엉덩이를 내민채로 끌려가다가 서서히 무릎을 펴고 한발 한발 조심스레 밀어 보았다. 조금조금씩 걷기가 아닌 바퀴를 굴려 타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부끄러운 생각에 손을 뿌리치고 혼자타기를 시도해 보지만 다시 꽈당! 죠다쉬는 청자켓과 핑클파마한 앞머리를 휘날리며 때로는 피겨스케이트선수처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스피드스케이트선수처럼 두 손을 등에 대고 달렸다. 싫은 내색을 했지만 자유롭게 롤라장을 누비는 죠다쉬는 정말이지 멋져 보였다. 그리고 어리고 작은 내 가슴에 말대가리가 살짝 들어왔다. 아주 살짝, 아주 잠시. 그 날 내게 남은 것은 온 몸의 근육통과 멍, 가슴속 상처 뿐 이었다. 허용된 시간이 다 되어 신을 벗으러 나가려는데 죠다쉬는 벌써 머리가 길고 예쁜 다른 여학생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기분 나빠할 일도, 기분 나빠할 처지도 아니면서 기분이 나빴다.

   
 

 그 날밤 일기장에 난 반성문을 썼다. 주산학원을 빼먹고 롤라장에 간 일, 그리고 부모님께 거짓말 한 일, 다시는 롤라장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지만 결국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서너번 더 롤라장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에 다시 실내 롤러스케이트장 붐이 일고, 우리 지역에도 개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궁금하고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나이가 몇 개인데, 그런 곳에 가면 아이들이 싫어하지나 않을까? 젊은 학생들의 눈총에 맞아 쓰러지지나 않을까 두려워 아직 가보진 못했다. 그래도 너무 궁금하고, 지금보다 더 늙어지면 진짜 못 갈 것 같아 또래의 친구들과 꼭 한번 가보자고 약속 했다. 학생들 개학한 평일 낮에 가면 되지 않을까?

 “밤밤 비나 오. 오. 오오.......”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져 온다. 눈총을 맞더라도 롤라장을 갈 수는 있지만,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 고순덕

-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 수상

- 영남투데이 생활수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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