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1학년

고 순 덕

 어려서부터 야무지고 무던하던 작은언니가 어느 날인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귀가한 일이 있었단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였으려나? 당시 작은오빠는 갓 신입생.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시간에 용의검사를 하는데, 단상에 오른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세수 안하고 학교 온 사람?”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조용한 가운데 단 한사람이 당당하게 손을 들며 큰소리로 대답하더랍니다.

“저요!”

 갑자기 운동장이 술렁이고, 누구일까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는데,

“야 귀남아 자 니 동생 아니라? 맞지 니 동생!”

언니는 순식간에 세수안한 동생 덕에 친구들에게

 
 

“니는 세수 했나?” 놀림대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부끄러워 학교에 가기 싫다고 집에 온 후로 해가 질 때까지 울었다고 했다. 반면 작은오빠는

“그러만 교장선생님이 묻는데 대답해야지 안해여? 우리 선생님이 정직해야 된다 했단 말이라!”

 끝까지 당당했단다. 그런 아픈 기억이 있어 작은언니가 어린 동생과 나를 그렇 게 쥐어박아가며 머리를 감기고 씻겼던 걸까?

 또 지인은 처음 학교를 가서 낮선 분위기와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하는 교실의 수많은 친구들. 공부시간에는 조용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었고, 부끄러움이 유난히 많았던 지인에게 큰 일이 닥쳤다. 공부시간에 똥이 마려워 종이 치기를 기다리며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선생님 이상한 냄새나요!”

 짝꿍이 코를 킁킁거리며 손을 들어 선생님께 말했고, 지인은 그대로 책상에 업드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는데, 예쁜 담임선생님은

“XX, 배가 아팠구나!”

 하면서 화장실로 데리고 가 대충 수습을 하고, 지인의 오빠를 불러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 하셨단다. 먼 산길을 걸어 오가면서 오빠는 아무 말도 없었고, 집에서는 엄마가 계시지 않는 틈을 타 오빠가 더러워진 옷을 빨아서 널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빠와 지인만의 비밀로 지켜지고 있단다.

 그 때는 정말이지 그런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던 것 같다. 공부시간에 손을 들어 “선생님 변소 좀 갔다와......?” 부끄러워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호한 편, 지인처럼 평생의 이야기꺼리를 만들거나, 짝꿍이 대신 손을 들어 “선생님 야 오줌 마렵대요!” 하기도 했고 간간이 땡땡이를 치려고 거짓말로 변소 갔다오겠다 하는 친구도 있지만, 선생님은 귀신같이 아시고

“그냥 싸!” 라거나 “인제 시간 다 됐으깨 쪼끔만 참아!”라고 하셨다. 그럼 한바탕 웃음으로 지루하던 수업시간에 활기가 넘치기도 했다.

 줄줄이 누나들 틈에 막내로 태어난 외사촌 시동생은 입학했을 때 사촌형이 부락장 이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마을 앞에서 모여 줄을 서서 등교를 했는데, 힘센 형이 부락장인 덕분에 제일 앞에 서서 학교 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했는데, 다른 친구가 젤 앞자리를 빼앗았고, 힘으로 그 자리를 되찾을 수 없었던 시동생은 그 날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등교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사촌형이 학교를 나오게 되자 어제 그 친구를 일러 혼나게 하고, 다시 앞자리를 차지했다. 마을 학생들이 모여 줄지어 함께 등교해야 하는 때의 규칙은 앞사람이 가는대로 따라가야 하는데, 개구진 시동생은 굳이 빗물에 패인 웅덩이를 걷거나 이슬 젖은 풀섶을 스쳐 걷곤 했단다. 그래서 모두가 싫어했지만 그 뒤에 지엄한 부락장형이 있었기에 아무도 시동생을 건들지 못했다고 한다. 사촌형이 졸업한 후의 일은 글쎄 또 다른 수호신이 있었으려나?

 
 

 학교 옆에 살던 한 분은 매일 학교와 집을 두 번씩 오갔다고 했다. 동생이 누나를 찾아 가랑이가 터진 바지를 입고 학교로 와 창밖에서

“누나~~ 누나 놀자.”

 하며 매일같이 창문에 매달려 있었단다.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동생을 업어서 집에 데려다 두고 다시 학교로 복귀하곤 했다는데, 더 옛날엔 동생을 업고 등교하는 형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 마을을 떠나 학교란 곳을 가고 입학을 했을 때 갑작스런 생활 변화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형이 있고, 누나가 있어 좋았다. 동생이 귀찮고 부끄러운 때도 있었지만, 당연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들은 1학년, 국민학교를 입학했을 때는 이런저런 실수들의 연발이었지만, 중학교를 입학할 때엔 손안에 드는 단어장을 사고, 처음 대하는 한자를 열심히 외우며 꿈을 키웠고,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멋진 신랑감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다짐에 부풀었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인생의 중반을 넘긴 나이에 새롭게 무얼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그것을 새봄에 새로이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저작권자 © 영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