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담은 소포

고 순 덕

 
 

 나의 전화기는 하루에 최소 세 번은 울린다. 매일 세 딸이 퇴근하면서 안부전화를 한다. 요즘 서로 주고받는 얘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은 미세먼지, 마스크 착용이다. 그리고 둘째가 나를 위해 미세먼지전용 마스크를 한박스 사 보냈다. 많이 보냈으니 동생과 나눠 쓰란다. 50개 들이, 25개씩 각각 포장되어 있었다. 하나는 내가 하나는 셋째에게 주겠노라 했더니

“앗싸! 마스크 득템. 이번에 집에 가면 가지고 와야지!”

신나하는 셋째의 답변과 달리

“미룽이가 무거워서 가져가려나 모르겠네?” 하는 둘째.

 마스크 몇 장이 얼마나 무겁다고? 평소 셋째 미루가 밑반찬이나 무엇이건 챙겨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무겁다며 아무것도 들고 다니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는 둘째의 말이다.

 컴퓨터나 핸드폰의 발달로 글자를 쓰는 일이 줄었고, 택배사업의 활성화로 물건을 들고 다니는 일이 줄었다. 그러다보니 요즘 아이들은 무얼 들고 다니려 하질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몇 천원이면 무엇이건, 어디건 집 앞까지 착착 물건을 배달해 주니 힘겹게 물건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엔 그러지 않았다. 80Kg이나 되는 쌀 한가마니를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에게 화물로 보내려면, 아버지는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회관까지 리어커에 쌀가루를 실어 끌고 나갔다. 그다음은 기차역에 가서 화물로 보내고 물표를 들고 직접 도착지에 가서 찾거나, 우편으로 물표를 보냈다. 물표를 받은 오빠는 도착역으로 직접 쌀을 찾으러 가야했고, 택시를 타야만 집으로 운반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쌀 한자루 20Kg, 그것도 무겁다며 택배회사에서 요즘은 10Kg으로 묶어 달라 요구를 한단다. 어쨌거나 집에서 물건을 포장해 전화 한 통이면 집으로 와 물건을 수거해 가고, 몇 천원의 수고비만 지불하면 도착지점까지 2~3일이면 도착이니, 세상이 이렇게 편해진걸 알면 아마 아버진 억울해 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또 가끔씩 마을 누군가의 결혼식이 도회지에서 있는 날에는 잔칫집에서 버스를 맞추어 결혼식엘 가는데, 이 날은 손님 못지않게 객식구들이 많이 오게 된다. 이유인 즉, 마을에서 한번에 도시로 나갈 수 있는 적잖은 기회를 틈타, 결혼식이 있는 도시에 사는 형제자매들과 상봉을 할 수 있고, 좋은 먹거리들을 나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날 결혼식 차에는 쌀, 고춧가루, 참기름, 고추장, 된장, 김치 등 정을 나눌 수 있는 많은 물건들이 합승을 한다. 그리고 내려오는 차에는 도시의 새 옷과 약,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효도 물건들이 바리바리 실려 온다.

 엄마가 어디를 갈 때에는 항상 머리에 이고, 양송에 가득 들고 길을 나선다. 한번 서울엘 가면 언니 오빠의 먹거리를 비롯, 사촌오빠네나 이모네 것까지 챙겨서 다니다 보니 늘 짐 보따리가 가득하다. 그러니 뉴스에서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겠다며 선량하게 다가온 젊은이들이 시커먼 마음으로 그 짐을 들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심심잖게 나왔다.

 
 

 그리고 누런 종이 포장지와 붉은 끈에 싸여진 소포가 있었다. 우체부아저씨가 가져다 주시는 이 소포에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겸손이 작게, 받는 이의 주소는 그 기쁨만큼이나 크게 쓰여져 있었다. 30년전 이맘때 내게 배달된 커다란 소포는 나의 미래 운명을 결정지었다. 꼼꼼이 포장된 박스안엔 알사탕, 박하사탕, 청포도, 스카치 등 갖가지 사탕들이 가득했다. 같은 과 선배가 보낸 화이트데이 사탕이었다. 그 사탕을 부모님 몰래 다 까먹은 사이 선배는 남편이 되었고, 그 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 후로 이십년 가까이 더 이상의 사탕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 넷 낳고 살면서 그것에 서운할 마음의 여유조차도 없었다. 만약 그 사이 매해 선물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진 못했을 것 같다.

 예전 소포나 화물이던 현재의 택배던 모든 것을 기다리는 마음은 항상 설레임이고, 받아 들었을 때는 기쁨이다. 그러나 예전에 서로 주고받는 물건 안에는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고, 정과 사랑이 포장되었다. 물론 내일쯤 도착하게 될 첫째가 보낸 건강보조식품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옛것에 대한 아련한 동경일 것이다.

둘째가 보내온 마스크를 들고 옛 생각에 잠시 머물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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