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번 버스에는
차승진
어릴 적 동네 구멍가게엔 풍선 뽑기가 있었다.
알록달록 벽에 걸린 크고 작은 색채들의 천국
집 앞 정류장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하다가
버스를 타고 무료한 시간 시집을 펼친다.
시인의 시들이 시들해질 무렵, 뒷좌석 아가씨의
전화 목소리가 어깨를 넘어온다.
거대한 풍선 자루 같은 시내버스, 정차 때마다
승객이 들어오며 빈 곳을 채운다.
삑삑 승차카드 입력 소리 누군가 헛기침 소리
차창 밖 기웃거리는 풍경들 지나가는 소리
시집엔 시들한 시들만 복잡한 낙서처럼 무질서하고
승객들 무료한 시간을 흔드는 라디오 잡음 소리
어릴 적 풍선가게엔 기다란 왕 풍선을 뽑으려
동그란 딱지를 뜯으면 꽝되신 자그만 풍선만
피라미처럼 걸렸다.
목적지를 알리는 신호음 소리에 시집을 덮고
일어서는데, 하필 오늘의 운세가 생각났다.
‘708번’
7과 8사이, 어릴 적 뽑지 못한, 왕 풍선은
행운의 7일까, 꽝 0을 넘으라는 팔 8자일까,
변해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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