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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 아버지의 밥상고순덕의 생활수기88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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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9  08: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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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밥상

고 순 덕

 

 지난 주말 한식이라고 오빠들이 친정 부모님의 산소엘 다녀갔다. 덕분에 오빠들도 볼 겸 오랜만에 엄마, 아버지를 찾아 뵐 수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땅속에 누워 계신 지금도 생전의 습성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한 두 분이다.

   
 

 엄마는 생전에 씀바귀김치를 맛있게, 많이 담았다. 그 옛날에 이미 엄마는 뒤뜰에 직접 채취한 씀바귀 씨앗을 뿌리고 재배를 해서 김치를 담더니, 누워 있으면서도 봉분 가득 씀바귀를 이고 있었다. 씀바귀에 대한 엄마의 욕심은 저 세상에서도 버릴 수가 없나보다.

 아버지는 앙증맞고 노오란 꽃다지를 셀 수 없이 많이 안고 있었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엄마를 두고 다른 꽃을 늘 찾는 벌 같았던 아버지.

   
 

 나 또한 어렸을 적 마음 그대로 씀바귀를 가득 이고 있는 엄마가 측은해 보였고, 지금도 수없이 많은 꽃을 안고 있는 아버지가 미웠다.

 다음 일정이 있는 오빠를 먼저 보내고 다시 두 분에게로 돌아와 아버지의 꽃다지를 다 뽑아 버렸다. 그리고 엄마의 씀바귀도 맨손으로 후벼 파내 뽑았다. 손톱 밑에 흙이 파고들어 손톱사이가 벌어지고, 손끝이 찢어져 아팠다.

 그 옛날 아버진 왜 그렇게 엄마에게 짜증을 내었을까? 며칠 전 지인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입으로는 웃으며 아버지의 젊은 객기를 맹비난 하면서도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던......

 “밖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밥을 먹다가 갑자기 밥상이 휙 하고 마당으로 날아 가는거라. 그러만 엄마는 아이고 왜 이캐요 하민서 울고불고, 언니하고 난 얼른 마당에 나가서 그 때는 밥그릇만 주 오만 되깨 편했는데, 이기 시간이 좀 지나깨 밥상이 날아가다가 문지방에 걸리서 김치하고 장물이 쏟아져 가이고 마루 틈새로 낑기고 냄새가 나서 젓가락으로 후비파고 딱니라고 울매나 고생을 했는동, 그카다 또 몇 해 더 지나깨 밥상을 그냥 그 자리서 업더라고요. 그만 또 얼릉 밥하고 막 쏟아진 걸 다 주 끄러 담고 치우민서 우리도 좀 컸다고 왜 그카시냐고 대들만 대든다고 더 소리지르고 하시디만, 인제는 그냥 어허 하민서 그 자리에서 들고 있던 숟가락만 상위에 탁 내리치는기 다더라고요. 아이고 참......”

   
 

 그녀의 입은 실룩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눈시울은 붉어지고 촉촉해져 있는 것을 나는 분명 보았다. 연세가 들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던 일행이 하는 말

“다른 집에 사는 내 동생인 줄 알았네. 우째 우리집 이야기하고 그키 똑같은동. 엄마가 같은소리 두 번만 하만 밥상이 휙 날라 갔지.” 한다.

 우리집도 그랬다. 아버지와 오빠들의 밥이 차려진 나무 반상과 엄마와 언니, 동생과 내가 둘러 앉아 먹는 다리도 없는 둥근 오봉에 밥을 차리고 먹다보면 도대체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밥상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날아가거나 뒤집어 졌다. 그러면 오빠들은 아버지를 잡아 말리고, 동생과 나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울었다. 작은 언니는 소리없는 눈물방울을 떨구며 쏟아진 밥상을 치웠다. 그 날은 그대로 온 식구가 굶어야 했다. 아버지는 있는대로 소리를 지르며 집을 나가고,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배가 고팠지만 우리는 일찍이 잠을 자는 척 해야만 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그보다 더 무서웠던 날이 있었을까?

   
 

 그 때의 아버지들은 왜 그리도 화가 많았던 것일까? 눈물 콧물 짜며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아버지를 원망하던 그 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없는 살림에 줄줄이 자식들은 많고, 가장으로써 책임감이 견디기 힘들어 그 화풀이를 그렇게 밥상과 가족에게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동안 미워했던 아버지가 측은하고 미안해진다.

 아버지의 이런 객기는 사위를 보고, 며느리를 맞으면서도 줄지 않다가, 손주를 보면서 점점 그 횟수도 줄고, 파괴력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엄마가 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 지면서 큰소리만 칠 뿐 상을 엎는 일은 사라졌다.

 아픈건 엄마였는데, 아버지가 더 빨리 늙어가는 걸 보았다.

 아버지의 화는 받아줄 엄마가 있기에 분출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아버지의 밥상이 날아다니던 그 날이 그리운건 분명 아니지만 젊었던 아버지가 그립고, 조금은 이해가 된다.

   

▲ 고순덕

-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 수상

- 영남투데이 생활수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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