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

고 순 덕

 난 내가 남들에게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여자로 보여지 길 원한다. 하지만 최근 내 생에 두 번째로 ‘군생활’을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 이 무슨? 너무해. 내 행동이나 말투가 그렇게 거칠었나?’

 전쟁관련 기관에서 일해서인지 읽느니 6⦁25 관련서적에 말하느니 매일 연대가 어쩌고 매복에 포 얘기니 그리 보였으려나?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인가? 그만큼 내 일에 충실히 젖어들고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이번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기관에서 할 만한 행사를 생각해 보라는 과제를 부여 받았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전우’라는 옛날 드라마를 다시 상영한다면 중⦁장년층의 관심을 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전우’는 1975년 6⦁25 특집극으로 시작했다가 1977년까지 2년 반 정도 방영했던 국내 대표 전쟁 드라마로 매주 토요일 오후면 또래의 사내아이들은 물론 전국민을 흑백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았다.

 북한군을 빨갱이 또는 괴뢰군이라 불렀는데, 그 놈들은 ‘슈파긴기관단총’ 일명 따발총을 앞세우고 남침을 했고, 드라마에서 볼 때 우리 국군은 참호에 숨거나 나무에 기대어 총을 한발씩 쏘지만 괴뢰군은 어디 숨지도 않고 돌격을 하거나 그대로 서서 이 따발총을 쏘아댔다. 그러면 국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려져 우리는 방바닥을 치고, 얼굴을 붉혀가며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소대장님의 양쪽 가슴에 달려있는 둥근 수류탄을 떼어내 적을 향해 던지면 적군들이 하늘을 날아 팝콘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류탄이 터진 범위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멀리 있는 괴뢰군들도 다 쓰러지고 그제야 우리는 박수를 치며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대장님은 왜 수류탄을 처음부터 던지지 않고 꼭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우리들의 가슴을 졸인 후에야 던진 건지 원망스러웠지만 이겼으니 된거지. 그리고 또 하나의 괴력을 가졌던 무기, 다이나마이트! 여러 개의 다이나마이트를 묶어서 소대에서 제일 날렵한 병사가 이를 적군진지나 다리 등에 설치를 하고 긴 도화선을 늘어트리고 돌아와 T자 레버를 힘차게 누르거나 불을 붙이면, 불꽃이 타닥이며 긴 도화선을 달려 다이나마이트로 가는 동안 괴뢰군은 파죽지세로 몰려들고, 우리는 가쁜 숨을 죽여가며 함께 몸을 움추렸다. 드라마 초나 중반에 장착한 폭탄은 불발의 경우가 있지만, 끝나는 시각의 폭발은 항상 성공! 역시 만세를 불러 일으켰다.

 
 

 이틀 후 학교가는 길에서도 전우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드라마를 보지 못한 아이들은 등굣길에 주워들은 이야기로 학교에 가서는 더 침을 튀겨가며 전우 이야기를 했고, 실제로 총싸움에 칼싸움, 고지전을 벌였다.

 당시 휴전 된 지 이십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키느라 고생하시는 어른들에게도 전쟁에 대한 기억과 악몽이 씻기지 않은 때문인지 아이들 못지않게 열광했던 것으로 기억되어 진다. 텔레비전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으면, “숙제 안하나!” “얼른 안자나!” 야단이었지만 전우를 하는 시각은 달랐다.

 
 

 구름이 간다. 하늘도 흐른다피 끓는 용사들도 전선을 간다빗발치는 포탄도 연기처럼 헤치며

강 건너 들을 질러 앞으로 간다

무너진 고지위에 태극기를 꽂으면

마음에는 언제나 고향을 간다.

 별 셋. 전우의 주제가를 부른 남성 트리오 이들 또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소대장 역의 나시찬은 물론 소대원 모두가 개개의 캐릭터와 이름을 남겼다. 특히나 다혈질이지만 가끔씩 냉철한 기지로 전투에 중요 역할을 하던 강하사 장항선님은 최근까지도 열연을 하고 있으니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6월 보훈의 달 기념행사로 제안한 옛 드라마 다시보기 전우. 이것이 채택이 되고 다시 볼 기회가 생기더라도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겠지.

 어서 빨리 하나 된 한반도의 제대로 된 봄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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