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워야 했던 것들

고 순 덕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남편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 목침위에 올라 국민교육헌장을 외워 집안과 동네의 재간둥이로 눈깔사탕 꾀나 먹으며 자랐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국민학교시절 빵 급식이 있던 날 이 국민교육헌장을 먼저 외우는 순서대로 빵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우리는’으로 시작해 ‘줄기찬 노력으로......’로 줄줄 나가야 하는데 두세줄 넘어가면 손은 머리위로 올라가 긁적긁적 말은 점점 느려지고 작아졌다.

 “그만! 들어가. 다음.”선생님의 단호함에 쉽게 포기하고 돌아오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 아! 한번만요. 한번만! 할 수 있어요.”겨우 다시 주어진 기회도 같은 자리에 가면 뜨덤뜨덤. 자리에 않은 친구들이 붕어입모양을 하고 알려주지만 머릿속은 하얗다. 그 즈음이면 선생님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들어가! 다음.”

 국민학교 4학년 때는 학교에서 시조 외우기를 했는데 사십편에 가까운 시조를 외웠던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외우고 있는 것은 글쎄 대여섯이나 되려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앉아......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샛별지자 종달이 떴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마라......

 
 

 도형의 면적과 부피를 계산하는 공식 등의 교과 이외에도 국기에 대한 맹세, 교가, 교훈, 급훈에 교목, 교화 외우기. 국경일들과 그 노래들, 애국가 4절 등. 하지만 이것들은 새발의 피었고, 껌이었다.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영어단어에 숙어, I, my, me, mine. 한자에 옛날 옛적 무슨 일이 언제 있었는지 외워서 순서대로 나열해야 했고, 많은 범상치 않은 생각을 한 사람들의 이름과 철학, 어록을 외워야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 세부적이고 더 모를 것들을 더 많이 외워야만 했다. 역사이전부터 지질과 기후, 물체가 아닌 물질을 넘어 원소를 외워야 했다.

 
 

‘헤해 사랑하는 빙신씨가 노하고 아니오네 나 마 알 때.....’

수소, 헬륨, 리듐, 베릴륨, 붕소, 탄소, 질소, 산소.....

 물체의 운동과 힘의 상관관계와 계산법, 기억을 떠올리려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지는 수학기호들, 연습장에 새까맣게 쓰고 또 쓰며 입력했지만 그것들을 다 출력하지 못 해 서울에서 먼 소문자 s대를 다녔다. 그러나 하루 세끼 밥 먹고 포만감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대문자 SKY대 출신이나 나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먹고 즐기는 방법이나 종류의 차는 좀 있으려나? 그를 깨닫는데 왜 이리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깨달음이 있기 전, 나의 부족한 삶이 학창시절 학업에 대한 불성실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나 또한 나의 아이들로 하여금 나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대리만족하려 했었다. 첫째와 둘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 동시외우기를 했는데, 매주 하나의 동시를 외우도록 지도했고, 쵸코파이나, 빅파이 등 과자를 간식 겸 상으로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가 상으로 받은 과자를 먹지 않고 내게 가져다주었다. 감동. 내가 호들갑스레 좋아했던 탓인지 두 딸은 경쟁해가며 동시를 외우고 과자를 들고 왔다. 그런데 한번은 “달”이란 동시를 외웠는데

아빠 달이 따라와요

달이? 네가 좋은 모양이구나!

아니요 아빠가 좋은가 봐요. 아빠 머리위에 있는걸요?

 대화형식의 동시였는데, 아빠와 아이목소리를 흉내내며 집에서 읽어 주었더니, 둘째가 유치원에 가서 내가 했던 그대로 외웠더랍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얼마나 웃었는지. 그 날은 과자를 하나 더 받아와 자랑하던 둘째. 그리고 두배 더 기뻐했을 나.

 이제야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뿐만 아니라 네 아이 모두에게 내가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 달라 바라고 강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가 원하고 잘하는 것을 살펴보고 키워주기보다, 부모이고 삶을 먼저 살아봤다는 핑계로 내 생각과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고 살아주길 욕심낸 것을 이제야 반성하게 된다. 오늘의 반성이 얼마나 내일 아이들과의 관계에 반영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노력해야겠다. 아이에게 바라고 당부하는 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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