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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觀水亭 友愛 우성일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종가시리즈 15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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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6  09: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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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水亭 友愛 우성일

김정찬

   
▲ 외삼 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함창에서 서쪽으로 10리쯤에 장계촌이 있고 이 마을 북쪽에 산이 있다. 이 산은 동쪽으로 뻗어가다가 냇물에 닿아서는 우뚝 섰는데 이름은 ‘기산’이라 한다. 냇물은 남쪽으로 흘러내려 오다가 기산 발치에서 산을 안고 감아 흐르니 이 물이 ‘영수’라고 하는데, 물가에는 한 개의 큰 바위가 있어 물에서 네다섯 자[丈]가 되어 이 바위을 ‘관암’이라 한다. 바위 모양은 둥글넓적하여 100명 정도 앉을 수 있고 바위 위에는 한 채의 정자가 있으니 이 정자가 바로 ‘관수정’이다. 이 정자는 작아서 한 칸의 집일 뿐 방조차도 없는데 이 정자를 지은 사람은 취재헌 우성일과 그 분의 계씨 만취당 우성백 이 두 형제분이다.

 우성일禹成一은 자는 형진亨進이며 호는 취재헌醉在軒이다. 관향은 단양으로 벼슬은 행용양위부호군이다. 시조는 휘 현으로 고려 정조 호장이고 16대조의 휘는 중대로 고려 문하시중이다. 14대조는 휘가 탁이다. 세칭 역동선생이다. 9대조의 휘는 치하인데 홍산 현감을 지냈고 호는 청량정으로 문사가 탁월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추앙받았다. 부친의 휘는 계남인데 벼슬이 참봉이었고 모친은 경주 최씨이다. 공은 본디 타고난 성품이 속된 일에 구애 받지 않고 벼슬길에 나아가기를 즐기지 않아 초연히 강호에 있으면서 산림에 나아가 아취(雅趣)를 취했다. 거소를 옛날에 살던 곳 십 리 쯤의 장사 동네로 옮기어 살 곳을 이루고, 시냇가 기암에 동생 만취당 우성백과 함께 비로소 한 정자를 이루니 이름하여 관수정이라 하였다. 평소 올라가 여가를 즐기고 시를 읊조리며 돌아가는 것도 잊고 소요하였다. 영조 을묘년(1735년) 5월 2일 향년 72세에 생을 마치니 동산 을좌원에 장례를 치렀다. 부인은 평창 이씨 이대기의 딸로 묘는 깊은 골 자좌이고 뒤의 부인은 경주 최씨 최익원의 딸로 묘는 왼쪽에 있다. 아들을 다섯 두었으니 장자에 한의요 차자에 한웅, 한진, 한상, 한징이다.

   
▲ 관수정(觀水亭)

 정자가 있는 곳이 심히 후미지기는 하지만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할 만하니, 그 대체적인 내용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방의 산은 한 개의 푸른 병풍이 되어 둘러있고 앞 냇물은 하나의 맑은 거울이요. 구슬 같은 모래와 옥 같은 조약돌, 절벽을 이룬 언덕 평탄한 들판은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 같도다. 찾아드는 것과 따르는 것은 모두가 구름이고 안개이며 물고기와 새들이로다. 해 뜨는 아침과 해 질 녘의 장관이여! 바람이요, 꽃이요, 흰 눈에 달이 떠 있더라. 일 년 사철 이 경치는 내 잠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모두 이 관수정에 드니 이곳은 비록 후미진 곳이나 명소로서는 부끄러움이 없겠구나. 이 정자가 비록 작지만 넓고 큰 집과 바꾸지 않으리라. 이제 여기를 쫓아 길손이 쉬어갈 것이요, 시인 묵객이 찾아와 술을 들고 이곳에서 시를 읊게 되리라.

 

 창건한 세월을 헤아려보니 거의 200년은 훨씬 넘었다. 중간에 여러 차례 중수를 했는데 후세에 우계 홍씨가 일찍이 적어서 새겨 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를 이젠 읽을 수 없고 이 정자 또한 퇴락한지 오래 되었다. 어찌 다행하지 않으리. 후손인 여정씨와 인구씨가 문중 협의를 거쳐 다시 정자를 중수하고 썩은 기둥을 교체하고 기와의 부서진 것은 다시 보수하여 갈아 덮으니 새로 지은 정자 같았다. 하루는 여정씨와 인구씨가 찾아와 중수기를 부탁하는데 천학함을 부끄러이 여겨 거절하였으나 두 분의 선조를 위하는 정성에 느낌을 받아 드디어 이 정자의 이름에 부연하여 적어 넣으니 ‘관수’란 뜻의 훌륭함이여! 공자님은 냇가에서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인도를 닦음이 물 흐름과 같이 끊임이 없어야 하거늘.”이라고 하셨고, 맹자 또한 말씀하시기를, “물을 보는데도 길이 있으니 반드시 큰 파란을 보아야 한다. 모든 사물에는 근원이 있고 물 흐름은 쉬지 않으니 이것을 배워야 한다.”라고 하셨다. 청하신 두 분의 선대 문희공은 도학으로써 세상에 명성을 울렸고, 현감공은 선정을 베풀어 명승이 드러났더니, 취재헌과 만취당 형제분은 선대의 발자취를 그대로 이어받아 다시 후손을 위하여 꾀하신 그 마음의 근원은 참으로 깊다. 여정씨와 인구씨 두 분의 선대의 뜻을 계승하려는 정성 또한 얕다 못할 장한 분이로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선대의 일을 계승하는 일은 학업과 농사에도 있어 취재헌과 만취당 두 어른의 자손으로 하여금 학업에 힘써 덕업을 성취하게 하고 농사에도 부지런할 것을 당부한 것은 부귀라는 것은 모두 부지런하여서 쉬지 아니함에서 연유함이니 어찌 관수의 뜻에 부합되지 않으리. 이는 내가 우씨 가문에 깊은 소망이 있는 까닭이다.

 

 취재헌 우성일과 만취당 우성백 형제는 총명하고 순후淳厚한 성품을 지녀 학문에 정심精深하고 법도法度를 익혔으며 자라서는 제세濟世의 경륜經綸이 탁월하여 환로宦路에 주유周遊하면서도 학림學林에 나아가 경서에 통달하였다. 우성일의 유집은 모두 일실되어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벼슬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경치 좋은 공검면의 장계촌에서 관수정을 짓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

 평소 시부詩賦를 즐겨 형제가 때때로 수창酬唱하였으니 관수정은 두 형제 분의 시작作詩의 산실産室이었다. 상산지商山誌와 증보상주문화유적增補尙州文化遺蹟에 관수정에서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俯仰人間曠感多 세상을 부앙하니 허허로운 느낌도 많아

適斯吾志樂斯佳 이곳은 내 뜻에 맞는데다 아름다움도 즐길만하네

綠崖斷續沙邊路 언덕에 연해 끊겼다 모랫가로 이어지는 길

隔岸依稀樹裏家 언덕을 사이 해 의희한 숲 속의 집

愛此靑山兼綠水 이 청산과 녹수를 사랑해

第看秋月又春花 차례로 가을 달 봄꽃을 보네

憑欄欲試觀瀾術 난간에 기대어 물 보는 술 시험코자 하니

休送風浪動遠槎 풍랑을 보내어 먼뎃 때를 움직이지 말게나.

 

 이 시를 통하여 형제가 자연을 즐기는 지취志趣가 같고 매사에 동성상응同聲相應으로 형우제동兄友弟恭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율시律詩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형제는 ‘장계유락長溪幽樂’이라는 시집詩集을 남겼으나 전하지 않고 몇 편의 시가 가승家乘에 전해 오고 있다.

   
▲ 외삼 김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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