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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 탈타리고순덕의 생활수기 92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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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7  1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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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타리

고 순 덕

 신혼시절 우리 부부의 단잠을 깨우는 것은 언제나 탈탈탈탈 경운기 소리였다. 담장도 없는 시골 빈집을 개조해 결혼 3개월만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인심도 좋고 공기도 좋고, 남편이 원하는 농장을 일굴 적지로 모든 것이 좋았다. 단 하나, 아침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해만 뜨면 탈탈탈탈...... 동네 어르신들은 잠도 없는지? 뒷집 탈타리, 김선상네 탈타리, 반장네 탈타리, 산밑에집 탈타리, 구반장네 탈타리, 산 넘어 온 탈타리, 물건너 온 탈타리, 산모퉁이 돌아온 탈타리, 탈타리 탈타리 탈타리.

   
 

 탈탈탈탈 경운기 소리는 대도시 출근길 차들이 줄지은 모습마냥 해만 뜨면 끈이질 않고 탈탈거렸다. 어느 세상에 이보다 더한 기상 알람소리가 있을까? 이 때부터 아마 난 경운기 소리를 싫어했나 보다. 그 옛날엔 저 멀리서 들리는 경운기 소리도 용케 포착하고 뛸 듯이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무거운 가방을 들거나 메고 십리 길을 터덜터덜 오가다 장날이거나 농협에 비료를 사러 오가는 경운기를 만나면 간혹 태워 주실 때가 있었다. 그 날은 완전 횡재하는 날. 마을까지 가는 경운기가 아니어도 좋다. 이웃 마을 경운기라 그 갈랫길까지만 가도 마냥 좋았다. 터덜터덜 탈탈탈. 비포장 길을 덜커덩 탈탈탈 요동치며 달리느라 들썩들썩 엉덩이는 깨질 듯 아프지만, 경운기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할세라 더 큰소리로 웃고 떠들다 보면 혀를 깨무는 아픔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럼 창피해서 또 한번 더 웃고. 경운기를 타면 언제나 즐거웠다. 그런데 어떤 날에는 탈탈탈소리에 잔뜩 기대를 하고 걸음을 늦추며 흘깃흘깃 뒤를 돌아다 보는데, 경운기에 짐이 한가득. 그런 날은 태워주질 않는다. 그런데도 머시마들은 달리는 경운기 뒤를 쫓아 고무 바를 잡고 달라붙어 묘기를 부린다. 한걸음이라도 덜 걸을 생각에 제 목숨 내거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경운기 타기가 특히나 좋았던 날은 명절. 아침 일찍부터 젤 큰집을 선두로 몇 집을 돌며 제사를 지냈는데, 평소 먹고 싶던 전이며, 고기, 과일에 과자, 떡이 즐비했건만 배에 넣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어 너무 슬펐다. 그런데 차례를 다 모시고 먼 선산에 성묘를 갈 때면 그 슬픔이 싸악 사라진다. 큰엄마와 나이 많은 질부가 정성스레 찬합에 음식들을 싸고 술과 돗자리를 챙기면, 집안의 어른을 대표해 윗대의 막내인 아버지와 장조카 그리고 사촌오빠들과 또래의 종조카들, 우리. 경운기에 탈 수 있는, 아니 탈 수 있는 수를 초과해 빼곡히 타고는 탈탈탈 신장로를 달려 들과 산을 지나 먼 선산을 향해 달리면 터질 듯 부르던 배가 금새 꺼져 버린다. 이보다 나은 천연소화제도 없을 거다. 길도 제대로 없는 산을 오를 때면 목도 마르고 힘도 들지만, 누군지 모를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절만 하면 다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짐을 들겠다 다투기도 했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카의 경운기는 바퀴에 어떤 장치가 다른 것에 비해 더 좋은 것이 부착되어 있어 덜 터덜댄다고 아버지는 자랑이 대단했다. 정작 당신은 농사 일에 관심이 없어 일찍부터 남의 손을 빌려 농사를 지은 탓에 아버지 평생 우리 집엔 경운기가 없었다. 그러니 어린 맘에 남의 집 경운기가 얼마나 부럽던지.

 경운기는 소로 하던 논밭을 가는 일은 물론 로터리, 피복에 양수, 짐을 나르거나, 약을 치기도 했다. 이렇게 만능 일꾼인 경운기를 움직이게 하려면, 예전엔 적잖이 힘이 들었다. 경운기의 코를 잡고 돌려서 시동을 걸려면 장정들도 팔에 핏줄이 서고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면 실룩실룩 탈 탈 탈 탈탈탈탈탈 점점 소리가 빨라지고 커지면 검푸른 매연이 펑펑 나오고, 시동이 걸렸다. 간혹 머시마들이 아버지 몰래 경운기를 몰아볼 욕심에 시동을 걸다 힘에 부쳐 이를 다치거나 얼굴에 멍이 시퍼렇게 들기도 했다. 그때는 경운가 내뿜는 매연의 냄새도 좋았다.

 그런 경운기가 요즘은 보기 힘들다. 간혹 어르신들이 경운기를 몰고 할머니를 옆이나 뒤에 태운 채 장을 보러 오가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있어 마음이 아프다. 경운기를 조작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또 작은 장애물에도 핸들이 휙 순식간에 꺽이다보니 사고가 잦은 편이다. 이제는 경운기를 이용하는 분이 대부분 이르신들이니 그런 일이 더...... 경운기를 사용하던 세대가 점점 줄어듬과 더불어 한때 새마을 사업과 함께 대한민국 농촌소득증대에 기여했던 경운기도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그리워해도 사라져 가는 소리. 탈탈탈탈탈탈....... 시동 걸때마다 아이들을 먹이고, 탈탈탈탈 매연을 내뿜을 때마다 학교를 보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힘겹게 걸지 않아도 될 시동 소리에 머리가 희고, 주름만 늘어 허리가 구부러진다.

   
 

 고생하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 고순덕

- 2017경력단절예방 우수사례공모작 대상 수상

- 영남투데이 생활수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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