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푸 실(草 谷) <하>

이정록

 새재 골짜기에 위치한 푸실은 봄철이면 두견새 울음소리가 유달리 애절하게 느껴지는 마을이다. 밤을 꼬박 세워가며 울어대는 두견새 울음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만감이 교차하게 한다. 집을 떠나 먼 길을 가다가 첩첩산중 새재에서 하루 밤을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손들이 두견새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며 감회에 빠져 들었을까?

 두견새는 소쩍새, 접동새, 자규(子規),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 촉하혼(蜀化魂)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새이며 깊은 밤 깊은 숲속에서 울어대는 애절한 울음소리 때문에 한이 많은 새로 알려져 있다.

 촉나라 임금 두우(소열제 유비의 아들)는 위나라에 멸망당한 후 복위를 꿈꾸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한 맺힌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촉나라 망제의 혼인 두견새가 그 맺힌 한을 긴 밤을 꼬박 새워 피를 토하면서 울고 또 울었는데 울다가 목이 메면 토한 피를 다시 삼켜 목을 적셔가며 울고 또 울었다는 너무도 애달픈 사연이 담겨있다.

 충청남도 홍성 태생인 손곡 이달선생도 두견새 우는 봄날 새재를 넘을 기회가 있었든지『조령 문 두견 유감』이라는 칠언 율시 한편이 전하고 있다.

 

鳥嶺聞杜鵑有感

隴坂漫漫隴水悲 <산은 끝없이 넓고 골짜기 물 구슬퍼 우는데>

旅人南去馬行遲 <나그네 남으로 가려니 말도 더디 움직이네.>

辭家正欲懷吾土 <집을 떠나니 정말 내 고향으로 가고 싶은데>

入峽那堪聽子規 <골짜기로 들어서니 두견새 울음 더욱 애절해>

千嶂不分雲起處 <뭇 봉우리들 구름 이는 곳 구분키 어렵고>

數聲猶苦月沈時 <달 기울 때 몇 가락 소리 더욱 괴롭네.>

杜陵無限傷心事 <두릉에서의 한없이 근심스러운 일들이여>

直道泣州別有時 <울며 곧장 길을 가면서 이별 할 때 마을에서 시를 지었네.>

 

 손곡 이달선생은 허균과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글선생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들과 익숙해진 인물이다.

 근세(近世) 이전에 지성인 중에 현대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아마도 매월당 김시습이 아닌가 한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세종대왕을 알현한 적이 있었는데 세종대왕께서는 김시습의 글재주에 감복하시어 비단 필을 하사 하셨다. 하사품으로 받은 그 비단 필을 허리춤에 묶고 대궐을 나왔다는 신동 애기도 매력이 있고, 후환(後患)이 두려워 가족들조차 감히 엄두를 못내는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수습하고 충절의 넋을 위로하며 초혼제를 올렸든 의기는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받을 만하다. 세조 등극에 공을 세워 높은 벼슬에 오른 벼슬아치들을 질타하고 야유하는 모습은 후덥지근한 여름날 한차례 퍼붓는 소낙비만큼이나 우리들을 가슴 시원하게 하여 준다.

 

 매월당(김시습)의 칠언율시 作晴作雨(작청작우) 한편 소개 한다.

 

作晴作雨(작청작우)

作晴還雨雨還晴 <잠시 개였다 비 내리고 비 내리다가 다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 <하늘의 일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이 인심에 있어서야>

譽我便是還毀我 <나를 칭찬 하던 자 금방 돌아서서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 <명예를 피하드니 금방 또 공명을 찾아가네.>

花開花謝春何管 <꽃이야 피던 지던 봄이 어찌 상관하며>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가고 온들 산이야 다툴 일 없는 것을>

寄語世人須記認 <세상 사람들아 모름지기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 <평생 두고 누릴 기쁨 아무데도 없는 것을>

 

 잠시 비가 개이더니, 다시 비가내리고, 금방 또 날이 개이고, 여름철 내리는 여우비의 변덕스러움에 비유하여 무시로 변하는 권력과 명예를 쫒는 것이 부질없음을 일깨워주려는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입산하여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하고 칩거 하든 중 효령대군의 간곡한 청으로 원각사 낙성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잠깐 상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칠언절구 한편이『매월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嶺分南北與東西 <조령은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로 나누는데>

路入靑山縹緲中 <그 길은 청산 아득한 곳으로 들어가네.>

春好嶺南歸不得 <이 좋은 봄 날 남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서>

鷓鴣啼盡五更風 <저 두견새 울음만 밤이 다 가도록 바람결에 실려 온다네.>

 

 사월 초파일을 즈음하여 원각사 낙성식이 있었는데 때가 신록이 한창 피어나는 양력으로 오월이니 소쩍새 울음소리 또한 절정을 이룰 때였다.

 이 좋은 봄날 내키지 않은 상경 길에 새재에서 하루 밤을 유하면서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하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매월당께서는 밤을 꼬박 새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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