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고 순 덕

 

 지난 4월부터 아들에게 매주 손 편지가 왔다. 현역 입대 때 스무 장의 우표를 사서 아들에게도 주고 나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그저 갖고만 있었다. 요즘은 군부대 홈페이지에 인터넷편지를 쓸 수 있는 코너가 있어, 그러잖아도 힘든 손 편지를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녀석이 우여곡절 끝에 부사관 후보생으로 다시 입대를 하면서 내가 사 준 우표를 사용하지 못 했던 것이 미안했다며 손 편지를 써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의 정성에 가만있을 수 없어 나도 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4월 30일.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직장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 앞 우체통을 찾았다. 2017년 우표를 사던 때의 가격은 330원, 그런데 2019년 5월 1일부터 380원으로 인상되었다는 통신문이 우체통에 떠억 부착되어 있었다. 허걱! 다행인건 30일 소인까지는 330원 우표만으로 발송 가능. 5월 1일부터는 반송처리 되어 진단다. 남은 우표는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그동안 너무 게을렀던 나를 반성하는 한편 이 편지는 보낼 수 있다니 행운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우표값 50원에 참 가볍게도 변하는 기분이다.

 
 

 며칠 뒤 우체국을 방문해 50원짜리 우표를 10장 구매해 두장의 우표를 부착해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아들에게 편지가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매주 일요일에 편지를 쓴다고 했는데, 지난주 훈련이 고되어 쓸 수가 없었을까? 많은 생각이 오갔다. 면회가 허락된 날 직장일로 면회를 갈 수가 없었다. 동기의 부모님의 배려로 밖으로 나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지난 주 편지를 거른 이유인 즉, 무수면 훈련을 받으면서 편지를 썼고, 잠결에 주소를 쓰는데 받는 이의 주소란에 군부대의 주소를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송되어졌다고...... 세상에 얼마나 졸리고 정신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애처러웠지만, 가벼운 목소리로 “그건 반송이 아니라 제대로 들어 간거지!”라며 웃어 넘겼다.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까지 먹먹해져 왔다.

 
 

 그런데 이번에 보내온 편지는 또 한 번 헛웃음을 웃게 되었다. 군사우편 소인이 아닌 330원짜리 우표가 두 장씩이나 붙은 비싼 편지였다. 교관의 손을 빌어 보낸 우편이었을까? 왜 군사우편을 사용하지 않고...... 내용도 평소와 달리 가격이 있는 내용이었다. 직업인으로 첫 월급을 받게 되었으니 수료식 때 오시는 이모들과 누나들에게 진해의 맛집에서 고기를 쏘겠단다. 큰언니와 동생에게 따끈따끈한 소식이 식기 전 얼른 전화를 돌렸다. 고 쪼맨하던 놈이 대견하다는 언니와 미안해 그걸 어찌 먹냐는 동생. 사실 아들의 편지가 몹시도 반가웠지만 무겁게 부착된 우표가 아깝다는 생각 또한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50원짜리 우표를 동봉해 보냈다. 직장의 커다란 정원을 가로질러 편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단비에 씻은 산딸나무 꽃이 더욱 싱그런 미소를 던진다.

 
 

 예전에는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하는 이도 많았다. 나 또한 언니에게 오는 편지에 붙은 우표를 떼어 모았다. 살살 조심해서 떼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잘 찢어 졌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기존에 없던 우표를 떼다 찢어지면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보면 봉투째 오려냈어도 될 일이었다. 그렇게 언니의 편지를 훔쳐 우표를 떼던 때는 10원 20원짜리 우표를 사용했었는데, 그러던 것이 40원, 70원, 100원 알지 못하던 사이 올라 지금은 380원. 그나마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기본 무게의 편지는 420원이라 한다.

 우표의 가격만큼이나 귀한 손 편지들이다. 우체통도 귀한 존재이긴 매한가지. 아들에게 보낼 손편지를 들고 시내엘 나갔는데 당연 우체국 앞엔 우체통이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멀고 아무리 찾아도 우체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언뜻 직장 가까운 가게 앞에 작은 우체통이 걸려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곳에 진짜 우체통이 있었고 애용하게 되었다.

 빨간 자전거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커다란 가방에서 서울 간 큰언니와 큰오빠의 소식을 전해주는 우체부 아저씨. 사립문 밖에서 펜팔편지를 기다리던 작은언니. 전보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을 찾던 그 때의 정서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문자와 카톡으로 전환되었다. 우체부아저씨의 빨간 자전거도 빨간 오토바이나 빨간 소형차로 바뀌었다. 예전 우체부 아저씨는 단순히 편지를 전하는 분이 아니라 커다란 가방 속에 정을 담아 나누었다.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에겐 편지를 대신 읽어주기도 했고, 장을 잘 나기지 못하는 골짜기 아낙네들에겐 장터 소식을 물어다 나르기도 했다. 이웃마을 잔치가 언제라더라 댓가 없는 홍보도 마다 않았고, 모내기하는 논둑에서 농주를 함께 나누기도 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사흘이 멀다고 꿈이 바뀌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도록 갖고 있었던 꿈이 우체아저씨였다. 네 살짜리 아들에게 우체부 아저씨란 단어가 길고 말하기 힘들었던지 ‘부’자를 빼고 “우체아저씨!”라고 불렀다. 우체아저씨는 누나들은 모두 유치원에 가고, 혼자 마당에서 노는 아들이 측은했는지 우편물을 전해주고도 한참을 아들과 놀아주고 가셨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우체아저씨를 좋아했고, 자신도 크면 꼭 우체아저씨가 되겠다고 했다. 물론 그 꿈이 또 아이스크림 막대 꽂는 사람으로 바뀌긴 했지만 지금도 가끔씩 아들을 놀리느라 우체아저씨 이야기를 꺼내면 빙그레 웃어 보인다.

 최근에 우체부의 과로사에 대한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커다란 바스켓을 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극한의 추위나 더위도 아랑곳없이 달리는 빨간 오토바이. 비록 예전처럼 정겨운 소식(손편지)을 배달하는 일은 줄었지만, 그 수고로움은 오히려 더할 것 같다. 이제는 우체부 아저씨와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드물지만, 다음에 마주하게 된다면 시원한 음료 한잔이라도 권해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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