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

고 순 덕

 

 지난 30일은 아들의 해군 부사관 임관식이 있는 날. 어린 조카의 임관을 축하한다며 큰언니와 동생이 동행했다.

 
 

“언니야 경도 임관식 때 같이 갈래?”

“하이고 야야. 우리 막내아들(조카들 중 막내)이 공무원 취직했는데 내가 가야지! 울매나 대견하노? 우리 큰아들(큰언니의 아들)도 공무원이고, 막내도 공무원이깨 그 새에 끼인 아들은 다 잘 되는기라!”

“그럼 언니야, 임관식 전 날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되는데, 올 수 있나?”

“가야지. 내 갈 수 있다. 내 니말 잘 드르깨 꼭 딜고 가래이!”

 
 

 한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다. 드디어 D-1일. 큰언니와 동생이 왔다. 해가 많이도 길어진 덕분에 퇴근 후 언니가 가고 싶었다는 인근 절에도 가보고, 내가 자랑하고픈 지역의 장미동산도 갔다. 소녀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깔깔 거리며 공원을 거닐었다. 오디도 주워 먹고, 포토죤마다 사진도 찍었다.

“내가 인제 너들하고 및 번이나 더 이래 댕기 보겠노?”

‘언니는 왜 또 저런 얘기를 하는걸까? 할매매로......’ 조금은 짜증스런 생각이 스쳤다.

언니는 또 오랜만에 보는 밀밭에서 밀 서리를 흉내 내며 즐거워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언니의 어릴 적 이야기들을 제비처럼 재잘거렸다.

 명절에 친구들은 모두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이 부러워 언젠가는 아버지한테

“아부지 난도 색동저고리, 색동저고리 사조요 예! 난도 색동저고리 입고 시퍼요!”

아버진 종일 울고 떼쓰는 큰언니에게 색동저고리를 입을 수 있는 비법을 알려 주었단다.

“새똥 저고리가 그키 입고 싶으만, 비료포대를 담뜰에 언지놓고 새가 똥을 누만 그기 새똥(색동)저고리가 된데이!”

 언니가 몇 살 때의 이야기였을까? 그 말을 믿은 언니는 정말 비료포대를 담에 걸쳐두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새가 똥을 누지 않아 마음을 졸였단다. 그리고 어느 날, 제빈지 참샌지 똥이 묻었지만 비료포대는 색동저고리로 변하지 않았다. 변할 리가 없지. 큰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울고불고 하다가 엄마한테 헷다배기(헛똑똑이, 바보)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젊었던 아버지와 어린 언니의 이야기.

 또 한 번은 카시미롱솜이 들어간 친구들의 나일론 잠바가 나만 없다며 사달라고 조르고 졸라 얻어 입게 된 나일론 스웨터. 카시미롱 솜이 들어간 잠바는 아니었지만 꽃이 수놓아진 빨간 스웨터가 마음에 쏙 든 언니는 몇 날 며칠 줄곧 그 옷만 입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소죽을 끓이다가 성난 불꽃이 달려들어 언니의 빨간 스웨터를 녹여 버렸단다. 그날따라 불이 안으로 잘 들여지지 않고 자꾸 앞으로 내쳐져 엄마한테 아궁이를 뚫어 달라 지원요청을 했지만, 저녁 밥 준비로 바쁜 엄마는 이를 들어주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가마니를 들고 와 아궁이에 대고 탕탕 두어번 바람을 몰아지치면 막힌 고래가 뚫리고 불이 안으로 잘 들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그 날은 어린 언니가 아무리 입김을 불고 부지깽이를 들쑤셔도 불이 잘 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입고 있던 빨간 나일론 스웨터가 망나니의 칼춤같은 불꽃이 스쳐 호로록.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언니는 어떤 방어도 할 수가 없었다. 옷은 물론이고 앞머리까지 거슬러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단다. 그렇게 아찔 천만한 상황에도 새 옷을 끄실러 혼날게 무서웠던 언니는 얼른 꾸껑(구석)에 쳐박고(숨기고) 아쉬움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고 한다. 근근이 갖게 된 맘에 드는 새 옷을 잃어버린 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 외에도 언니는 많은 이야기들을 쉼 없이 토해냈다. 하지만 처음

“내가 인제 너들하고 및 번이나 더 이래 댕기 보겠노?”하던 언니의 말은 엄살이나 허풍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의 첫 날밤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언니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다음날 이른 아침 진해에서의 임관식과 부산 국제시장 아이쇼핑, 언니는 급격스런 체력 저하로 저녁을 먹지 못했다. 으스스 감기 기운까지 있는지 해열진통제를 먹고 그냥 숙소에서 쉬겠다고 했다. 처음엔 왜 저럴까 생각했지만, 맘 깊은 동생의 설명으로 곧 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큰언니 나이가 벌써 육십일곱이라. 우리도 이십년 후면 저리지 않으까? 지금도 아들하고 쇼핑 다니면 힘들던데, 언니는 어지, 오늘 얼마나 마이 걷고 댕깄나. 언니깨 저 정도지 우린 더할지도 몰라여.”

 그러게 언제까지고 큰언니는 그저 내 언니인줄만 알았지 중학생 손자가 있는 할머니란 걸 잊고 있었다. 나 또 한 이미 엄마가 첫 손자를 보던 그 나이가 지났음을 동생의 말로 인해 깨닫게 된다. 내 아이들이 자란만큼 언니와 난 늙어가고 있었다. 아니 어느 노랫말처럼 익어가고 있다고 말 하련다. 언니야 우리 푹 아주 야무지게 익어가자 아프지 말고.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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