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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삼백재三白齋 이야기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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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9  1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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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재三白齋 이야기

김 정 찬

 

   
▲ 김정찬 역사인물연구소장

우리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일컫고 있다. 세 가지 흰 것으로 유명하다는 말이다. 그 세 가지는 바로 누에, 곶감, 쌀을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늘상 상주를 외부에 알릴 때 ‘삼백의 고장’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상주가 아닌 곳의 사람들이 상주를 안다고 말할 때는 삼백의 고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쯤 전의 일이다. 재령강씨 문중에서 삼백재집三白齋集이라는 문집을 얻어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문집을 볼 때마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시와 기문 그리고 행장 정도이다. 시에서는 지역의 특정한 장소와 관련된 스토리를 찾아낼 수가 있고, 기문으로는 문집 주인공의 글쓰는 실력과 교유관계 그리고 특정 건물의 내력 등에 대하여 알 수 있다. 그리고 행장을 통해서는 문집 주인공의 일대기 즉 출생, 인품, 경력, 가족사항, 사승관계, 관직관계 등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래서 문집을 받아보면 이런 부분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삼백재집은 ‘삼백’이라는 문구가 있어서 관심을 끌게 하였다. 혹시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삼백’인가 싶어 1권부터 3권까지 차례로 읽어 보게 되었다. 1권은 시와 부 그리고 만사가 실려 있었다. 첫 번 째 시가 강당을 노래한 시였다.

 

선조 묘우 앞에 강당을 세우고

온 집안이 의견을 하나로 모았다네

바람 불고 달빛 어리는 기둥이 있는 건물은 물가에 있으니

남계 활수당을 오가며 우러러 본다네

 

 아마도 지금의 상주시 양촌동 대촌리[터골]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터골 마을에 들어가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산자락 왼쪽에 재령강씨들 세덕사가 있다. 이곳을 처음 세우고 지은 시 같다. 세덕사 앞으로 흐르는 물은 남쪽 개울물인 것이다. 여기서 ‘남계南溪’라는 호가 나왔다. 즉 남계 강응철 선생이 평소 이곳에서 우복 정경세, 월간 이전, 창석 이준 등과 함께 교유하며 기거하였던 것이다.

 

연원각에서 여런 친구들과 함께 서로 시를 주고받다 라는 시를 보면,

차가운 달이 갑장산 동쪽에 솟아 오르고

조용하던 새는 돌 사이로 흐르는 물가에서 더러 우는구나

연원각에 모여 같이 경치 즐기며

옛 선배들 멋진 놀이 따라 해 본다네

   
▲ 연악서원=경상북도 상주시 지천동에 있는 서원.갑장(甲長)의 산이 힘차게 동쪽으로 뻗어나와 좌우로 펼쳐져 한 구역을 이루니 이를 연악(淵嶽)이라고도 한다.

 내용은 이렇다. 연원각은 연악서원의 부속건물을 말한다. 옛 선배들의 멋진 놀이는 1622년 남계 강응철이 주도하여 연악산 자락에 있는 연악서원에서 당시 상주의 대표적 인물을 초청하여 문회를 가지고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에 쓴 시를 기록하고, 서문을 붙여 책을 만들어 연악문회록이라 하였던 성대한 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삼백재는 누구인가? 안타깝게도 이 분의 행장을 아직 보지 못했다. 삼백재집 3권 및 부록 중 삼백재 선생의 증손자가 쓴 제문에 ‘삼백재는 나의 증소부의 당호이다. 그 뜻은 머리가 희고 달이 희며 마을이 희다[髮白月白心白也]’라고 하고 있다. 참 멋드러진 말이다. 늙은 나이에 달빛을 즐기며 마음이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품이 발군이고 문예가 뛰어나 친구들에게 신망이 대단하고 문장실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지만 남겨진 글은 모두 없어져 전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아 안타까워 상자에 보관하고 있던 글들을 모아 잘 베껴내어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고 한다. 그 증손자의 이름은 강채로이다.

 문집에 있는 시를 읽어 보니, 갑장산 일대에서 유상한 사실이 많았다. 그리고 특히나 남계 선조와 연악서원에 대한 흠모와 애착은 대단하였다.

   
 

정미년 초봄에 용흥사에서 놀면서 조예라는 분의 시에 차운한 시를 보니,

 

용흥사에서 조예의 운에 차운하다 정미년 맹춘에

친구따라 이 산에 오니 /追友入山間

가을 빛 온 계곡에 역력하도다/秋光滿一壑

탁영담에서 노래하려고/ 濯纓因和歌

계곡가의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네 /時憩澗邊石

 

 가을날 친구를 따라 용흥사에 왔는데 가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고 한다. 용흥사 가는 길 오른쪽으로 계속하여 계곡이 있는데 이곳을 지천이라 한다. 지천은 알려진 것처럼 일명 연악구곡이라 한다. 남계 강응철이 연악구곡이라 명명하였는데 시나 그림은 전해지지 않고 근대에 와서 하산 강신우 선생이 이 사실이 잊혀질까봐 연악구곡기를 남겨 놓았던 것이다. 삼백재 선생은 탁영담에서 노래하고 쉬려고 계곡가 바위에서 쉬었다고 한다. 이 탁영담이 바로 연악구곡의 제1곡인 것이다. 지천에 있는 남부초등학교를 지나서 왼쪽에 솔숲이 있는 곳 맞은편이 바로 탁영담이다.

 삼백재 선생은 연악서원이 있는 연악구곡을 노래한 시가 많다. 연악구곡을 보면서 더욱 남계 강응철 선조를 흠모하였던 것이다.

 연악서원이 있는 동네에서 꽃 한 가지를 꺾으며 즉석에서 지은 시를 보면 내용이 이렇다.

 

아침 일찍 연악구곡 고개를 넘어가서 /早踰九曲巓

가지마다 봄이 온 것을 먼저 얻었다네 /先得一枝春

머리에 붉은 꽃을 꽂고는 /頭揷紅花色

백발만 더해지는 것도 잊어버렸다네 /還忘白髮新

 

 선조가 명명한 연악구곡을 오가며 봄날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만년의 나이임에도 나이를 잊고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보내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달이 떠오른 한 밤에 어딘가에 앉아 시름을 잊고 욕심도 없으면 마음도 희고 맑은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머리까지 희면 바로 삼백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느낀다. 지나고 나서 그때가 욕심이었고 정상이 아니었다고 뒤 늦게 후회한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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