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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孝出天 節義炳日 서재 김신김전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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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7  1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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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가 출천하고 절의가 빛난다

忠孝出天 節義炳日

역사인물연구소장 김정찬

   
▲ 김정찬 상주역사인물연구소장

 외남, 상주의 성에서 보았을 때 남쪽 외지에 있다하여 붙인 이름인 듯 하다. 그 외남에 서산이 있다. 청리 서쪽에 있어서 그런 듯 하다. 버스터미널에서 남쪽으로 계속 가다가 개운동에 이르러 외남방향의 997번 지방도를 따라 외남쪽으로 계속 가다가 외남면 구서보건소 쯤에서 보면 11시 방향에 서산이 보인다. 여기서 약 3분여 거리에, 왼쪽에 서산의 안령(말 안장을 닮은 고개)이 있다. 오른쪽 길가에는 김신의 공덕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상의군의 본산인 외남 안령이 여기이다. 이곳에서 5부자가 전사한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이 바로 김신이다. 이 분의 호가 서재인데 이 ‘서재실기’를 우연히 읽어 보게 되었다. 이 분의 행장을 소개한다.

 그 옛날 선조임금이 직위에 있을 때 여러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忠賢節孝]의 선비가 전국에 즐비하였다. 그때 징사[학식과 덕망이 뛰어나지만 벼슬하지 않는 분]인 후계 김선생과 두 아들인 즉 사담 김홍민과 성극당 김홍미는 학행과 문장이 한 시대에 날렸다. 그들의 6촌 동생인 김신이라는 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가정교육을 받아 도의의 가르침을 독실하게 하였는데 국가가 위기에 당면했을 때, 여섯 부자가 모두 충과 효를 다하여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도다.

 

 공의 이름은 김신이고 자는 희장이며 호는 서재인데 본관은 상산김씨이다. 고려시대부터 세습되어 온 뼈대있는 집안이다. 성함이 비궁이라는 분이 있는데 벼슬이 문하찬성사에 이르러 그 공훈으로 상산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이 사실은 고려사에 기재되어 있다. 성함이 김겸이라는 분은 선산부사이다. 성함이 상직이라는 분은 집현전 제학을 지냈는데 이 분이 공에게는 6세와 5세 선조가 되는 분이다. 고조부는 김신지인데 도염서승을 지냈다. 증조부는 성함이 김극충인데 통례문통찬을 지냈다. 조부는 김지강이고 아버지는 김윤호인데 모두 벼슬이 있었으나 직위만 있었다. 어머니는 상주김씨이다.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한 기질이 있었고 자라서는 기개가 있고 큰 절개가 있었다. 그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국운이 쇠락하고 일본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백성을 유린하여 전국이 쓰러져서 마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는데 영남지역은 군대와 유통 면에서 제거해야 할 곳이고 또 요충지에 있었으므로 가장 먼저 적의 침략을 받았다.

 공은 아들인 김유성, 김유명, 김유문, 김유진, 김유휘 등과 함께 눈물을 씼고 죽음을 맹세하여 의병을 일으켜 집안 식구들을 독려하여 고을의 안령 노동을 적의 주된 통로라고 여기어 마침내 성을 쌓고 울짱을 세워 구대로 그곳을 지켰다. 적장이 들이 닥치자 공과 여러 아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적을 상상한 것이 많았지만 중과부적이어서 안령 지역을 수호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그들이 노동에 들이닥치자 죽음을 다하여 수비하였으나 적병은 점점 많아져 아군은 함락되게 되어 공에게 압박하게 까지 되었다. 그때 아들 김유성이 공을 등에 업고 피하였으나 적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아들이 몸으로 공을 가리면서 아버지 대신 자기를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적은 김유성의 팔을 자르고 공과 나머지 자식들을 죽이게 되었다. 그때가 6월 11일이었다.

 

 나중에 김유문이 식량 운반차 외지에서 돌아와 적이 지나간 것을 보고 죽은 사람들이 구릉에 널려 있는데 부형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울부짖으며 찾다가 풀섶에 이르러 시체에 나무를 세워 놓고 ‘효자 김유성의 몸’이라고 적어 놓고 그의 호패를 걸어놓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공에게는 ‘효자 김유성 부친’이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보았는데 공은 호패가 없어서 그런데 이렇게 적어 놓은 것은 적들도 또한 그 아버지를 위한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큰 글씨로 ‘충효가 뛰어나고 절의가 세상에 빛난다.’라고 여덟 글자를 두 분의 주검 옆에 적어 놓았다.

 아, 김유성이 아버지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한 것은 효도의 정신에서 나왔고, 두 두자 모두 굴복하지 않다가 적에게 죽음을 당한 것은 우뚝하게 그 기상이 평범한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므로 저 완악한 무리들도 또한 그 절의에 감동이 되어 그렇게 표시해 놓고 또 그 명성을 드러내어 세상에 본보기로 삼고 시대에 빛이 날 수 있게 하였으니 그 누가 오랑캐의 무리들이 완전히 인륜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는 상산지와 부강록 및 김유문의 아들인 김국주가 기록한 문헌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이 외에도 실적이 후손인 김정우씨 집에 많이 전해지지만 모두 불에 타게 되었으니 안타깝다.

 훗날 김유성에게는 증 호조좌랑의 벼슬이 내리고 정려를 하고 조세를 면제하였는데 공과 4명의 아들은 모두 누락되게 되었다. 그 당시 담당자의 실수인 듯 하다. 부인은 합천이씨이다. 김유성, 김유명, 김유진, 김유휘 모두 당시에 돌아가셨기에 후손이 없고 김유문만 4명의 아들이 있으니 김방주, 김국주, 김처주, 김우주이다. 증손이하는 모두 기록하지 않겠다. 6세손인 김성추는 문과급제하여 벼슬이 전적에 이르렀다.

 아, 성품은 하늘에 근원을 두고 있고 학문은 스승에게 바탕을 두고 있는 법, 스승에 있어서는 밖으로 구하지 않고 집안에서 구하였는데 자질의 뛰어남으로 가르침을 받았으나 초야에서 지내면서 등용되지 않았으니 우러러 보는 뜻은 없지만 나라를 위한 죽음을 각오한 그 마음은 평소 쌓은 결과이다. 이런 이유로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분발하여 의병을 일으켜 살상한 공은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데 마침내 적에게 죽게 된 그 명성이 역사에서 사라질 듯 하니 어지 슬프지 않겠는가? 공께서 가정에서 가르치고 이끈 것도 크다.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죽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죽었으니 효자가 하나만 나오는 것도 대단한 법인데 더구나 다섯 명이나 되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국가에 충성을 한 경우 한 사람을 배출하기도 힘든데 더구나 여섯 명이나 되니 얼마나 대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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