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이월초하루, 영등절(靈登節)"
                                                                                     윤장원 박사

윤장원 박사
윤장원 박사

동도 트지않은 이른 새벽, 竈王神(조왕신), 穀間神(곡간신)과 醬庫房神(장고방신)을 관장하는 '영등할미' 를 위해 촛불하나, 맑은 정안수와 각종 제물을 차려 놓고, 하얀 한지 한 장 한 장을 말아 촛불로 불에 붙혀 소지(燒紙)를 정성껏 올리며 기도하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등할머님요! 올 한해 건강하고 무탈하며, 모든 이에게 꽃이 되고 잎이 되고 두루두루 굽어살피소서!”
소지의 불꽃이 하늘까지 올라 한 해를 밝혀 운수대통하도록 빌고비는 영등절(靈登節), 음력 이월 초하루! 지금은 모두가 어찌하며, 또 어떤 소원을 빌어볼까나?

음력 정월 그믐날 저녁부터 밤새워 영등제를 준비, 많은 신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부엌신 즉 조왕신(竈王神)이 머무시는 부엌에서 음력 이월 초하루 이른 새벽 촛불을 밝혀 온갖 제물을 차리고 식구들의 건강, 성공과 풍년을 위해 빌어 주시던 가정 안주인으로 제일어른이셨던 할머니!  깨끗한 한지를 소지용(燒紙用)으로 여러 조각내시어, 그 한장 한장에 식구의 이름을 부르며, 영등할미에게 기원을 담아 촛불로 불을 붙여 올리시던 소지(燒紙), 불꽃에 타들던 소지를 마치 마술사 같이 손을 바삐 움직여 떠받아 높이 올리셨는데, 심지어 집에 키우던 소, 돼지, 닭을 위해서도 소지를 태워 올리셨다. 소지의 재가 떨어진 것을 대강 걷어내고, 깨끗이 추려낸 짚단에다 온갖 제물을 조금씩 담아 꾸러미로 만들어 장독대와 곳간에다 종일 놓아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허수아비처럼 생긴 짚단이 내심 무서워 지날 때마다 눈치 보며 조심조심 다니기도 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

올해 2월 20일이 음력 이월 초하루, 영등절이다. 아직도 영등 할미가 있다면, 뭘 빌어야 할까?, 영등할미께서는 인간사 모두의 소망을 들어줄 것이라 믿고 싶다. 물질문명과 산업의 발달로 영험이 사라진 영등 할미이지만 올 한해의 건강과 행복, 웃는 날들, 풍성함을 기대하며 마음속의 소지(燒紙)를 하늘로 올려본다.

 
♦윤장원♦

박사,시인,수필가,한시시인,호는 유천(裕泉) 

전)FAO-CGIAR-ICRISAT국제작물연구소 수석연구원

현)농사협(RSDC) 농촌개발본부장

현)필리핀 벵궤트 주립대학교 종신교수

현)한국정부 공적원조(ODA)전문가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가에서 활동

저작권자 © 영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