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봄에 남편하고 상주 모동면에 있는 구수천 옛길을 처음 갔었다. 길이 하도 호젓하고 좋아서 계절마다 한 번씩은 와 봐야지 마음먹었는데 여름을 지나 가을 초입에 다시 갈 기회가 생겨 서울서 다니던 직장 후배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기에 같이 그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후배들과 함께 했다.

상주시 모동면 구수천 옛길
상주시 모동면 구수천 옛길

 새벽 6시 40분부터 움직여서 우리 집에 10시 30분쯤 후배들이 도착했고, 차를 같이하고,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들고 출발했다. 가을 색이 완연하진 않겠지만 ‘어떻게 변했을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했다.

구수천
구수천
 
 

 

 

 

 

 

 

 

 

 

 

 

 

 

 

 보현사입구에 도착해 오늘 우리가 걸을 길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 아마 한 사람도 못 만날 수도 있어! 거의 사람들이 없거든”

“정말?!”

“에이! 설마?!”

“문경세재가 아주 잘 다듬어지고 넓고 화려한 길이라면 여기 구수천은 아주 소박하고 자연적이고 호젓한 옛길이거든. 걸어보면 알거야”

 내가 느꼈던 느낌을 말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근데 시작한지 얼마 안 돼 또 하나의 문이 닫혀있고 트럭도 한 대 서 있다. ‘어? 사유지로 들어왔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 구수천 옛길을 걸으려고 한다고 말하니 문 옆으로 돌아가란다. ‘엥?!’ 안내표시가 아쉽다는 생각이 시작이었고 그 아쉬움은 곳곳에 있었다.

▲구수천 둘레길 초입
▲구수천 둘레길 초입

 구수천 옛길은 큰 내를 끼고서 계속된다. 그 내를 구수천이라고도 하고 석천이라고도 한다는데 돌산에서 내려오는 돌이 많아서 석천이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참이 돌길이고 언제라도 돌이 굴러 내려올 것 같은 돌산을 지나야 한다.

 

▲돌산
▲돌산
 
 

 

 

 

 

 

 

 돌산을 지나고 나면 작은 오솔길 같이 나무 사이로 길이 나있고 적당한 그늘과 물소리가 걷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쉬운 것은 올해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내에 물이 적고 물이끼가 많아 청량감이 떨어지는 것이었지만 오랜만에 벗들과 함께 걸으며 두런두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길과 함께 열리는 물길, 비로소 얼굴을 내미는 산들이 마치 문이 하나씩 열리며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형에 따라 길이 나 있다보니 물 가까이 다가가기도하고, 나무다리를 걷기도 하고, 호젓한 숲길을 걷기도 한다. 아기자기한 재미와 산과 바위와 나무, 물이 만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나는 이 길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지지배배 새소리, 똘똘똘 물소리, 쉬우웅 바람소리, 사륵사륵 나무들이 비비는 소리, 사악사악 풀이 흔들리는 소리, 바스락 바스락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출렁다리를 지나 우리가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정자가 보였다. 정자위에 오르니 이런 정원이 어디 있을까 싶다. 도시락을 꺼내 오랜만에 함께한 친구들과 정다운 식사를 하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놓고 웃기도 하고, 걱정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며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마음을 털어내며 쉬었다. 굳이 더 가야할 이유가 없고 쫒기는 것도 없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충족감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출렁다리
출렁다리
정자
정자

 

 

 

 

 

 

 

 

 

 

 

 

 

 

 되돌아 올 때는 출렁다리를 건너 온 반대편 길로 왔는데 출렁다리에서 계곡을 바라보면 골이 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더 보드랍고 폭신한 길이라서 편했다. 밤나무 숲을 곁으로 지나 백옥정에 올라 모동면을 위에서 바라보고 우리의 시야가 좁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우리는 늘 내가 본 것만이 전부이며 맞고 확실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 보지 못한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야 겸손하게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고 더 배울 수 있고, 더 담을 수 있으며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적이고 따뜻한 세상을 이룰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나부터 돌아보았다.

 다들 너무 호젓하고, 잘 볼 수 없는 예쁜 길이라며 만족해했고 걷는 구간도 적당하다며 다른 계절에도 오고 싶어 했다. 특히 아마추어 사진을 하는 친구는 꼭 다시 와야겠다며 이번에 사진기가 고장 나 못 가져온 것을 아쉬워했다.

 나는 소개자로 간 입장에서 표지판에 거리가 없고, 중간 중간 좀 더 상세한 안내가 없는 것 그리고 세 네 군데 있는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한 것과 초봄에 갔을 때 해빙이 되며 얼었던 큰 돌이 떨어져 나무테크 길의 기둥이 무너져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 아쉬웠다.

 
 

 나는 이 길이 지금처럼 보존되고 사람들에게 휴식과 자연이 주는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발과 편이시설이 늘어선 길보다는 지금의 모습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험을 예방하고 계곡 주위에 쓸려온 쓰레기들을 치우고 화장실을 개끗이 관리하는 정도로 관련기관에서 힘써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 어느 날 나는 또 좋은 사람들과 이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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