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자싯니껴?

                                                                                                           고순덕

 

상주 쌀 수도권 소비자에게 알린다
상주 쌀 수도권 소비자에게 알린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나, 너, 우리.

 우리나라, 대한민국.

 가자. 순이야 가자. 영희야 가자.

 안녕? 바둑아 안녕? 철수야 안녕?

 선생님. 우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버지,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실제 오갔던 인사말은 “나오싯니껴?” “아침 자싯어요?” “점심 자싯니껴?” 였다.

 배를 골고 살아서 일까? 때에 맞추어 식사 하셨냐는 인사말이 최고의 멘트였던 것 같다. 물론 지역에 따라 “밥 무써예?” “밥은 무것는가?” “밥 젓수셨소?” 등의 표현도 있지만..... 그리고 지금도 가까운 사람끼리는 그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보다는 “밥은.....?” “맛점 하세요!” “즐거 하삼!”이라고 하는 인사가 더 상대에 대해 관심 있는 인사 표현으로 쓰이곤 한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요즘 흔한 프로그램이 맛집소개, 한국인의 밥상, 냉장고를 부탁해, 먹방, 황금레시피, 건강보조식품 판매 등 먹거리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삶에 그토록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더위에 지쳐 입맛을 잃은 요즘의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삼계탕! 멍멍탕! 추어탕! 민물매운탕! 탕!탕!탕! 이열치열이라하여 더운 음식으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조상의 지혜가 엿보이는 음식들이다. 하지만 이 역시 예전엔 흔하지 않았던 음식들로, 여름하면 감자나 애호박이 넉넉히 들어가 있는 수제비나 칼국수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ㅎ
 
 

 

 

 

 

 

날콩가루를 섞어 밀어낸 엄마표 칼국수는 어린 나에게 마치 묘기대행진에 나오는 마술쇼처럼 기억 된다. 한여름 늦은 들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지친 땀 냄새로 절어 있었지만,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여덟 가족의 저녁을 준비하셔야 했다. 뽀얀 밀가루와 누런 날콩가루를 섞고, 물을 조금씩조금씩 추가해 반죽을 하시는 동안, 동생과 나는 대청마루 가득 달력 뜯은 종이나 커다란 이불보 같은 천을 깔았다.

 
 
 
 

 

 

 

 

 

 

 그리고 마루 한쪽에 서 있던 안반이 자리를 잡고 누우면 엄마의 홍두께 마술쇼 준비 끝! 둥근 반달모양의 반죽은 엄마의 홍두께가 한번씩 오르내릴 때마다 큰오빠의 국인모자도 되었다가, 또 몇 번 더 오르내리면 작은언니의 챙 넓은 중학생 모자가 되기도 하고, 이내 아버지의 밀짚모자가 되기도 했다. 그 다음은 두꺼운 반죽이 홍두께를 감싸고 돌돌 구르기 몇 번을 끝내고 홍두께를 세로로 돌려 굴리면 점점 얇게 그리고 큰 원을 그리며 풀려 나오는 반죽. 이것이 마루를 가득 채울 때까지 엄마의 홍두께 마술쇼는 계속된다. 다음은 마루만큼이나 커진 반죽을 이불개듯 착착 접어 안반위의 춤추는 칼쇼! 제일 먼저 가장자리를 뚝 잘라내어 동생에게 주신다.

  길게 대기하고 있던 반죽은 엄마의 춤추는 칼끝이 지날 때마다 한가닥한가닥 똑같은 면발 형제들이 태어나게 되고, 살짝 눈가루를 뿌리고 가지런한 면발을 흔들면 뽀골머리국수로 변신. 줄지어진 반죽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국시꼬랭이의 선수를 동생에게 빼앗긴 나는 “엄마 고만. 고만. 고까지만 응?” 하며 더 긴 꼬랭이를 얻기 위해 투정을 부리다 머리위 뽀얀 꿀밤을 한 대 얻어맞기도 했다. 그 사이 작은 언니는 감자와 애호박을 채썰고, 마당에 커다란 양은솥을 걸어 불을 지폈다. 한낮의 햇살보다 더 뜨거운 김이 오르면 엄마는 마지막 거품쇼를 위해 뽀글머리국수를 털어 끓는 물속으로 입수. 긴 국자로 한 바퀴 휘~ 저으면 이내 부글부글 밀가루만큼이나 뽀얀 거품과 그 사이사이 새파란 호박과 국수가락이 두둥실 춤을 추며 오르내린다. 애 살림꾼인 작은언니는 미리 찬물과 양푼이를 옆에 대기해 두었고, 부글거리는 거품과 호박의 춤사위에 찬물을 살짝 흘리면 이내 파티장은 조용해지고, 작은언니는 부지런히 아궁이의 불을 사그러제게 한다.

 
 

 엄마가 가족 수에 맞춰 국수를 뜨는 동안 작은언니는 동생과 내게 국시꼬랭이 부풀리기쇼! 잦아든 불위에 국시꼬랭이를 올리고 타지않게 뒤적이면 한 장이던 반죽이 두장이 된다. 평평하고 추욱 처져있던 반죽에 힘이 생기고, 부풀어 올랐다. 당시에 내겐 국수보다 더 맛있었던 국시꼬랭이.

 그렇게 짧은 여름밤이 깊어지면 국수끓이던 불은 매캐한 모깃불로 변하고, 멍석위에 누워 하늘을 본다. 그곳에선 별이 긴 꼬리를 남기며 떨어지는데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고 싶었지만 이미 저만큼 사라져 버리고, 다음엔 꼭!!! 다짐을 하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름 날의 마지막 마술은 분명 난 마당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면 안방!

 
 

 외식문화와 패스트푸드의 풍요속에 엄마의 마술쇼 같던 소박하고, 구수하던 칼국수가 그립다. 이젠 국시꼬랭이보다 뜨끈뜨끈한 칼국수가 시원하게 느껴지고, 더 맛있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단 한 번 꿈속에서라도 그 마술같던 여름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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