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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이야기고순덕의 생활수기 시리즈 28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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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6  0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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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이야기

고 순 덕

 

   
▲ 고순덕

미또리, 가리앙, 상고머리, 빡빡이, 단발머리, 컷트.

 어릴 적 내 머리모양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하다. 하지만 어디서 머리를 깍았는지는 또렷이 기억한다. 이발소! 우리 마을 회관에는 넓은 회의실과 그 가운데 방으로 꾸며진 방송실이 있었고, 막걸리도 팔고, 뽀빠이도 파는 구판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빨간, 파란선이 뱅글뱅글 도는 이발소가 있었는데, 바로 이 곳에서 계집아이인 나도 머리를 깍았다.

 엄마따라 여탕에 가기 싫어하는 사내아이처럼 나도 아부지를 따라 이발소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매일을 망아지처럼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아도 가시나인데, 나도 빨간 딸기모양 머리방울로 머리도 묶고 그러고 싶었는데, 아부지는 늘 나를 이발소로 데리고 가 머리를 깍아 주셨다. 이발소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면도냄새? 샴푸가 없던 그 시절, 다이알비누 냄새가 이발소 냄새였던 것도 같고, 거울 앞 긴 가죽에 스윽쓱 갈아 제치는 면도칼도 무서워 정말 싫었지만

   
 

 머리를 깍고 나면 사주는 뽀빠이와 라면땅에 홀려 스스로 빨간 가죽의자에 신발을 벗고 올랐다. 키가 작았던 나는 눕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하는 이발소 의자에 그냥 앉으면 등받이에 머리가 가려져, 팔걸이에 송판을 걸치고 그 위에 올라 앉아야 했다. 그러면 뽀얀 까운을 입은 이발할배가 등 뒤에서 역시나 뽀얀 보자기를 내게 둘러 주셨는데, 그 때부터 목이 조이고 간지러웠다.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거나 삐딱하게 해서 꼼짝 말고 앉아 있는 건 말 그대로 고문이었지만, 뽀빠이를 먹으려면 참아야 했다. 간지럽고, 까끄럽고, 목도 아프고, 잠도 오고...... 앞머리는 눈썹을 닿을 듯 말 듯, 옆머리는 귀를 반쯤 덮고, 뒷머리는 반쯤 밀어 올린, 뒷목이 까칠까칠 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버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의자에서 내려 주었다. 그리고 다음은 아부지 차례. 뽀빠이부터 사 주지 이번엔 아부지가 빨간 의자에 앉았다. 가위질과 빗질을 한동안 반복했고, 다음은 의자 등받이가 스르르 내려가고 아부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주무시나? 이발할배는 양철컵에 동그란 손잡이가 있는 솔인지 붓같은 것을 흔들어 북적북적 거품을 일구었다. 그리고는 그 무서운 면도칼을 꺼내 긴 가죽에 대고 스윽쓱싹싹 날을 세웠다. 양철컵 안의 거품이 아버지의 턱과 얼굴에 얹어졌고, 이발할배는 아부지에게로 다가 왔다.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알고 아부질 깨워야 하나? 무서워했지만 면도칼이 지날 때마다 파리하게 드러나는 깨끗한 아부지의 턱선과 얼굴이 신기하게도 보였다. 다음은 연탄난로 연통에 말아두었던 수건을 아부지 얼굴에 덮었다. 얼마나 뜨거울까? 그런데 아부지는 시원하다고 좋아 했다.구석에 있는 세면대로 가 머리도 감았다. 양철 물조리에서 빗줄기처럼 내리는 물은 아부지 머리의 비누거품을 씻어 내렸다. 그렇게 아부지도 나도 새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발소에 가야 할 작은오빠는 집에서 머리를 깍았다. 집에 미제 바리깡이 있어서 소죽끓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빨간 보자기를 두르고 아부지는 작은오빠의 머리를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깍았다.

   
 

 이발할배의 한손에 잡히는 은색바리깡과 다르게 아부지의 바리깡은 나무손잡이에 사이즈도 컸다. 왼손은 고정으로 잡고 오른손잡이를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오빠의 목덜미부터 저 윗머리까지를 밀어 올렸다. 앞머리를 조금 남기고는 빡빡. 그 때는 많은 사내아이들이 까까머리를 했었고, 머리에 부스럼이나 상처로 크고 작은 땜통이 보이기도 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시절, 2학년 때부터 두발자유와 교복자율화로 단발머리가 사라지긴 했지만, 1학년 때는 귀밑 2cm. 길면 자르라고 선도부 언니들이 경고를 했고, 남학생들은 선생님이 바리깡을 가지고 앞머리를 밀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추억속의 이야기 일 뿐. 두발이 자유롭게 되자 남학생들은 앞머리를 유난히 길게 기르기도 했고, 여학생들은 단발보다 짧은 컷트 머리나 바가지머리에 핑클파마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 때부터 학생주임과 학생들의 곱슬머리 논쟁이 시작되었고, 가끔씩은 등교하는 학생의 머리에 물을 뿌려 검사를 하기도 했다. 우리 큰 딸도 수능을 마치자마자 한 짓이 파마였다.

 이젠 예뻐지기 위한 헤어스타일 보다는 손질이 편한 스타일을, 그리고 서글퍼 보이지 않으려 염색을 해야만 한다. 이젠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 젊지도 않지만 백세시대에 늙지도 않은 나이. 다시 앞머리 까만 삔 꽂고 다니던 단발머리가 어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까까머리 머시마한테 꼬깃꼬깃 접어진 연애편지 하나 받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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