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뻔 했던 날

고 순 덕

 남편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수씨 펜션 예약한 거 입금을 조금 전에 입금 했어요. 그 날 제수씨 보고 이틀 뒨가? 빙판에 미끌어져 반대쪽 차하고 정면충돌했는데 내차도 폐차시키고, 상대차도 폐차시키고, 죽을 뻔 했다니까. 그래서 정신이 없어가지고 입금을 인제 했네. 확인해 보세요.” 한다.

 죽을 뻔!!! 그래도 죽지 않았으니, 게다가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하늘이 도우셨나보다.

 나도 그런 하늘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였을까? 집을 짓고 있어 아래채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연탄불에 물을 데워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사춘기인지라 누구에게 등밀이를 부탁하지도 않고, 문도 꽁꽁 잠그고 혼자서 그렇게 씻고 있는데, 점점 어지럽고 멍~해지기 시작했다. ‘어?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급하게 씻기를 마무리하고 옷을 주워 입는데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들었다. 자꾸만 몸이 기울고 머리가 부뚜막에 쳐 박혔다.

 
 

 그런데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순더가! 순더가!! 눈 떠 봐라. 눈 떠봐!” 누군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고 뺨을 때렸다. 여전히 정신은 몽롱하고 뺨은 아프지 않았으며 눈을 뜨려니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엄마였을까? 입안으로 찝찔하고 서늘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받아 삼켰던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온 가족이 나를 방 가운데 눕히고 걱정스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탄가스. 일산화탄소중독 이었다. 이 후로도 한차례 더 이런 경험을 했는데 그 때는 동생과 함께 였다. 정신이 든 다음 엄마에게 들은 얘기인 즉 죽지 않으려는지 동생은 출입문 쪽으로 기어가는 자세로 발견이 되었고, 난 안방으로 난 쪽문에 매달리려 했는지 쪽창 쪽에 늘어져 있었다고 했다. 무의식중에도 본능적으로 살고자하는 노력을 했었나보다. 이 때도 찝질하고 서늘한 것을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동치미국물 이었다.

 
 

 한겨울을 더욱 시원하게 만들어 주던 동치미국물은 나와 동생의 생명을 구한 생명수였다. 아니 어쩜 내가 모르는 더 많은 이들의 생명을 나와 같은 이유로 살려 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엄마가 담군 동치미가 먹고 싶어진다. 살얼음이 설겅설겅 씹히고, 주먹만한 무가 아삭아삭, 짭쪼롭하던 그 국물은 고구마에 목이 막혀도 한방에 뻥 뚫어 주었고, 퍽퍽한 콩시루떡도 스르르 넘어가게 했다. 애국수 한 뭉치를 동치미에 말아 먹으면 열무냉면 못지않은 별미였던 움집에 묻혀있던 동치미 한 사발 들이키면 혹시 지금 처한 현실의 막힘이 ‘뻥’하고 뚫리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결혼 후 집에 연탄보일러를 설치하자는 남편의 제의에 반대를 하며 예전 연탄가스 중독 경험과 일산화탄소는 사람의 체내에 축적이 되고 중독의 후유증으로는 만성두통과 건망증도 있다는 얘기를 남편에게 한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나의 건망증에 대한 핑계라며 핀잔을 주었다. 사실인데......

 
 

 요즘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엔 대부분이 연탄으로 난방을 하다보니 연탄가스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고 뉴스가 허다 했다. 지금처럼 보일러상태의 난방이었다면 좀 덜했겠지만 당시엔 아궁이에 직접 열을 가하는 방식이었고 문틈이나 방구들 틈새를 통해 일산화탄소가 스며들어 중독사고를 유발시켰다.

 진짜 하늘이 도운건지, 아니면 엄마가 잘 담궈 두신 동치미 덕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직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해야 할 일이란 것은 가족과 이웃,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더욱 바람직한 삶이 되겠지. 겨울을 따뜻하게 버틸 수 있게 하고, 나눔의 상징이 된 연탄이 나의 목숨을 두 번이나 앗아가려 했지만, 오늘은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선생으로 다가 온다.

 
 

연탄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탄불 위 엄마 몰래 국자를 태워가며 해 먹던 달고나와의 추억도 있고, 연탄불 위에 구워먹던 고구마는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앞으로 내가 진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몇 차례의 위기를 더 찾아들지 모르겠지만 그 날을 두려워 말고 오늘을 연탄처럼 붉게 태우리라 다짐해 본다.

저작권자 © 영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