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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문학]나의 산타는 설날에 왔다.고순덕의 생활수기 시리즈 32번째
변해철 편집국장  |  ynt@y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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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3  0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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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타는 설날에 왔다.

고 순 덕

   
▲ 고순덕

 설 명절을 앞두고 엄마는 아랫목에 막걸리로 반죽한 찹쌀을 띄워 유과를 만들었다. 초겨울엔 청국장에게 사나흘 아랫목을 내어 주어야 했고, 아버지가 장에 가신 날에는 뚜껑이 덥힌 아버지의 밥그릇이 아랫목을 차지했다. 그리고 설을 앞둔 지금쯤은 묘한 색과 냄새의 찹쌀가루반죽에게 또 며칠 밤을 빼앗겼다. 반죽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몽글몽글 발효되어 부풀어 올랐고, 엄마는 몇 번을 저어 가스를 빼고 부풀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녹말가루를 뿌려가며 얇은 반데기를 만들어 넓게 핀 종이포대 위에 널어 말렸다. 꾸덕꾸덕 적당히 마르는 동안 이번에는 쌀튀밥에 홍두께를 굴려 부수고, 조청을 묽게 끓였다. 적당히 말려진 찹쌀반족 반데기는 뜨거운 기름속에서 몽글몽글 크고, 뽀얀 새색시로 다시 태어났다. 뽀얗게 부풀어 오른 새색시는 곧 따뜻한 조청 속옷에 부신 쌀튀밥 드레스를 입고, 대추 브로지로 장식을 했다. 군침이 돌고 꼬물꼬물 손가락을 새색시에게 닿을라치면 엄마는 매몰차게 손등을 치며

“쓰으!” 잇소리를 냈다. “저리 안가나, 조상 모실꺼를 어따 먼지 손을 대노! 버릇업기.......” 조상이 누군지 모르지만 참 싫었다. 엄마는 차례나 제사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조상이 드실 것에 손을 댄다고 야단을 치고, 저리가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면 큰엄마가 “이리 온나. 이거 가이고 가서 동생하고 농가 먹고 싸우지 말고 놀아레이.” 하셨다. 엄마는 큰엄마 보면 혼난다고 저리가 놀라고 했지만, 언제나 우리를 야단치는 건 큰엄마가 아니라 엄마였다.

   
 

 예천이 친정이었던 엄마는 또 설이면 안동식혜를 담았다. 기본 식혜에 고춧가루 물과 생강, 무, 배, 당근을 채썰어 넣고 삭힌 안동식혜는 생강을 싫어하던 어린 나의 입맛엔 맛있지 않았다. 유과나 튀밥은 손을 대면 야단치던 엄마가 이 맛없는 식혜는 감기에도 좋다며 애써 먹으라 권했던 기억이 있다. ‘혹시 우리 엄마가 개모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건 아마 그 때 쯤 이었을 거다. 서늘한 마루에 항아리째 삭힌 식혜는 사촌오빠들이나 설이라고 찾아오는 친척들에게는 인기짱인 음료였지만......

 그렇게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차곡차곡 쌓여갈 즈음, 서울로 돈 벌러 간 큰언니가 큰 가방을 가지고 왔다. 언니의 가방속에는 나의 새 옷이 있었고, 동생의 빨간 구두도 있었다. 작은오빠의 잠바도 있었고, 엄마의 스웨터도 있었다. 아버지의 내복과 또, 또. 기억하지 못 하는 많은 선물과 서울 냄새가 담겨 있었다. 서울과 대구, 부산에서 온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의 사촌오빠들은 아버지의 담배와 엄마의 내복, 동생과 나를 위한 푸짐한 종합선물세트를 안겨다 주었다. 뽀얀 얼굴에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나보다 큰 나의 5촌 조카들은 “고모, 고모”하며 놀리 듯 불러댔다.

 집성촌인 친정에서의 설 차례는 아침 일찍부터 점심때가 다 되도록 큰큰집과 큰집, 작은집, 6촌오빠네를 오가며 이어졌다.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 한 살을 먹는다는데, 매년 몇 살씩을 먹었는지, 설날 떡국 그릇 수로 나이를 따지자면 아마 난 지금 백수는 했을 것이다. 이 날은 새 옷도 입고, 엄마가 손도 대지 못하게 하던 유과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색색이 그려진 사탕도 먹을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동생과 연습해오던 세배로 큰아버지께 세뱃돈도 받고, 이보다 좋은 날이 있을까? 그 좋은 날은 다음 날도 계속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다음 날이나 다다음날 가마솥에 떡국을 한솥 끓여서는 스테인레스 밥그릇에 가득 담아 계란지단, 곱게 자른 김, 닭고기를 쪼야 만든 끼미를 얹고는 동생과 나를 불렀다.

   
 

 엄동설한에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동생과 나는 떡국을 엄마가 시키는대로 이 집 저 집 배달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말과 함께. 그러면 떡국을 받으신 아지매나 형님들은 세뱃돈을 주기도 하셨고, 자신의 집에 특별한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셨다. 설은 내게 크리스마스에 오지 않은 산타가 오는 날과 같았다. 새 옷에 푸짐한 먹거리, 용돈까지. 그렇게 어린나의 설은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 어릴 적 명절엔 서울 간 큰언니와 오빠를 기다렸고, 결혼을 하고는 친구를 만나러 나간 남편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 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북한 응원단들이 부른 응원가 중에 하나다. 어릴 적 이맘때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이기도 한데 이는 북한이 우리와 한 민족임을 증명한다. 가족, 친지가 한데 모이는 민족의 큰 명절.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통일로 한발 더 다가서, 멀지않은 명절엔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모여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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